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리즘의 가능성 감동적인 영상, 설득력 있는 내레이션 등은 PD저널리즘의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이동현
"저널리스트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
그가 밝힌 '구수환 저널리즘'의 제1원칙이다. 구 PD가 준비해온 '주요 작품 모음' 속에는 현장 속 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총소리가 끊이지 않는 예루살렘 골목을 뛰어다니고, 약탈당해 만신창이가 된 이라크의 박물관 내부를 둘러보고, 동티모르에 가서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벨로 주교와 인터뷰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나니, 상투적으로 들릴 수 있는 '현장 강조'의 목소리가 훨씬 설득력 있게 들렸다.
"저널리스트는 전달자입니다. 국민이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쫓아가서 확인한 다음 그대로 전달해 주는 게 저널리스트라고 생각합니다. 분쟁지역에 가서 배운 게 저널리스트는 현장에 있어야지 사무실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무실에 앉아서 인터넷을 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두 번째 원칙은 '검증'이다.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저널리스트 자신과의 신뢰를 의미한다면, 검증은 취재를 당하는 사람과의 신뢰를 지키는 것이다.
"후배 PD들이 인터뷰할 때도 꼭 3번을 하게 합니다. 여러 번 인터뷰를 해서 공통점이 있는 부분은 믿을 만한 얘기로 판단할 수 있으니까, 그 부분은 쓸 수 있는 거죠. 고발을 하되, 절대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널리즘이 진실을 파헤치는 것인데, 그걸 왜곡해서 또 다른 피해자를 낳으면 되겠습니까? 검증에는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죠. 그래서 집에 못 들어가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마지막으로 '원고를 직접 챙긴다'는 원칙이 있다. 보통 다큐멘터리 제작은, PD가 촬영해오면 그 촬영분을 보고 작가가 구성안을 짜고, PD가 편집을 한 후, 최종 편집본에 맞춰 다시 작가가 내레이션 원고를 작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구 PD는 촬영과 편집뿐 아니라 내레이션 원고 작성까지 직접 챙긴다.
시사 다큐, 특히 고발 프로그램에서는 잘못된 내레이션 한 마디가 시청자들에게 사실을 잘못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속에 반드시 온마이크(기자나 PD가 현장에서 직접 마이크를 들고 화면에 얼굴을 드러내며 설명하는 것) 장면을 넣는 것도 같은 이유다. 최대한 왜곡된 해석 없이 있는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사안을 전달하려는 노력이다. 시청자들과의 신뢰를 쌓으려는 것이다.
"나중에 PD가 되든 기자가 되든. 여러분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굉장히 중요해요. 언론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원고를 쓰면 자칫 명예훼손 소송을 당할 위험마저 있습니다. 저는 꼭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온마이크를 합니다. 빨리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하는 급박한 순간에도 제가 꼭 온 마이크를 하는 이유는 '저는 속이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얘기는 진실입니다, 보십시오'라고 시청자들에게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우회적 고발'이 더 효과적시사 다큐, 고발 프로그램 하면 서릿발 같은 비난과 고발이 떠오르지만 구 PD는 조금 다른 얘기를 꺼냈다. 때로는 비난보다 공감이, 고발보다 칭찬이 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자신이 복무했던 백두산 부대를 제대 20년 만에 찾아 제작한 다큐 <가칠봉의 수호 천사들>(2001). 촬영을 하면서 그는 20년 전 자신이 겪었던 부조리가 아직도 군대에 남아 있는 것을 알았지만 부조리보다는 장병들의 노고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방송이 나가고 게시판에 글이 뜨기 시작했어요. '아들 인간 만들려면 군대 보내야 한다' 이런 글부터 '도대체 (불법, 특혜로) 병역면제 받은 사람들은 뭔가요'라는 글까지 나왔죠. 제가 병역 문제 고발을 직접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우회적으로, 전방에 간 군인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고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는지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 화살이 고위층 병역 면제자들로 간 겁니다. 우회적으로 고발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우회적 고발이었을까? 친분 있던 종군기자의 사망 소식을 듣고 기획했다는 다큐멘터리 <종군기자, 그들이 말한다>(2004).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이라크전에 '참전'해, 다치거나 죽은 종군기자 중 한국 기자는 단 한 명도 없다. KBS에서 최초로 방탄복을 구매해 입고 전쟁터를 누빈 구 PD지만, 그 또한 종군기자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굉장히 기본적인 의문이 들었어요. 왜 저렇게 사선을 넘나들까? 죽으면 그만인데…. 특종을 하는 게 아니라 존경을 받는 저널리스트는 어떤 사람일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들을 했지요. 저널리스트는 전달자니까 현장에 있어야 한다, 결국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여러분이 명심해야 할 것이기도 하구요."
구 PD가 준비해온 <종군기자…>의 주요 장면. 종군기자였던 약혼자를 전쟁터에서 잃고, 그 후 다른 종군기자와 결혼했지만 그마저 분쟁지역에서 잃어야 했던 엘리다라는 여성의 사연이 화면을 채웠다. 남편의 추모비를 쓰다듬는 엘리다의 모습 위로 내레이션이 흘렀다. '종군기자는 역사의 현장을 남기기 위해 뛰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그들이 역사의 기록으로 남는다.' 이 말을 들으며 학생들 틈의 구수환 PD를 보니 그는 눈물을 훔쳐 내고 있었다.
PD 저널리즘은 위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