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와 미얀마 사이>
푸른길
글 중의 A씨는 버마의 군사정권이 일반 시민에게 송곳니를 보인 1988년 당시, 대학생으로 반정부 활동을 하다가 투옥되어 고문을 받았다.
석방 후 버마를 필사적으로 탈출해 자유의 나라 일본에 희망을 건다. 이런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일본 사회의 마음의 벽과 '불법 입국자'라는 일본 정부의 냉정한 처사. 저자 세가와 마사히토는 이를 취재하다 A씨를 만나게 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불현듯 <버마와 미얀마 사이>(정금이 옮김, 푸른길 펴냄)가 일본에서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저자는 일본이 벌인 태평양 전쟁의 전쟁터였던 버마와 조선인 위안부가 있었던 위안소 등지에서 일본의 과거와 그에 대한 책임과 반성을 여러 곳에서 자주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또한, 미얀마 군사 정권의 필요에 따라 복원된 파간 유적지에서 자신이 교과서로 배운 임나일본부에 대해 "일본이 한때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는 정당성으로 왜곡하여 교육한 임나일본부의 존재는 사실무근이요, 오히려 가야 호족이 일본에 진출해 있었을 가능성이 더 사실에 가깝다"며 위정자에게 불리한 역사를 왜곡하는 오만을 지적하고 있다.
책을 펴낸 출판사에 전화를 했고 다행히 이교혜 푸른길 편집장과 통화할 수 있었다. 아래는 이교혜 편집장과 짧은 통화 내용이다.
- 저자와 이 책은 일본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나?"정치적, 사회적으로 다양한 시선의 예술 작품이 허용되는 나라가 일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볼 때 좀 민감한, 말하기 꺼릴 수 있는 책들도 충분히 가능한 것 같다. 저자는 영상 저널리스트다. 1980년대 후반부터 아시아 문화, 소수 집단, 교육 문제 등에 관한 다큐멘터리와 보도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다. 20년 동안 일본과 동아시아에서 소수자와 약자가 처한 현실과 아픔을 알리는 것으로 워낙 많이 알려진 저자다. 당연히 일본에서도 출판됐다. 일본에서 반응이 꽤 좋다고 정금이(옮긴이) 선생님께 들었다.
-옮긴이와 저자가 잘 아는 사이인가?"두 분 모두 한일교류교사모임 회원이라고 들었다. 정금이 선생님도 저자처럼 소수자와 약자의 인권,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정금이 선생님이 '이런 저자의 이런 책이 있는데 모국에 있는 분들도 꼭 읽었으면 좋겠다'며 먼저 출판(번역) 제의를 하셨다. 그리고 지병으로 병실에서 번역했다. 인세 중 역자에게 돌아갈 몫은 전액 미얀마 이재민들에게 기부해달라고 해 가장 적합한 경로를 찾고 있다."
"좋은 책을 건지신(?)것 같다. 좋은 책 내주어서 고맙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으로 버마와 미얀마의 엄청난 차이, 그 두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버마를 통해서 선진국 일본의 비선진국적인 실정도, 우리의 민주주의 속 비민주적인 것들도 함께 직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출판사와의 전화를 끝냈다.
이것은 출판사에 대한 상투적인 인사치레가 결코 아니었다. 버마의 두 얼굴, 한도 끝도 없는 상냥함으로 여행자들을 포로로 만드는 '미소의 나라 버마'를 느끼게 한, 군대와 비밀경찰이 생활 구석구석까지 눈을 번득이고 있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군사 독재국가 미얀마'를 제대로 보게 한 저자와 책에 대한 보답이랄까?
버마와 미얀마, 두 세계를 위태위태하게 걷는 여행'함께 느끼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감동하고 싶다.' 이것이 이 책을 소개하게 된 동기이다. 미소의 나라 버마와 군사정권 미얀마. 인권에 대한 보편적인 법칙, 원리 그리고 실천적인 자세는 종교, 문화, 국경을 넘어서 함께 느끼고 분노하고 또 감동받고 싶은 부분이다. 군사정권을 경험한 기성세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국민 어느 민족이기 이전에 한 '인간'의 시점에서 한국의 군사정권도 회고해 볼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책의 번역을 시작할 무렵 저자 세가와 씨는 다음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미지의 나라 캄보디아에서 카메라를 돌라고 있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대한민국의 시선으로 버마와 미얀마는 같은 나라다. 그래서 버마를 미얀마의 과거로만 단정하고 이해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 만나는 한 나라의 같은 이름인 버마와 미얀마의 그 간극은 이국인의 눈으로 쉽게 이해하지 못할 만큼의 깊이와 차이로 혼돈스럽기만 했다. 그럼에도 손에서 떼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을 읽는 동안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무서운 버마에 여행 가려고?"
글쎄. 난 당분간은 버마에 여행갈 계획이 전혀 없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기회 닿으면 언젠가 버마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미얀마 군사정권의 독재가 여행자들을 등쳐 먹는가 하면, 버마와 동의어인 미얀마의 탈을 쓰고 135개 소수민족들의 삶의 길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책의 숨은 이야기까지 들어가며 읽었던 이유는?
▲ 일회용 라이터도 수리해 쓰는 재활용 도시 랑군의 황금사원 ▲ 100달러(약10만원)를 송금하면 580차트(600원)만 준다? ▲ 정부의 공무원이나 허가받은 일부인만 출입할 수 있는 버마의 수도? ▲ 국제경기에서 버마는 항상 이긴다. 이기는 경기만 중계하니까! ▲ 위정자에게 불리한 역사는 필요한 만큼 왜곡한다 ▲ 개인정보보호 개념이 없는 나라 ▲ 외국인에게 최대한 바가지와 차별을! 허가한 호텔에만 묵고 허가한 곳에만! ▲ 마약으로 미소 짓고 사는 와족과 코캉족 ▲ 저놈도, 저놈도 비밀경찰이에요!, 생활 감시자가 늘 따라붙는 나라 ▲ 친족의 (사람의) 머리사냥 풍습과 론유(돌 끌기) 의식 ▲ 이동 허가증이 있어야 병원에 갈 수 있다. 그냥 죽는 게 더 쉽지! ▲ 150년 전부터 조상이 살아왔어도 불법체류자?
버마와 미얀마의 용어 차이(책속 정리) |
한글 파일로 원고를 쓰는 동안 '버마'라고 입력하면 '미얀마'로 자동으로 바뀌곤 했다. 1988년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 공포정치를 하고 있는 현 미얀마 정권이 1989년 6월 18일에 영국 식민지 시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버마'를 '미얀마 연방'으로 정식 변경했는데 우리도 그에 따라 '미얀마'로 입력했기 때문이다.
"버마는 버마족만의 나라, 135개의 소수민족이 함께 살기때문에 미얀마 연방이 마땅하다"는 것이 미얀마 군사정권의 설명이다. 얼핏보면 타당해 보이지만 현지인들에 의하면 버마와 미얀마는 그게 그거, 같단다. 표기에 있어 버마는 구어체, 미얀마는 문어체라는 차이뿐.
국명 변경에는 군사독재정권을 정당화하려는 계략이 숨어있다. 1888년의 쿠데타에 의한 정권탈취를 유럽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가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자 그 방편으로 국명을 비롯한 수많은 지명을 바꾸어버린 것.
현재 대부분의 국가들은 변경된 국명을 인정하지 않아 '버마'로 쓴다. 중국도 종래부터 사용하던 '미엔띠엔'을 그대로 쓴다. '워싱턴 포스트(미국)' '르 몽드(프랑스)' '방콕 포스트(타이)' 등 세계 유명 미디어들도 '옛 이름 버마'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세계의 흐름속에 유독 일본만은 정부의 명령인지 미디어도 포함해 지각없이 '비루마(버마의 일본식 발음)에서 미얀마라는 호칭으로 변경해버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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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해와 계산이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 내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소수 민족들의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다. 정부의 감시자를 따돌리고, 혹은 촬영하지 못할 장소 촬영을 감행하여 필름을 뺏기고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면서 찍은 사진들도 풍성하다.
우리 돈 10만 원 가량을 송금하면 6천 원도 아닌 6백 원을 지급한다는 사실은 끝내 이해되지 않고 있다("아무리 600원... 6000원의 동그라미 하나 빠진 오류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저자의 첫 발걸음은 버마 최대의 도시인 랑군, 그로부터 정부의 감시와 제재를 받기도 하면서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는 변방의 소수민족 지역에까지 이른다.
저자는 '사람들이 버마에 대해 관심을 갖게끔 하여, 그 거부할 수 없는 매력과 문제적 현실을 좀 더 널리 알리고 싶다'고 책의 동기를 적고 있다. 책속 재미있는 이야기 둘.
"랑군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이고 근처를 둘러보니 다행히 수상한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멀리서 정경을 찍는 정도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나는 삼각대를 세우고 카메라를 돌렸다. 열차가 코앞까지 가까워졌다가 전원 속을 통과해 갔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바로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눈앞을 통과한 열차가 급브레이크를 걸며 평야 한가운데서 멈춘 것이다. 그리고 두 명의 남자가 열차에서 뛰어내려 나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또 이런 일도 있었다. 버마의 시골을 버스로 여행하고 있을 때 황야 한가운데서 버스가 갑자기 멈추었다. 누군가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한 것 같았다. 그러자 승객들이 일제히 버스에서 내려, 남녀 할 것 없이 길가에 주저앉아(버마에서는 남자도 앉아서 소변을 본다) 론지를 걷어 올리고 매우 즐거운 듯이 일을 보기 시작했다. 그 어이없는 모습은 실로 웃음을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