▲안산시 안보단체들의 집회지난 2007년 11월 재향군인회, 상이군경회, 625미망인회 등 안산시 안보단체들의 집회 모습.
강소영
하지만 장승이 세워지고부터 수난이 시작됐다. 안산문화원에 재향군인회 회원이라고 밝힌 사람으로부터 협박전화가 걸려왔고, 장승을 철거하지 않으면 안산문화원을 가만 두지 않겠다는 보수우익단체의 압박도 이어졌다. 장승으로 인해 안산문화원 측이 시달림을 당했던 것이다. 안산문화원 측은 철거요구가 계속되자 고심 끝에 10월 24일 장승을 전격 철거한다.
이에 대해, 안산 문화원 측은 "장승이 당초 목적과 달리 정치적인 이념 대립문제로 불거지면서 부담을 느꼈고, 문화원 정관에도 특정 정치집단의 이용물이 돼서는 안 된다는 규정돼 있어 철거하게 됐다"며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그러자 6·15안산본부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월 26일 재향군인회와의 면담을 갖는다. 이 자리에서 재향군인회 측은 협박전화를 한 부분은 부인하면서도 '자주'라는 말을 삭제하면 문제 삼지 않겠다고 말한다. 자주는 북에서 이념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이며 표준이 아니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것. 재향군인회 측은 대안으로 '자유통일대장군'이나 '자유평화여장군' 등의 표현을 제시했다.
하지만 안산지역 단체들은 협의 끝에 '통일장승 철거는 2차 정상회담 이후 남과 북의 평화와 통일을 방해하려는 행위이자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도 무시한 비민주적 행위'라며 11월 10일 장승을 다시 설치한다.
이후 안산문화원이 "장승이 다시 세워진 후 여전히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며 수차례 공문을 보내 철거를 요구했지만 통일운동단체들은 거부했고, 문화원 측의 장승철거시도는 소속단체들의 저지 속에 무산됐다.
통일운동단체 측은 보수우익단체와 대화를 시도했으나 '자주통일'이란 문구를 이적성이 있고 친북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11월 24일 보수우익단체들의 실력행사에 장승이 잠시 철거되지만 통일운동단체 회원들이 나서 그날 곧바로 다시 세워지게 된다.
"'자주통일'표현은 이적성과 친북성 담겨 있어"11월 27일 안산문화원 측은 통일운동단체와 보수단체들간의 3자회담을 제안했으나, 통일운동단체들은 '장승을 무단 철거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안산문화원이 사과할 경우만 참여하겠다'고 하면서 대화는 무산된다. 이에 따라 안산문화원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 이름하여 '공작물 설치 금지 가처분 신청'. 남의 땅에 장승을 설치해 놓고 땅주인이 철거하라고 했음에도 막고 있다는 것. 희대의 장승재판이 시작된 것이다.
법원은 1월 8일 1차 심리를 진행했고, 1월 22일 2차 심리와 2월 5일 3차 심리를 통해 문구수정을 통한 원만한 합의를 권고하지만 통일운동단체들이 거부하면서,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게 된 것이다.
통일장승문제에 대해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자 6·15 안산본부 측은 "법원이 현명한 결론을 내렸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당초 법원의 판결이 불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고심끝에 알맞은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다.
손주영 6·15안산본부 사무국장은 "심리과정에서 '남의 땅에 설치한 구조물이고, 땅 주인이 철거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불리한 여지가 많다'는 이야기가 나와 기대를 안하고 있었는데, 일단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법원의 결정을 환영했다.
그러나 본안소송을 제기할 경우 불리할 수도 있다는 견해가 있어 안산문화원 측의 태도를 보고 실질적인 판단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산문화원 측은 재판결과에 대해 "오늘 판결문을 받아 아직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하지 못했다"며 "원장님께 보고한 후 판결 내용에 대해 논의를 해 보고 나서 향후 대응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재판 진행 과정에서 만난 성노경 안산문화원 업무과장은 "보수우익단체가 문제 삼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 상관이 없다"며 "그런데 계속 압력이 들어오고 협박전화가 걸려오는데 우리로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 정치집단의 이용물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은 정관에도 나와 있는 부분이고 시끄러운 사건에 중간이 끼인 꼴이 돼버려 결국 법의 판단을 구한 것"이라고 밝히며 안산문화원 또한 원치 않는 분쟁에 말려든 처지임을 하소연했다. 그는 "보수단체들의 압력이나 협박이 없었다면 굳이 철거할 이유도 없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장승논란은 법원의 판결에 대한 보수단체들의 대응과 안산문화원 측의 결정에 따라 지속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자주통일이란 문구가 이적 표현이므로 이 문구가 수정되지 않으면 장승은 이적 조형물이라는 주장을 보수단체들이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압력이나 협박없으면 철거할 이유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