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경기도 광주의 한 수목원에서 생명평화순례단의 도법 스님, 문정현 신부, 김용옥 교수와 나란히 걷고 있는 수경 스님(맨 오른쪽)
박상규
"이명박 대통령은 여전히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광우병이나 한반도대운하를 대하는 태도가 똑같다. 정직하지 못하다. 절차나 과정이 없다. 국민들이 자기 직원인가. 국가를 일개 회사처럼 생각하는 것같다. 민주적 방식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국정을 이끌어야 하는데 완전히 독선적인 방식으로 다루니까 저런 망상이 나타나는 것 아닌가."
수경 스님(화계사 주지)의 말이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과 함께 김포 애기봉을 출발해 한강과 낙동강·영산강·금강을 도보 순례한 그는 한발 한발 내딛으며 한반도대운하의 계획도를 지워나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세와 끊임없이 소통했나보다. 청계 광장을 연일 붉게 물들이는 '촛불'에 대해서도 강하게 질책하는 것을 보니 그렇다.
옥수동 성당서 만난 수경스님 "대체 국정철학이 뭔가"수경 스님은 만난 것은 103일째 순례를 마치기 하루 전인 지난 23일 오후, 서울 옥수동 성당에서다.
수경 스님은 순례단과 함께 지하 강당에서 여장을 풀고 잠자리를 마련하다가 기자를 보자 반가운 기색을 내비쳤다. 기자는 함께 '공양'을 먹으면서 밤 늦게까지 순례단과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수경 스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고, 그가 다른 순례단원과 대화하는 것도 옆에서 지켜봤다.
수경 스님은 "대운하는 생명의 터전을 그르치는 것이고, 수입 쇠고기 협상은 국민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이라면서 "안전치 못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환경과 생명의 강을 파괴하는 것은 결국 사람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경 스님은 특히 "처음에는 대운하를 통해 물류 혁명을 하겠다고 주장하다가, 말이 안되니까 관광 운하를 얘기하고, 그것도 말이 안 되니까 이제는 '치수' 개념으로 4대강 하천 정비 사업을 한다고 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사실상 운하를 파자는 얘기가 아니냐"면서 "이렇게 말을 자꾸 바꾸는 것을 보면 도저히 신뢰할 수가 없고 국정철학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월 혹한의 날씨에 김포 애기봉을 출발할 때 종교인들로 구성된 '생명의 강 순례단'이 강조했던 말은 '자성'이었다. 운하를 반대하기보다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100일동안 자성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수경 스님은 "일부 구간에서 목격한 그 썩은 물이 다시 내 입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염만 시키고 있는 실체가 바로 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내 자신의 삶에 대해 반성을 많이 했고, 앞으로 이를 실천해나가는 생활을 해야겠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체투지라도 하겠다" 수경 스님은 순례 중에 만난 70대 노인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농사꾼이라는 그가 나를 붙잡고 절규를 하더라. 이건 꼭 막아야 한다. 터미널이 아니라 그 곳에 금을 깔아준다고 해도 막아야 한다더라. 강을 없애는 건데, 대신 세면통을 만드는 건데, 그럼 주변의 모든 생명이 죽는다고 말하더라. 그런 상황에서 사람인들 살 수 있냐는 것이다. 우리 순례단을 붙잡고 30여분 동안 절규하더라. 그런 사람이야말로 전문가 아닌가."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의 발길은 다음날인 24일 멈췄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하천 정비사업'이란 명목으로 사실상 운하 추진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밤 10시경, 잠시 스님을 만나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겁니까?"
"4만불 시대가 되고, 5만불 시대가 된다고 해서 한 사람이 1000끼를 먹겠어, 1만끼를 먹겠어? 삶이란 단순한 것인데 70년 가까이 살아온 사람(이명박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삶을 한번 되짚어 보았으면 좋겠어. (한숨) 죽음에 이르렀을 때 후회없는 삶이라는 것이 어떤 삶인지 깊이있게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함께 참회한다는 심정으로 난 오체투지도 검토하고 있어. 찬반 양론으로 갈등을 겪는 세상에 대한 참회를 통해서…. 다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생명평화운동을 해야겠어. 부산에서 시작해 서울까지. 한 5~6개월 걸리지 않겠어? 어쨌든 당분간은 화계사에 들어가서 기도할 예정이야."
기자는 이날 밤 옥수동 성당에서 최근 한반도대운하와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 정비계획의 실체는 운하'라고 양심선언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연구원(46) 소식을 접했다. 부랴부랴 이와 관련한 기사를 밤 늦게까지 쓴 뒤에 수경 스님을 찾았으나, 이미 잠자리에 들었다.
순례단의 홍보를 맡은 명호 팀장(생태지평 연구원)에게 "수경 스님께서 김 연구원의 소식을 알고 있냐"고 묻자 그는 "수경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참 힘든 결정을 했구만"이라고 말한 뒤에 잠자리에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는 수경 스님과 별도의 인터뷰 자리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수경 스님은 인터뷰하기를 계속 꺼렸다. 하지만 순례가 끝나는 상황에서 이날 기자가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자, 수경 스님은 "알아서 정리하라"고 말했다.
다음은 그날의 대화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김이태 연구원, 참 힘든 결정 했구만""처음에는 대운하를 통해 물류 혁명을 하겠다고 주장하다가, 말이 안되니까 관광 운하를 얘기하고, 그것도 말이 안되니까 이제는 치수 개념으로 4대강 하천 정비 사업을 한다고 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사실상 운하를 파자는 얘기가 아닌가. 이렇게 말을 자꾸 바꾸는 것을 보면 도저히 신뢰할 수가 없고 국정철학이 없는 것이다.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서로가 불행해지는 것이다. 대통령이 미워서가 아니라 대통령이 정직하게 국정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가 없잖아. 본인 스스로가 그러니. 사실 이건 이명박 대통령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통령이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런 거긴 하지만. 이제는 대운하 찬성반대를 뛰어넘어서 생명운동으로 전개해야겠다. 대운하 반대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 모순, 끝없는 욕망에 대해 한반도에 살고 있는 모두가 성찰하고 각성해야 한다. 그 안에 대운하가 포함되는 것이다. 성찰하지 않으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