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리의 트렁크엔 과연 무엇이 들었나

[서평] 백가흠 소설집 <조대리의 트렁크>

등록 2008.05.20 15:52수정 2008.05.2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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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녹색 바탕 표지에 핏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조대리의 트렁크'라는 글자가 차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속에 덩그러니, 놓였다. 책 표지에서부터 강한 인상을 주는 백가흠의 <조대리의 트렁크>는 무한경쟁, 약육강식의 무시무시한 현대 사회 속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루저(Loser)들의 비애를 그린 단편소설집이다.

첨예한 현실 인식이 돋보이는 이 책 속에는 모두 아홉 편의 작품이 실렸는데, 대부분 암울한 사회상을 극단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하나같이 다 절망적이다. 신용불량자, 쇄락한 동네의 모텔 사람들, 어린 미혼모와 홀로 버려진 아이, 노숙하는 소녀와 할아버지, 패배의식에 젖은 변두리병원 의사, 세상과 단절된 하체장애인까지. 타의적이든, 고의적이든 더 이상 '희망' 따윈 품지 않는 그들은 대개 돈에 의해 계급이 나뉘는 처절한 자본주의 체제의 실체에 무릎을 꿇고, 곧바로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맨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만다.


돈을 가진 자는 여유로운 생활과 건강한 자신감, 그리고 행복을 어렵지 않게 손에 쥘 수 있다. 자기 스스로가 망가지지만 않는다면. 하지만 그렇지 못한 <조대리의 트렁크> 속 인물 대부분은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삶을 살고 있을 뿐 아니라, 패배의식으로 가득한 상태다. 또한 스스로 자신들은 전혀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적어도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은 그렇다. 그들은 IMF 사태 이후 밀려들어온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서 그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한 채, 이유도 알지 못하고 삶의 사각지대로 추방당했다.

외면당한, 불편한 진실

<조대리의 트렁크>
<조대리의 트렁크> 창작과비평사
낭자한 유혈의 질척거리는 소리와 울음, 비명소리까지 읽는 이의 귓가에 들리는 듯한 <조대리의 트렁크>. 작가는 왜 사회의 어두운 면만 부각시켰을까. 식상한 이야기지만, 좀 더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순 없었을까.

해답은 다름 아닌 현실에 있다.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사건은 날로 늘어만 간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그런 일이 없어!' 혹은 '아주 극히 드문 일'이라고 방치하는 사이, 이미 곪을 대로 곪아 터져버린 삶의 균열은 브레이크조차 없는 무법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끊임없이 세계화, 선진화를 외치며 거대기업과 콘체른(기업결합)들의 뒤를 봐주는 나라가 많다. 특히나 유명 대기업이 있는 나라라면 절대 피해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다. 많은 기업들은 예나 지금이나 아프리카의 콩고, 수단 등에서 벌어지는 내전에 자금과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아동노동 및 임금 착취, 성적 학대, 주요 자원 탈취 및 지역 파괴, 환경오염 등 온갖 차별과 비리를 벌이는데 혈안이 돼 있다. 그럼에도 '돈'과 '국가 경쟁력'을 위해 기업과 정부는 이 사실들을 은폐시키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 또한 예외는 아니다.

세상은 점점 잔인하고 살벌한 무법천지의 정글로 변모하고 있다. '마음껏 자유롭게 경쟁하라!'는 말은 곧 돈 있는 자는 성공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낙오자가 된다는 말로 치환된다. '자본'을 위해서라면 인권도, 룰도, 법도 그들에게는 한낱 장애물일 뿐. 거대 권력의 틈바구니 속에서 혜택을 입지 못한 개개인은 폭력과 절망을 희망보다 먼저 배운다. <조대리의 트렁크> 속 주인공들의 극단적인 행동 양상은 그만큼 우리의 현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증거다.


신용불량자 신세의 잡지기자는 현실에 무기력한 채 그저 벗은 여자의 몸에만 몰두하고(장밋빛 발톱), 쇄락한 동네의 웰컴 모텔에서는 어린 미혼모가 눈과 귀가 없는 아이를 화장실에서 출산한다(웰컴, 베이비!). 책임감보다는 놀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한 어린 소녀는 자신의 아이에게 아무런 교육도 시키지 않은 채 방에 방치시키며, 젊은 남자와 결혼을 꿈꾸는 39세 박진숙은 심부름센터에서 훔친 아이를 데려온다(웰컴, 마미!). 가족을 갖기 위해 거리의 소녀 연주를 받아들인 노숙자 할아버지는 끝끝내 소녀에게 버림받고 만다(매일 기다려).

페이지를 넘기기가 버거울 정도로 극단의 정서가 이 책을 지배하고 있다. 가난하고 못난 자들은 끝내 창피당하고, 멸시받고 실패할 뿐이다. 그들은 결코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지 못한다. SF 소설 속 디스토피아가 현재에 존재한다면 바로 이런 곳일까. <조대리의 트렁크>는 끊임없이 이것은 현실이라고 말한다.

우리 주변에서 계속 일어나는 '날것' 그대로의 현실이라고. 읽는 이의 성향에 따라 얼굴을 찌푸리다 책을 덮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결코 바뀌지 않는 현생 지옥의 결말을 끝까지 지켜보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백가흠의 <조대리의 트렁크>가 현실 제시에만 열중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책의 힘이 여기까지였다면, 이것은 한낱 분노에 찬 외침과 다르지 않았다. 작가는 암울한 내용의 이야기 속에 담담하게 '이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트렁크엔 탈진한 한 할머니가 얌전히 웅크리고 있다. 눈이 부신 듯 뜨지 못하고 조대리를 올려다본다.
영수냐? 나 괜찮어.
노인이 겨우 입을 달싹이며 말한다. 움푹 팬 노인의 깊은 눈을 조대리가 손으로 가린다.
맞어유. 얼른 집으로 가유.
조대리는 노인을 업고 집으로 뛰기 시작한다. 뛰면서 자기 엄마보다도 더 가벼운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 본문<조대리의 트렁크> 중에서

표제작 <조대리의 트렁크>에서 조대리는 영수의 차를 대리운전하며 그의 인생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혼과 사업실패, 그로 인해 깨진 가정과 행복. 다음 날 영수는 자살하고, 조대리는 차 트렁크에서 영수의 노모를 발견한다. 혼란스럽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노모를 버리지 않고, 업고서 집으로 향한다. 그 자신이 이미 병든 노모를 모시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굿바이 투 로맨스>나 <루시의 연인〉에서도 희망의 징후는 발견된다. <루시의 연인>에서 준호는 무시하기만 하던 미순을 끝내 받아들이며, <굿바이 투 로맨스>의 영숙과 미주는 고문하는 남자에게 끝내 굴복하지 않는다. 이 모두는 현실에 그대로 머물지만은 않겠다는 작지만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조대리의 트렁크>가 제시하는 지향점을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에서 자본의 힘은 강력하다. 하지만 사람은 그것만으로는 살 수 없다. 백가흠이 만들어낸 인물들은 이제 행복하기 위한 훈련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조대리가 영수의 노모를 업고 뛰어가듯, 영숙과 미주가 연대해 작지만 거대한 힘을 발휘하듯. 그 힘찬 의지와 연대가 결국 <조대리의 트렁크>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아니었을까.

조대리의 트렁크

백가흠 지음,
창비, 2007


#백가흠 #조대리의트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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