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광과 권지예가 돌아왔다!

김종광의 <첫경험>· 권지예의 <붉은 비단보>

등록 2008.05.29 10:38수정 2008.05.2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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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광과 권지예가 돌아왔다. 천하의 이야기꾼으로 통하는 김종광은 90학번 71년생 '곰탱'의 좌충우돌 청년기를 그린 <첫경험>으로 특유의 입담을 과시하며 돌아왔고 이상문학상과 동인문학상 수상작가 권지예는 조선 여인의 삶을 그린 <붉은 비단보>로 그녀만의 아름답고도 강렬한 서사를 선보이며 찾아온 것이다. 오랜만에 중견 작가들의 장편소설을 만날 수 있게 된 셈이다.

a  <첫경험>겉표지

<첫경험>겉표지 ⓒ 김종광

만화의 어느 장면들을 섞은 것 같은 표지가 눈에 띄는 김종광의 <첫경험>은 입학하자마자 아버지 말 안 듣고 데모판을 찾아다닌 '곰탱'의 화려한 청춘기를 담고 있다.


곰탱이 등장하는 시절은 급격한 사회변화를 맞이하던 시절이었다. 그전처럼 대학생들이 모두 모여 독재에 항거하던 때도 아닐뿐더러, 치열하게 사회를 논하던 때가 아니었다. 조금씩 '개인주의'가 사회를 넘어 상아탑까지 스며들던 시절이었다.

그런 때에도 곰탱은 데모를 하러 간다. 무슨 사명감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대학생이니까 그렇다. 한눈에 봐도 철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돈 생기면 술 마시고 노느라 그 날 다 써버리고, 이집 저집에서 빌붙어서 사는 것도 대수로워하지 않는 그는 양심에 털이 있는지 의심조차하기 어려울 정도로 뻔뻔한 대학생이었다.

공부를 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글을 쓴다고 하지만 쓴 걸 보면 낙서를 하는 건지 구분도 안 된다. 항상 바보 멍청이처럼 행동하는데 그러면서도 '활짝꽃'에게는 또 멋진 말을 하려고 한다. 노벨문학상 타면 상금을 주겠다는 그런 것이다. 말이라도 이러면 연애라도 좀 하는가 싶지만, 그것도 아니다. 여자 마음 몰라도 너무 모른다. 하기야 곰탱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언제나 제멋대로다. 그런 와중에 종종 남을 챙겨주려고 하려고 하니 기가 막히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그러니 어찌 웃기지 않을까.

<첫경험>에서 만날 수 있는 '곰탱'의 모습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인물이다. 그것은 누구인가? 그 시절을 추억할 때, 흔히 떠올리는 '청춘'들의 여러 가지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곰탱을 보는 것은 일종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과 같다. 혹은 그 시절을 상상해보는 것과도 같은데 그 과정이 꽤나 즐겁다. 김종광은 과장스러운 언어와 행동으로 그 시절을 그리는데 특유의 입담이 곁들여져서 그런지 이야기가 술술 넘어간다. 지루할 틈이 없다. 추억을 떠올릴 수 있거나, 혹은 상상하며 웃을 수 있게 해주는 소설, 그것이 김종광의 <첫경험>인 셈이다.

a  <붉은 비단보>겉표지

<붉은 비단보>겉표지 ⓒ 이룸

권지예는 조선시대로 찾아가 어느 여인을 만나게 해준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이름을 지었다. '항아'다. '개남'이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그것을 조심스럽게 거부한 것이다. 그녀는 그 시대의 기준으로 보자면 당돌한 여자 아이였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물론이고 글 또한 알고 있었다. 부모가 딸도 어느 정도 배우면 좋다는 생각 때문에 교육 시켜 준 것이지만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 많았다.


천재성을 지녔다면 천재성을 지닌 아이 항아. 그녀의 그러한 재능은 축복이었을까? 아니다. 알다시피 조선시대의 여인에게 그러한 것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녀도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주었던 남자를 떠나보내야 했고, 세상의 의견에 따라 행동해야 했다. 그것이 조선 시대가 여인에게 요구하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세상과 타협한 것인가? 권지예가 그런 여인을 그렸다면 <붉은 비단보>는 별 볼일 없는 소설이 됐을 것이다. 권지예는 세상의 뜻을 받아들이는 현실적인 면을 지녔으면서도 자신의 뜻을 지켜가는 조선의 여인을 만들어냈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버리는 그런 사람이 아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자유로이 살려고 했던 조선의 여인을 그려낸 것이다. 쉽지 않을 일이었을 텐데, 권지예는 해냈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문체 위에서 조선 여인의 잔잔하지만 강렬한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중견 작가라고 불려도 어색하지 않을 시간을 맞이하고 있는 김종광과 권지예, 그들이 내놓은 장편소설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투부터 소재까지 하나도 비슷한 것이 없다. 그럼에도 두 소설이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한국소설에 활력을 넣어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 아닐까? 김종광과 권지예,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시간이 됐다.

첫경험

김종광 지음,
열림원, 2008


#김종광 #권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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