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록강.압록강 표지석
이정근
압록강을 건너온 청나라 사신은 의주에서 원접사의 영접을 받았다. 의주관에 진수성찬을 차리고 기생을 불렀다. 춤과 노래가 이어지고 질펀하게 먹였다. 융숭한 대접이었다. 이 때 부터 '칙사 대접'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의주관에서 하룻밤을 묵은 사신 일행은 한성으로 가는 길목 고을 관아를 초토화시켰다. 있는 대로 먹고 마시고 분탕질을 쳤다. 인원도 많을 뿐 아니라 조선 사람을 노예 취급하는 그들을 수발하느라 관아의 노복들이 쓰러지는 사태가 속출했다.
그들은 좋아 보이는 물건은 보이는 대로 약탈했다. 돌아갈 때 가져가기 위하여 대동역에서 말 2필, 어천역에서 말 1필, 양재역에서 말 4필을 빼앗아 안주에 보관시킨 사신 일행이 용강에서는 아예 허리띠를 풀었다.
"조선 여자들 예쁘다 해, 성경(盛京)을 떠나온 지 오래됐다 해."사신 숙소에 여자를 들여보내라는 것이다. 마지못해 평안감사가 관기들을 불러 모았다.
"나라를 위하는 일이다. 한번만 수고해다오.""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네까? 저놈들은 우리 강토를 짓밟고 백성들을 죽인 원수들입네다. 우리는 죽으면 죽었지 오랑캐를 모실 수 없습네다."평양기생들의 반발이 거셌다.
통사정 하는 평안감사"우리라고 무슨 신바람이 나서 저들을 접대하겠느냐. 너희들 마음을 다 안다. 모두가 나라를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니 도와다오."'평양감사도 저하기 싫으면 그만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좋은 자리다. 조선 팔도 수령방백 중에서 가장 선호하는 자리다. 평소엔 기생 따위는 희롱의 대상일 뿐 거들떠보지도 않던 평안감사가 기생들을 붙잡고 통사정했다.
겨우 설득하여 기생들을 들여보냈다. 마지못해 몽고 출신 사신 숙소에 들어간 설향은 곰곰이 생각했다.
'왜란 때 진주 기생은 적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했다지? 대동강에서 연회라도 베풀면 좋으련만 나에게는 그런 기회마저 없구나. 원통하다. 나라의 원쑤, 저 돼지 같은 놈의 수청을 드느니 차라리 죽겠다.'설향은 사신이 몸을 씻으러 나간 사이 목을 매었다. 다가올 열락의 순간을 상상하며 싱글벙글 돌아온 사신은 기겁을 했다. 어여쁜 기생은 간 곳이 없고 머리를 풀어헤친 형상이 대들보에 매달려 있지 않은가. 바지춤을 부여잡고 밖으로 나온 사신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여자는 도망가고 귀신이 매달려 있다 해."깜짝 놀란 노복들이 뛰어 들어갔으나 설향은 절명했다. 아닌 밤중에 소동이 벌어졌다. 분노한 사신은 평안감사에게 발길질을 하며 폭력을 행사했다. 감사와 수령이 사주했다는 것이다. 극구 변명했으나 청나라 사신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사신은 돌아가는 길에 심양으로 끌고 가겠다며 공갈 협박을 했다.
원접사와 함께 사신을 수행하며 남행하던 비국 당상관이 급히 장계를 보내왔다.
"역관에게 탐문해 보니 '중전이 친히 받는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놀랍고 괴이합니다. 대신으로 하여금 홍제원에 달려가 힘을 다해 논변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중전 책봉을 중전이 친히 받아라'라는 것이다. 명나라와의 관계에서도 없던 법도다. 깜짝 놀란 인조는 최명길을 홍제원에 급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