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m. 원산지 아프카니스탄이나 카프카스로 온대지방에 분포. 세계1위의 생산량을 유지하는 곡물. 우리나라 전체 식량자급률 25%. 이 중 밀의 자급률은 0.3%. 다시 말해 99.7%를 외국에 의존해야하는 우리나라 밀소비량의 현주소다.
뭇사람들의 추억이 되어버린 70년대. 그 당시 겨울철 들녘은 보리밭와 밀밭이 어우러진 우리의 생활의 일부였고, 우리 문학작품의 주된 소재꺼리가 되기도 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새봄을 기다렸고, 정월 보름이 지나면 우리는 여럿이 손잡고 노랫말에 맞추어 밭을 밟는 일을 시작했다. 겨울동안 얼어서 수북하게 솟아오른 밭을 밟아줌으로써 뿌리가 튼튼하게 자리내리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러나 절대로 얼어있는 밭을 밟으면 안 된다는 것은 기본. 얼어붙은 밭을 밟으면 뿌리가 상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의 삶의 일부였던 우리의 농토가 지금은 겨울철에 동면을 하는 걸까? 휭 하니 비어있는 들녘은 주인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정부에서는 식량 자급률을 높이려는 정책보다는 값싼 외국 농산물을 수입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고 주장한다.
하긴 축산물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의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문제의 본질을 망각하고 값싸고 질 좋은 미국산 소를 먹으면 좋은 것 아니냐고 궁상거린 나라이니 이해가 될 만도 하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그러니 그 밑에 각료들은 한술 더 뜬다. 그들에겐 미국산 소에 대해선 ‘과학적 증거’가 만병통치약이다. 과학적 증거가 없으면 그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겠다고 윽박지른다.
물론 그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 ‘과학적 증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지탄받아야할 행위이고 이를 과장하는 것 역시 명백한 잘못이다. 아무리 그들이 경제적 이익만을 앞세운다고 하지만 우리는 위정자들의 애국심만은 의심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이 과연 그들의 주장만큼 ‘과학적 증거’가 있을까? 광우병은 동물성사료가 주된 원인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그런데 이미 미국에서는 생산되어 우리나라에 수출하려는 쇠고기는 동물성사료를 먹고 자란 소들이다. 앞으로 동물성사료를 금지시키겠다고 미국이 발표를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나라에 수출하려는 소들은 이미 동물성 사료를 먹고 자란 광우병 위험요소를 가지고 들어오는 소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병박정부에서는 심지어 30개월 이상된 쇠고기도 지금 당장 수입해서 우리 국민이 소화시켜야 FTA가 미 의회에서 통과된다고 으름장이다.
그들에게 이런 소들이 광우병 위험이 전혀 없다는 ‘과학적 증거’를 제시해 보라고 말하면 그들은 뭐라고 할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사후 처방보다는 예방이 훨씬 중요할진데, 하물며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과학적 증거’나 논하는 국가가 과연 지구상에 얼마나 있을지 의아스러울 뿐이다.
일본이나 멕시코 등은 비과학적이기에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우리보다 엄격한 수입제한 조치를 하는 걸까? 이것은 분명 이명박정부의 의식수준 문제다. 철저한 준비와 비전도 없는 정부. 좌충우돌식으로 밀어붙여 보고, 아니면 괴담이라 고집을 부린 정부. 경제를 살려야한다는 원칙만 있을 뿐, 대책은 세계경제 타령이고, 무조건 따르라는 오만과 무지로 포장한 정부. ‘고소영’과 ‘강부자’ 내각은 괜찮고, 그들의 의식 속에 복종하지 않는 국민의 목소리는 그들에겐 오직 ‘괴담’일 뿐이다.
오늘 하루는 위선자들의 짜증스러움을 조금은 덜어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해서 찾아간 곳이 우리들의 축제. 벌써 6년째 시민들과 더불어 계속되어온 ‘제6회 순천 우리밀 축제’다. 단순한 먹거리 축제에서 벗어나, 왜 우리밀이 필요한가를 생각토록 기획된 축제라 한다.
값이 싸다는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해진 경제적 논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찾은 곳. 결과만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속도전 때문에 우리의 농산물은 설 자리가 없다. 차분하게 기다리고 애쓴 만큼의 양심을 거두어들이는 농심이 찾아갈 곳이 드문 나라.
혹자는 말한다. 우리 땅에서 거두어들인 농산물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물론 소비자의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외국 농산물과 값의 차이를 논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선 무지의 다름은 아닐련지. 그는 무엇으로 사는지 묻고 싶다.
혹자는 먹기 위해 살고, 혹자는 살기 위해 먹는다고도 한다.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다. 우리 농산물이 우리에게 주는 효과를 단순한 수치로 논하는 것은 우리 국토에 대한 유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밀 1평을 재배하면, 산소 2.5kg을 생산하고 탄산가스 3kg을 흡수하여 우리의 대기를 정화한다. 이뿐 아니다. 토양 유실을 방지하여 지하수를 보전하고 땅의 산성화를 막고 뿌리가 깊어 땅속 미생물들의 활동을 활발하게 하여 지력을 증진시키는 등 그 혜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결과만을 이야기한다.
조금은 서글프지만 여기서는 잠시 접기로 하자. 전남 순천시의 노관규 시장을 만나보자. 지난 2002년부터 생협연대와 순천시가 밀 재배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연간 300톤의 밀을 생산하고 있으며, 금년에는 약 400~450톤 정도가 생산될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 밀 자급률 목표치인 3%까지 확대하려면, 연간 8만 톤을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 밀 총 생산량 8천 톤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순천시에서는 우리 밀 살리기 일환으로 지난 2003년부터 매년 우리 밀 재배농가에 종자대 등으로 4천~5천만 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생협연대와 순천시, 전라남도, 순천농협 등이 연합하여 순천 상하수도사업소 주변 3만여 평의 밀밭에서 매년 ‘순천우리 밀 축제'를 열고 있다고 한다.
생협연대 관계자에 따르면 “다른 시도에서도 우리 밀 축제를 열고 있지만, 이곳 순천만큼 활발하게 우리 밀 열기를 보이고 있는 곳은 없다"고 아쉬워했다. 또 (사)한국생협연대 신복수 회장은 우리밀 생산을 늘리고 소비자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자연드림 베이커리“ 지점을 현재 30곳에서 전국에 백 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뻥 뚫린 들녘. 작은 봄바람에도 쓰러질 듯 한들거린 밀. 한참동안 축제가 열리고 있는 밀밭길을 걷다 반갑지 않는 휴대폰 전화에 동심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밀밭고랑 사이에서 옛 일(연인)을 그려보고 혼자만의 미소에 답한다. 아이들은 밀떡 굽기가 마냥 재미있나 보다.
2008.05.25 15:04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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