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나무'에게서 희망을 보다

아름다운 세대교체 현장 변산공동체학교

등록 2008.05.19 11:03수정 2008.05.1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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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대 교체


a 윤구병 선생님 때를 알고 돌아서 가는 뒷모습이 아름답다.

윤구병 선생님 때를 알고 돌아서 가는 뒷모습이 아름답다. ⓒ 최상천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a  윤구병 선생 전 변산공동체학교 대표

윤구병 선생 전 변산공동체학교 대표 ⓒ 최상천


자기 손으로 이루어 놓은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도무지 움켜쥔 손을 펼 줄 모른다. 움켜쥔 손가락을 펼치면 하나가 아닌  5개의 가능성, 아니 펼쳐진 손가락 사이사이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다는 사실을 아집과 독선의 시선이 가리기 때문일까?

작년부터 공식적인 자리마다 자신의 의지를 알려 온 윤구병 선생은 자신이 말해왔던 대로 아름다운 세대교체를 실천해 펼침이 가져오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변산공동체학교' 하면 윤구병 선생을 떠올리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상태다. 새 공동체 대표는 초창기부터 윤구병 선생과 밥상공동체 식구로 호흡을 같이 해 온 김희정씨다.

외모에서 말투까지 한없이 온유하고 부드러워  순한 농부로만 보이는 그이지만 공동체와 공동체내 대안 교육에 대한 올곧은 신념만은 그 누구 못지않게 확고해 보였다. 

a 김희정씨 현 변산공동체학교 대표

김희정씨 현 변산공동체학교 대표 ⓒ 최상천

사실 변상공동체 학교는 2008년부터 중고등 과정 각 5명씩 15명에서 30명의  학생들을 전국에서 받아 무상으로 교육시키려는 계획으로 장학회, 기숙사, 교사 확보 등 교육에  필요한 분야를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3월 1일 입학식을 기점으로  8명의 신입생은  3명의 책임교사부터  국어, 영어, 수학, 산처럼 물처럼(철학 과목을 변산공동체 학교에서는 저렇게 부른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의논해서 붙였다고 한다) 등 학과 수업을, 공동체의 다른 식구들에게 각각 살림에 필요한 바느질, 천연염색, 목공, 효소 담그기, 집짓기,  농사 등 다양한 노작교육을 받고 있다.

2층짜리 학교 건물은  완전히 마무리가 된 상태고 기숙사 한 동은 벌써 구들을 놓고 있는 중이다. 남은 한 동의 기숙사는 학생들이 자기들이 찍은 벽돌을 사용해 학생들이 직접 지을 계획이라고 한다. 자기 손으로 잠잘 곳, 먹을 것, 입을 것을 해결하는 수준이면 사막에 던져진다 해도 살아남을 자생력을 갖추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a  변산공동체학교 교사 저 곳에서 마음대러 책을 읽고 풍물을 비롯한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변산공동체학교 교사 저 곳에서 마음대러 책을 읽고 풍물을 비롯한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 최상천


변산공동체 학교 교육 목표는 '제 앞가림하며 살 수 있는 능력 기르기'와 '함께 어우러져 사는 삶'이다. 그들이 그렇게 무상 교육을 고집하며 대안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가장 큰 목적은 무엇일까? 

김희정씨는 부모나 어른에 의한 강제가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공동체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자연스럽게 공동체 식구가 되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교육을 하고 있노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아이들 스스로 공동체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들에게 이 학교의 취지를 충분히 설명한다. 아이가 함께 생활하고 배우며 정말 이곳이 좋아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지만, 만일 만족하지 못하면 어떻게 다른 진로를 잡을 것인가를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라며 어디까지나 학생 자율에 맡긴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a 학생들이 직접 찍은 흑벽돌 저것은 학생들이 살 기숙사를 지을 흑벽돌이다.
학생들은 벽돌을 찍는 일부터 집을 짓는 일까지
자신들 손으로 이루어 낼 에정이다.

학생들이 직접 찍은 흑벽돌 저것은 학생들이 살 기숙사를 지을 흑벽돌이다. 학생들은 벽돌을 찍는 일부터 집을 짓는 일까지 자신들 손으로 이루어 낼 에정이다. ⓒ 최상천



밥상공동체 일원이 되기 위해 특별한 자격 요건이 있는가 묻자 "특정 종교 공동체와 다른 생활공동체라 문턱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동체이다 보니 자기 소유가 없다보니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가 하나의 문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공동체에 들어와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하면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아이들도 다른 대안학교나 일반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하고"라고 설명해준다.

변산공동체 식구들이 가장 많이 고민해왔던 차세대의 교육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있겠는가를 묻자, "윤구병 선생님의 실험학교 이야기는 완결 형태가 아니고 시간이 흐르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가는 진행 형태라고 봐야한다. 공동체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의 초등 교육이 3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 아이들이야말로 우리가 애초에 준비했던 방식에 따라 교육을 시작하는 첫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주느냐에 공동체 세대 이어짐이 달려있다"며 밝게 웃는 그의 모습에서 열려진 손가락 사이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1세대 나무에게서 희망을 보다

a 위용을 자랑하는 수탉 옆에 암탉도 보인다. 저렇게 놓아 기르는 닭들은  위용부터 늠름하기 이를데 없다.

위용을 자랑하는 수탉 옆에 암탉도 보인다. 저렇게 놓아 기르는 닭들은 위용부터 늠름하기 이를데 없다. ⓒ 이명옥


힘찬 수탉의 울음소리로 변산공동체학교 아침이 밝았다. 연휴가 끼어 있어 대부분의 학생들은 집에 다니러 간 상태라 밥상공동체 식구와 손님인 우리 일행이 조촐하게 모여 앉아 7시에 아침을 먹었다. 

농촌의 아침은 인위적인 시간이 아니라 자연의 시간에 맞춰 동이 틀 무렵 시작되고 해가 저물면 일을 마무리하고 쉰다. 아침을 먹고 나니 오전에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줄테니 잠시 차를 마시며 기다리라고 한다.

드디어 우리에게 과제가 맡겨졌다. 그 과제는 김호경 선생과 함께 1층 한쪽 구석에 가득한 책들을 2층으로 나르는 일이다. 책이 얼마나 많은지 마치 도서관을 연상케 한다.

a 책을 2층으로 나르고 있다.  5명이 오전 내내 날랐는데도 다 나르지 못했다.

책을 2층으로 나르고 있다. 5명이 오전 내내 날랐는데도 다 나르지 못했다. ⓒ 이명옥


'산처럼 물처럼'이라는 철학과목을 맡은 호경선생은 잠시도 쉬지 않고 우직하게 책을 나른다. 서너 번 책을 나르던 나는 금세 허리가 아프고 팔이 당겨서 슬그머니 주저앉아 쉬고 싶은데 다른 이들은 도무지 쉴 기색이 없다.

마침 새참을 먹으라는 소리에 냉큼 달려 나가 효소 탄 물과 막걸리 떡과 김치를 먹으며 은근슬쩍 주저앉아 점심시간까지 버텼다. 점심을 먹은 후  기운을 차리고 나니 미안한 생각이 들어 오후에 열심히 책을 나르려고 생각했는데 오후는 일을 쉬기로 했단다.

불한당(땀흘려 노동하지 않는 사람)이라 별 도움이 되지 않으니 차라리 놀리는 것이 낫겠다 싶었나 보다. 그런데 막상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자 심심하고 무료해진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쉬 마려운 강아지 형국으로 끊임없이 이리저리 서성이며 무료함을 떨쳐 버릴 궁리를 한다.

a 비사치기를 하려고 돌을 세우고 있다.  쓰러지기 힘들게  뒤에 더 넓은 돌을 놓는 전략을 쓰고 있는 나무

비사치기를 하려고 돌을 세우고 있다. 쓰러지기 힘들게 뒤에 더 넓은 돌을 놓는 전략을 쓰고 있는 나무 ⓒ 이명옥


a  철봉을 타고 노는 나무 나무는 끊임없이 몸을 놀리는 놀이를 찾아낸다

철봉을 타고 노는 나무 나무는 끊임없이 몸을 놀리는 놀이를 찾아낸다 ⓒ 이명옥



a 네잎클로버를 찾는 나무 나무는 어디에 유용한 풀잎이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네잎클로버를 찾는 나무 나무는 어디에 유용한 풀잎이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 이명옥



그런데 나무는 조금도 심심한 기색이 없이 끊임없이 새로운 놀이를 생각해내며 즐겁게 뛰어다닌다. 같이 간 이가 나무와 비사치기를 하며  끝없이 대화를 나눈다.

나중에 들으니 자신이 즐겨가는 비밀아지트 이야기부터 효소에 들어가는 풀들이 어디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지, 어디에 산딸기가 하얀 꽃을 소담스럽게 피워 빨간 산딸기 열매를 가득 맺을  준비를 하고 있는지, 어디에 가면  한곳에서 더덕을  많이 캘 수 있는지, 찔레 새순을 더 많이 꺾어 먹을 수 있는 곳까지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싶어 하더란다. 나무를 따라다니면 하루 종일 도무지 심심하거나 무료할 틈이 없을 것 같았다.

나무는 변산공동체 대표인 김희정씨 아들로 변산에서 나고 자란 아이다. 그 나무야말로 윤구병 선생님이 말씀하신 놀이와 일, 삶과 앎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과 몸으로 이미 체득한 아이인 것이다. 선생이 변산공동체학교를 통해 나누고자 했던 배움의 핵심이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손발 부지런히 놀려 자기 앞가림을 하며 사는 것, 그리고 내것을 고집하지 않고 남과 더불어 사는 법을 몸에 익히는 것.

그러나 그 아이가 어디에 뿌리를 내리든 스스로 앞가림을 확실하게 하고 남과 더불어 살 것이니 나무에게서 대안학교의 목표가 이루어진 희망을 보았다고 말한다면 너무 성급한 것일까?

a 윤구병 선생님의 손 저 손이 14년간 공동체 살림을 꾸려낸 손이다.

윤구병 선생님의 손 저 손이 14년간 공동체 살림을 꾸려낸 손이다. ⓒ 최상천



a 나무의 구릿빛 손이 건강해 보인다 나무는 변산서 나고 자란 아이다. 저 손이야말로  미래 변산공동체학교를 든든하게 지켜낼  희망의 손이 아닐까?

나무의 구릿빛 손이 건강해 보인다 나무는 변산서 나고 자란 아이다. 저 손이야말로 미래 변산공동체학교를 든든하게 지켜낼 희망의 손이 아닐까? ⓒ 최상천



어쨌거나 변산공동체학교 커다란 밑그림을 윤구병 선생이 그리고 그 기초를 닦았다면 그 위에 튼튼한 집을 짓고 세대에 세대를 이어 건강한 삶의 뿌리를 내리는 것은 제 앞가림을 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확실하게 익혀 아름다운 세대교체를 끊임없이 이어 나갈 그 누군가의 몫일 터이다.

a 변산공동체 식구들 저들이 아름다운 세대교체를 이어 변산공동체학교를 지켜 갈 사람들이다.

변산공동체 식구들 저들이 아름다운 세대교체를 이어 변산공동체학교를 지켜 갈 사람들이다. ⓒ 최상천



변산을 떠나오며 박노해 시인의 시 <다시>가 떠오르며 왜 사람만이 희망이 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박노해

사람만이 희망이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변산공동체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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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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