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묘역 입구의 박힌 표지석'전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분 민박 마을' 이라는 기념 표지석을 뜯어와 여기 묻었다고 한다.
안호덕
내가 오랫동안 오지 않았나 보다. 신 묘역은 처음이다. 행사를 앞두고 준비를 해서 그런지 잘 정돈된 느낌이다. 일행과 한 분 한 분 묘지를 둘러본다.
오른쪽 끝. 따로 조성된 묘역이 있다. '행방불명자 묘역'. 시신을 찾지 못해 비석만 세워 놓은 묘지. 곤봉에 짓이겨지고 총탄에 뚫려 버려지듯 암매장되었을 저 많은 사람들. 아직도 누구도 모르는 그 어디선가 웅크린 채 잠들어 있을 저 많은 사람들. 부디 시신이라도 님들이 계실 이 주인 없는 무덤으로 돌아오소서….
아기 돌 사진인가? 비석 한 켠에 박혀 있다. 일곱 살 나이에 피어 보지도 못하고 죽어 시신도 엄마 아빠에게 돌아오지 못한 아이. "창현이를 아버지 가슴에 묻는다"라고 적혀 있다. 어떤 할아버지가 "손자 생각나서 못 보겠어, 어떻게 이런 놈들이 있어"라며 발길을 돌린다. 묘비 앞에는 '이창현의 묘(墓)가 아닌 이창현의 령(靈)'으로 새겨 놓고 있다.
신 묘역을 돌아 구 묘역으로 올라오다, 일행 중 한 분이 김남주 선생 묘소에 드릴 국화 몇 송이를 샀다. 신 묘역과 달리 구 묘역에는 사람들이 많다. 단체 깃발도 보이고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올라온 아이들도 보인다.
입구에 깨어진 대리석 조각이 바닥이 깔렸다. '전두한 대통령 각하 내외분 민박 마을'. 82년인가? 담양의 어느 민가에 민박을 한 걸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를 뽑아서 여기에 묻어 놓았단다.
담양이면 광주와 지척의 거리. 차마 광주에 들어오지 못하고 담양에서 하룻밤을 보냈던 학살자 멍에를 쓴 전두환. "요즘 젊은이들이 날 싫어하는가 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말이야." 이런 억장 무너지는 농담을 하는 그의 모습이 최근에 TV에 비쳤다.
그는 아직 건장하고 눈물 뚝뚝 흐르는 참회를 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인간의 생명이 영원하지 않다면 그도 죽을 것이다. 국립묘지에서 어떤 호사를 받으며 누워있든 간에 여기 '전두환'이라는 이름은 대리석에 닳아 없어질 때 욕된 세월을 겪어야 할 것이다.
"5월 17일 卒(?)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도 모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