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순 경찰서장독립군 출신이다. 4·3 과정에서 집단학살을 막기 위해 노력했고,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성산포 경찰서장으로 근무하면서 예비검속자에 대한 총살을 거부했다.(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촬영)
장태욱
한편, 성산포 경찰서에서는 당시 경찰서장이었던 문형순이 군의 총살지시를 거부하여 대규모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문형순 경찰서장은 독립군 출신이었는데, 수감자들에 대해 집단 총살을 강요하는 해병대 정아무개 참모의 지시에 대해 '부당하므로 불이행'이라고 써서 지시를 거부했다고 한다.
문형순 서장은 C급(4명)과 D급(76명)으로 분류된 자들 중 6명만 군에 넘겼는데, 이들은 7월 28일 서귀포 경찰서로 이송되었다. 이들 6명은 7월 29일 새벽에 서귀포 경찰서 수감자들과 함께 처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비검속자 사살은 극도로 비밀리에 수행되었기에 총살명령을 내린 게 누구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신성모나 육군본부 정보국 김창룡이 명령의 주범이었을 것이라는 일부의 증언이 나왔을 뿐이다.
예비검속자들에 대한 광란의 집단살인이 중지된 것은 1950년 9월의 일이다. 당국은 심사를 통해 제주경찰서 예비검속자 198명, 서귀포 경찰서 수감자 120명, 모슬포경찰서 수감자 90명, 성산포 수감자 198명을 석방하였다.
제주비행장 유골 발굴 결과 집단 암매장, 사실로 밝혀져예비검속자에 대한 대대적인 총살로 제주국제공항이 들어서 있는 옛 정드르 마을은 4·3의 최대 학살터로 알려졌다.
2007년 8월부터 제주비행장에서 제주대학교와 제주 4·3연구소가 공동으로 제주4·3 피해자 유해 및 유류품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발굴팀은 "남북활주로 서북쪽 지점에서 4·3사건 당시 민간인들을 총살하고 암매장했던 길이 32.4m, 폭 1.2-1.5m, 깊이 0.9-1.2m의 구덩이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지금은 옛 정드르 마을에 활주로가 들어섰기 때문에 제주비행장 전체에 대한 발굴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일부 발굴된 지점에서 유골과 유품을 확인함으로써 '집단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소문이 사실임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