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장한 홍국영, 사실과 얼마나 일치했나?

[사극으로 역사읽기]

등록 2008.05.18 14:51수정 2008.05.1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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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국영의 최후를 지켜보고 있는 정조와 박대수(가상의 인물). 드라마 <이산>.
홍국영의 최후를 지켜보고 있는 정조와 박대수(가상의 인물). 드라마 <이산>. MBC


아주 유쾌하게 등장한 정약용과 대조적으로, 홍국영은 매우 우울하게 퇴장했다. 정조 임금과 숙위소 부하들의 애도 속에 홍국영의 '슬픈 주검'은 동해 해변의 물결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5월 12일 <이산> 제68회).

드라마 속의 정조 임금은 여자 파트너(후궁)들의 들어오고 나감보다도 남자 파트너들의 들어오고 나감에 더욱 더 흥분하고 더욱 더 슬퍼하는 것 같다. 실제의 정조 임금이 인재에 갈증을 느끼는 지도자였다는 점을 생각할 때에 드라마 상의 이미지는 실제 정조를 비교적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유종의 미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또 비록 정조 임금과 함께한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홍국영이란 인물은 정조 임금에게는 결코 쉽게 잊을 수 없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정조의 '조강지처 클럽'(홍국영·채제공·서명선 등) 중에서 홍국영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사라진 인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드라마 <이산>에서 주인공인 정조 임금 못지않게 주목을 받은 홍국영. 여자 파트너인 성송연(실제로는 의빈 성씨)보다도 정조에게 더욱 더 '진한 연인'이었던 홍국영. 그에 관한 드라마 <이산>의 묘사는 얼마나 역사적 사실에 근접하는 것일까?

전반적인 이미지를 고려할 때에, 드라마 <이산>에서 실제 이미지에 비교적 근접하게 묘사된 인물들로는 효의왕후(효의황후)·화안옹주·정후겸 등과 함께 홍국영을 들 수 있으리라 본다. 그 정도로 홍국영의 경우에는 드라마 상의 이미지와 실제상의 이미지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 전체적 이미지 말고 세부적 이미지의 경우에는 어떠할까? 그의 인물 됨됨이, 정조와의 만남, 권력욕, 최후 상황 등의 몇 가지 측면에 국한해서 실제상의 이미지와 차이를 보인 드라마상의 이미지만 짚고 넘어가기로 한다.


단, 여기서 말하는 '실제상의 이미지'란 '사료(역사학 자료)상의 이미지'를 말하는 것이다. 사료가 역사적 사실을 100%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첫째, 홍국영의 인물 됨됨이.


 홍국영. 드라마 <이산>.
홍국영. 드라마 <이산>. MBC

드라마 상의 홍국영은 ▲외모가 준수하고 ▲말을 잘하고 ▲머리가 영리하고 ▲공부는 적당히 하고 ▲약간은 가벼우며 ▲가끔씩은 무례한 인물로 묘사되었다. 여기서, 앞의 다섯 가지의 경우에는 드라마와 실제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특히 외모에 관한 한, 홍국영은 '조선왕조 공인 미남'이라 할 수 있는 남자였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영조 48년(1772) 9월 21일자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시력이 나쁜 영조가 "(홍국영의) 용모는 어떠하냐?"고 묻자 승지가 "매우 준수합니다"(甚精矣)라고 대답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홍국영처럼 국가 공식기록에서까지 미남이라고 기록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 상의 홍국영은 '가끔씩은 무례한' 사람이었지만, 이 점에서 만큼은 드라마 상의 홍국영이 실제의 홍국영보다 훨씬 더 점잖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버선만' 신은 채로 자신을 맞이하는 홍국영에 대해 장태우(가상의 인물)가 버럭 화를 내는 장면이 묘사된 적이 있지만, <정조실록>에 따르면 실제의 홍국영은 버선만 신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맨발'로 상급자들을 맞이했을 뿐만 아니라 연장자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반말을 내뱉는 '가정교육이 제대로 안 된' 사람이었다.

<정조실록>의 편찬자들이 홍국영의 사소한 행동과 버릇까지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한 것은, 그만큼 홍국영이 그 재주에 비해 인물 품성이 상당히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홍국영의 권력과 홍국영의 품성이 너무나 대조적이었기 때문에, 그의 일거일동이 당시 사람들의 기억에 매우 선명하게 기억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홍국영. 드라마 <이산>.
홍국영. 드라마 <이산>. MBC


둘째, 정조와의 만남.

홍국영이란 배역이 관심을 끌던 드라마 초기에, 홍국영은 세손 이산과 정후겸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는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적대적인 사람들 사이를 오고가는 그의 특성은 정조 즉위 이후에도 계속해서 나타났다. 그는 여전히 정조와 정순왕후 사이를 은밀히 오고가는 행태를 보였다.

그러나 실제의 홍국영은 세손과 정후겸을 저울질하지도 않았고 또 정조와 정순왕후 사이를 오고가지도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정조 즉위 이전의 홍국영은 세손과 정후겸을 저울질할 사이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세손을 선택하기도 전에, 영조 임금이 그를 세손에게 '붙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전 기사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홍국영은 과거에 합격하자마자 영조와 세손을 함께 보좌하게 되었다.

홍국영이 정조 이산과 쉽게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그의 가문 덕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당시의 유력 가문인 풍산 홍씨(혜경궁 홍씨, 홍봉한, 홍인한 등)의 일원이었다. 또 경주 김씨인 어머니 집안이 정순왕후 김씨와 연결되어 있었다. 또한 홍국영 자신이 영·정조와 인척관계를 갖고 있었다. 특히 정조와는 12촌 인척관계였다.

 정조 즉위 전후의 홍국영. 드라마 <이산>.
정조 즉위 전후의 홍국영. 드라마 <이산>. MBC


셋째, 홍국영의 권력욕.

드라마 <이산>에서도 홍국영의 권력욕이 비교적 잘 묘사되었다. 특히 '전주 이씨와 풍산 홍씨는 동격'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완풍군의 작호는, 시청자들에게 홍국영이 얼마나 대담한 인물이었는가를 잘 증명하는 자료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 상에서는 정조가 홍국영의 세도정치로부터 위협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상의 홍국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군에게 절대 충성을 바치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홍국영이 정조에게 절대 충성을 바치는 인물이었다면 세도정치라는 독자적인 권력 기반을 구축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정조 역시 홍국영이 자기에게 절대 충성을 바치고 있다고 확신했다면 그처럼 일찍 그리고 전격적으로 홍국영을 퇴진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홍국영과의 권력게임에서 승리한 정조의 입장에서 기록된 것이라서 100% 있는 그대로 믿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정조실록>을 토대로 할 때에 홍국영은 분명히 정조의 권력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었다.

▲국왕의 안위를 책임지는 숙위소 병력을 장악하고 있었던 점 ▲자기 손을 거치지 않고는 주요 국정 현안이 국왕에게 전달되지 못하도록 한 점 ▲정조의 집무실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숙위소 집무실에서 여자들의 '시종'을 받은 점 ▲정조 임금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목소리로 숙위소 병사들에게 호통도 치고 심부름도 시키고 한 점 ▲자신의 법적 조카인 완풍군을 세자 자리에 앉히려 한 점 ▲주군의 부인인 효의왕후를 독살하려 한 점 등은, 홍국영이 과연 정조에게 절대 충성을 바친 인물이었는가를 의심케 하고도 남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권력에서 밀려난 홍국영. 드라마 <이산>.
권력에서 밀려난 홍국영. 드라마 <이산>. MBC


넷째, 홍국영의 최후 상황.

드라마 <이산>에서 홍국영은 진심으로 반성하는 가운데에 생의 최후를 맞이했다. 유배지까지 자신을 찾아온 정조 임금 앞에서 "전하와 함께한 모든 기억, 모든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그는 눈을 감았다. 또 정조 임금이나 숙위소 부하들도 한결같이 홍국영의 참회와 진심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홍국영이 진심으로 자신의 태도를 반성했는가에 관해서는 무어라 확언하기가 힘들다고 말해두는 편이 가장 정확할 듯하다. 강원도 유배지에서 화병으로 죽었다는 <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그가 최후까지 뭔가 억울해하고 정조를 원망하면서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실록 편찬자들이 홍국영에 대해 매우 가혹하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화병으로 죽었다'는 한 마디만 놓고는 그가 억울함과 원망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판단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홍국영이 자신의 태도를 진심으로 반성했다고 판단케 할 만한 정황도 쉽게 찾아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역은 그야말로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편이 좋을 듯하다. 사료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영역에 관한 한, 드라마 작가는 폭넓은 '자유재량권'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산>의 작가는 홍국영이 진심으로 반성했다는 쪽으로 자신의 '자유재량권'을 행사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드라마 <이산>의 홍국영은 전체적으로는 실제의 홍국영과 일치했지만, 인물 됨됨이나 정조와의 만남 그리고 권력욕과 최후 상황 같은 몇 가지 측면에서는 실제의 홍국영과 일정한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이 같은 세부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조의 즉위 전후 및 집권 초기에 정조 임금의 치세 기반을 닦아놓고 사라진 홍국영의 전체적 이미지가 드라마에서 비교적 잘 묘사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 <이산>에서 사료에 비교적 근접하게 묘사된 인물을 들라면 그중 한 명으로 홍국영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산 #정조 #홍국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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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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