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지난 5월2일 국회 교육위원회의에 참석해 대구초등학생 성폭력범죄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유성호
정권이 공식적으로 출범하고 나서는 국민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답지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바로 '시장주의'였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계속되어 온 좌회전(?)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교육 핸들을 급격하게 오른쪽으로 꺾기 시작한 셈이다.
그동안 우리 교육에 경쟁이 부족하여 많은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오진을 한 것이다. '경쟁'이 부족하여 생긴 교육계 병폐에 '시장주의'라는 처방이 내려졌다.
학생들 학력을 정확히 파악한다는 명분으로 일제고사가 부활되었다. '일제고사를 치르지 않으면 학생들의 실력을 파악할 수 없다'는 논리는 교육을 한참 모르는 사람의 입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일 것이다. 학교에서 치르는 정기고사로 학생들 실력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은 현장 교육에 대한 중대한 모독이었다.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도 그런 연장선에서 나온 조치이다. 이미 평준화로 대표되는 지난 정권의 3불정책에 대해 현 정부가 가차 없이 메스를 댈 것이란 예측은 공공연히 나돌았다.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는 평준화를 깨려는 구체적인 정부 차원의 계획안이다.
좋게 말해 정부는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 가고 싶어 한다. 무슨 엄청난 계획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모두가 특목고를 원하니 모든 학교를 특수한 학교로 만들어주겠다는 발상이다. 이념적인 입장을 떠나서라도 그런 안이한 발상으로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단세포적인 사고의 무모함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는 사교육이 부족한 농어촌에는 기숙형 공립고등학교를 세워 밤새 학생을 붙잡아 놓고 공부시키고, '좀 산다'하는 지방 도시에는 돈이 많이 드는 자립형사립고 대신에 설립조건을 완화한 자율형 사립고를 세우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외되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위해 '마이스터고'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준 것이 교육 정책의 전부이다.
이렇게 특성화 고등학교를 곳곳에 세워주면 학생과 학부모들은 수요자로서 다양한 학교 선택권을 가지고 최대의 교육 효용을 누릴 것이며, 학교와 교사는 공급자로서 최선의 서비스를 다하기 위하여 사력을 다해 경쟁하고 이를 통해 공교육의 질이 높아져 사교육이 억제될 것이란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자율화'가 아니라 '학원화'라고 해라자유시장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우익 이념가가 만들어낸 완전경쟁시장적 유토피아가 대한민국 공교육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 교육에서 자신들의 사고로 만들어낸 이상향을 실현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우회전의 정점은 4·15 학교 자율화 조치였을 것이다. 학교 자율화는 교육의 주체인 교사나 학생의 자율화와는 개념상 거리가 너무 먼 조치들이었다. 0교시가 부활하고 학교 보충수업에 학원이 들어올 길을 터주고, 사설모의고사를 무제한 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미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최장 시간의 학습노동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 달이 멀다하고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각종 모의고사를 보고 있는데, 이것도 부족해서 최소한의 규제마저 자율화라는 명목 하에 다 풀어줘 버린 것이다. 그래서 학교 현장에서는 4·15 조치를 '학교 학원화 정책'이라고 부르고 있다.
극단의 이념은 사실을 왜곡되게 바라보게 하고, 신념을 현실화시키려고 무리수를 두게 만든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 담당자들은 지금 자신들이 가진 이념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단순히 빨간색 선글라스를 껴서 지난 정권의 정책들을 좌파 정책으로 덧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 학교 현장의 모습을 일그러진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어린 아이의 심정으로 있는 그대로의 학교를 바라보았으면 한다. 이것이 경쟁이 부족해서, 학습 시간이 부족해서, 일제 고사가 부족해서 생긴 병폐인지 한번 냉철하게 바라보기 바란다.
지금 현실의 학교는 이런 것들은 전혀 부족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넘쳐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아는 데에는 별다른 교육학 이론이 필요하지 않다. 공부가 힘들어 자살하는 우리 아이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여기에 경쟁을 더 부추기겠다니 얼마나 사고가 비틀어지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비틀어진 마음 바로잡고 교육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