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휴대폰, 이렇게 만들었던 거야?

[서평] 세계적인 기업들의 파렴치한 행태를 파헤친 <나쁜 기업>

등록 2008.05.26 15:42수정 2008.05.2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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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근로자가 품위와 존중으로 대우받는 기업(갭),
우리의 사명은 여성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나이키),
인권은 우리 기업문화의 중심이다(리복),
어린이들을 위한 세계적인 사회공헌(맥도날드),
국제 인권의 위상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트라이엄프)…….

대부분의 세계적인 기업들은 아동노동에 반대하며, 세계 인류의 공동선에 부응하는 활동규범을 지향한다고 부르짖는다. 자신들이 쓴 자금 내역을 공개하기도 하고, 광고나 언론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휴머니티'를 강조하는 센스도 잊지 않는다.


하루 온종일 쏟아지는 광고의 홍수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을 끊임없이 노출시키고 있다. 화려한 스타와 거대 자본을 앞세운 그들의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동경의 대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사람을 향한다'는 기업들의 다짐을 그대로 믿어도 되는 걸까? 혹시 그들의 배후에는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엄청난 비리가 숨어있진 않을까.

 <나쁜 기업>
<나쁜 기업>프로메테우스
오스트리아 출신의 두 저널리스트 한스 바이스와 클라우스 베르너가 끈질긴 취재를 통해 완성해 낸 <나쁜 기업>(손주희 옮김, 프로메테우스 펴냄)은 바로 그런 보통 사람들의 의심을 속 시원하게 해소해주는 기업 비판서다.

서문에서 작가는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가 분통을 터뜨리게 될 거라고 적고 있다. 과연 맞는 말이다. 이 책에는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세계적인 대기업들의 파렴치한 착취 행위와 부도덕한 윤리의식 등이 그야말로 거침없이 기록되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은 이제 세계적인 대기업들에게 더 없이 잘 어울리는 속담이 됐다. 그들은 콩고, 수단 등 아프리카 지역에 내전을 조장하는 것은 물론, 아동노동 및 성적 학대 그리고 자원탈취와 환경오염까지 일삼고 있다. 그러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항상 친근하고 다정다감한 모습으로 소비자들을 맞이한다. 더러운 자본의 피와 근로자들의 인권은 그들의 양심 뒤로 숨겨둔다, 영원히. 그러면서도 그들은 기회만 되면 가면을 쓴 채, 항상 이야기한다. 인류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겠다, 노동자의 근무환경과 인권을 중시하겠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두 저자는 충실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대단히 논리적이면서 타당한 비판을 가한다. 해결제시 또한 그렇다. 원론적인 제시에 그치지도,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의 세계를 꿈꾸지도 않는다. 직접적인 행동제시를 통해 읽는 이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돈을 벌고 있을까

신자유주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현대 시대에서는 많은 거대 기업들이 '좀더 개인적으로, 좀덜 국가적으로'라는 모토 아래 각종 규제의 철폐와 무한한 개인화를 통해 세계의 질서를 재편하려고 한다. 물론 이것의 중심에는 경제적 효율성이 있다. 그들에게는 얼마만큼의 수익이 나는가가 지상 최대의 과제인 셈. 모든 것의 중심을 돈으로만 보기 때문에 인간이 공장 기계 취급을 당하는 인간성 말살의 현실도 자행되고 있다.


전 세계의 많은 사회단체와 환경단체가 기업의 이런 행동을 지적하지만, 그들의 눈은 좀 더 규제가 적고 쉽게 돈 벌 수 있는 곳으로 향할 뿐이다. 그런 거대 기업들이 가진 욕망의 희생지역이 개발도상국이 밀집된 아시아와 아프리카다. 중국과 동남아, 그리고 수단과 콩고 등 아프리카 지역에서 활동을 하는 그들은 현지 거주민들의 애환은 아랑곳 않고, 오직 돈벌이에만 혈안이 돼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에는 각 나라 당국의 썩어빠진 정치인과 군인들도 한몫을 하고 있다.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식민지로서 유럽 등지의 종주국에 착취 당해 왔던 개발도상국 대부분은 부족한 국가의 인프라 구조 때문에 많은 부채를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국제적인 금융기구와 세계적인 은행들이 내놓은 덫에 걸린 그들은 빚을 탕감하기 버거웠고, 그들에게 나이키, 맥도날드, 아디다스 등의 세계적인 기업들이 손을 내밀었다. 이에 그들의 손을 덥석 잡은 개발도상국의 부패한 정치인과 군인들은 국민들의 가난을 무방비로 내버려두고 자신들의 배만 채우고 있다. 덕분에 가난이 죄가 된 사람들은 거대 기업들이 제공하는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거의 노예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으며 노동력을 소비하고 있다.

거대 전자회사들과 바이엘 콘체른(기업결합)에 값비싼 금속을 공급하기 위해 콩고의 광산에서 성인 남녀와 어린이들이 뼈빠지게 일하고 있다. 수천 명의 사람이 아프리카 1차 세계대전의 자금줄이 되고 있는 콜탄 광석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 본문 중에서

내전으로 혼란스러움을 겪고 있는 콩고에서는 휴대폰의 부품으로 사용되는 탄탈이 나온다. 그리고 탄탈은 콜탄이라고 하는 광물에서 추출된다. 전 세계의 많은 기업이 이 '콜탄'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콩고 정부와 검은 비리를 주고받고 있으며, 덕분에 콩고 주민들은 아주 단순한 도구만으로 위험한 광산 지역에 뛰어드는 위험한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를 함구하고 부인한다. 많은 피해와 울분이 쏟아지면 개발도상국 당국의 책임으로 돌려버리고 만다. 당국 책임자들의 부패함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 물론 반군 세력이 주민들에게 일삼는 살인과 강간 등의 폭력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혼란스러운 내전 상황에도 아랑곳 않고, 군부세력에 무기와 돈까지 제공해주면서 광물을 획득하려고 하는 이들의 파렴치한 행위는 이미 여러 단체나 활동가들에 의해 포착되고 있다. 결국 그들은 잠정적으로 개발도상국들의 내전을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전자산업은 물론이거니와 의약품, 석유 산업, 스포츠 용품 및 의류 등에 이르기까지 개발도상국에서 값싼 임금으로 탄생하는 제품은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 유명 브랜드 이름으로 포장되어 원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고가에 거래된다. 엄청난 부채를 탕감해야 하는 아프리카 등지의 주민들은 정작 이 상품들을 이용할 수 없다.

거대 자본와 화려한 스타로 치장된 이 유명 브랜드들은 시뮬라시옹 시대에 걸맞게 이미지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된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소비된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티셔츠, 속옷, 운동화 그리고 우리 주변의 수많은 물건 중 유명 브랜드의 비율이 얼마나 많은가.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자본과 스타 그리고 브랜드에 현혹되어 얼마나 많은 비리와 부패함을 눈감아 주었는가. 

국내기업도 비리에는 예외일 수 없다. <나쁜 기업>의 저자들은 콜탄 광물을 소유한 사람으로 신분을 위장해 끊임없이 기업들을 테스트했다. 이에 삼성이 걸려들었다. 콜탄 수출과 관련된 이메일에서 삼성의 금속무역 담당자는 이미 아프리카 내전 지역에서 여러 번의 거래 경험이 있다고 실토한다. 또한 저자가 반군의 수출 통제로 신중을 요한다고 하는 말에 삼성은 걱정하지 말라며 자세한 방법까지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거대 기업들의 파렴치한 행위가 결국 국내 기업을 대표하는 '삼성'에서도 자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책은 말미에 '기업들의 실상'이란 장을 따로 마련해, 수없이 많은 기업들의 비리를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전 세계의 많은 기업 관계자들이 대단히 뜨끔해 할 만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여기에도 삼성은 역시 포함되어 있는데, 그들은 멕시코 하청회사에서의 불법 실태(임신 테스트를 통한 여성 노동자 채용)와 내란 자금지원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그렇다고 <나쁜 기업>이 비판에만 열중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저자들은 세계화와 기업의 행위들을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글은 대단히 현실적이다. 예컨대 "세계적인 거대 콘체른들이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총괄적으로 완벽하게 감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그들은 인정한다. 또한 현실적으로 이 기업들이 현 상태를 고수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더 나은 환경과 대우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뜬구름 잡는 허황된 외침이 아니라, 기업들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저항과 대안이 필요하다고 것. 2001년 1월말, 브라질 세계사회포럼은 시위를 하며 다음과 같은 구호를 내세웠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다른 세계를 향한 열망과 사회적 연대가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강한 외침이다.

<나쁜 기업>에서는 이에 '시작이 반이다. 바꿀 수 있다!- 소비자행동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거대 기업들의 권력은 결국 소비자들에게서 얻은 것이기 때문에 그 점을 이용하라고 말한다. 이메일이나 전화 연락 등을 통한 직접적인 항의, 의식 있는 소비, 친환경적이고 공정한 제품의 구입, 유행산업 품목에 대한 한층 더 강한 투명성 요구 등이 바로 저자가 내세우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개발도상국의 많은 이들이 생명을 담보로 위험한 생산현장에 뛰어들고 있다. 광물을 위해, 의약품 실험을 위해, 바나나를 위해, 햄버거를 위해 그리고 우리가 신고 입는 의류를 위해.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끼고, 삶이 즐겁다고 콧노래를 부르는 이 순간에도 말이다.

1990년대 중반 미국의 미디어를 통해 파키스탄의 어린이들이 일하는 장면이 방영됐다. 이후 다른 착취와 박해 현상들이 속속 밝혀졌고, 나이키는 이미지에 상당한 손상을 입었다.

미국에서도 곧 11~13세의 청소년들이 시위를 하며 야유를 퍼부었다. 그들은 쓰레기봉지에 가득 담겨 있던 고린내 나는 헌 운동화를 안전요원들의 발치에 쏟아 부었다. 이 때 참가자 중 브롱스 출신의 한 13세 흑인 여자아이가 커다란 텔레비전 방송국 카메라를 똑바로 노려보더니 거대 기업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Nike, We made you, We will break you"
"나이키, 우리가 만든 나이키, 우리는 너희를 무너뜨릴 수도 있어!"

소비를 통해 세워진 권력은 결국 소비자들의 운동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의지, 그리고 사회적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쁜 기업 - 그들은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가

한스 바이스.클라우스 베르너 지음, 손주희 옮김, 이상호 감수,
프로메테우스, 2008


#나쁜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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