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민영화 발표전광우 금융위원장이 2일 오전 금융위원회에서 산업은행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및 2012년까지 민영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표적인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민영화 계획이 2일 최종 확정됐다. 올 12월까지 산업은행은 금융지주회사로 바뀌게 되고, 5년 후인 오는 2012년까지 민영화가 완료된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 등 지원을 맡을 한국개발펀드(KDF)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내 금융산업을 뒤흔들 수 있는 산은 민영화를 5년 내에 무리하게 끝내겠다는 점이나, 이 과정에서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이 사실상 폐기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쪽에선 "산업은행 민영화라는 대전제에는 동의하지만, 산은 민영화를 위해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금융위, '쇠고기 정국' 와중에 산은 민영화 전격 발표금융위원회의 이날 산은 민영화 방안 발표는 전격적으로 진행됐다. 발표 전날인 지난 1일 오후 늦게 언론사에 일정이 통보됐다. 금융위는 이 과정에서 산은 민영화 발표 시각과 일정까지도 '엠바고'(비보도)를 걸었다.
민영화 방안의 핵심은 5년 이내에 산업은행을 민간에 완전히 넘기는 것과 함께 중소기업 등의 정책적인 금융을 위해 별도의 펀드(한국개발펀드)를 만든다는 것.
이 같은 내용은 지난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밝힌 산은 민영화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금융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언급한 메가뱅크(일부 금융공기업을 한꺼번에 묶어 매각해 초대형 은행으로 육성하는 방안)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면서 산은 민영화가 주춤거리기도 했었다.
금융위가 이번 산은 민영화 로드맵을 사실상 확정하면서, 향후 메가뱅크 논란은 줄어들 수 있게 됐다. 전광우 금융위원장도 "은행을 대형화해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취지에 공감하지만, 산은 민영화 추진에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 위원장은 "산은 민영화 과정에서 금융시장 내의 자율적인 인수합병 가능성에 대해선 여전히 열려 있다"고 밝혀, 향후 금융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의 메가뱅크 출현 가능성도 부인하지 않았다.
"산은, 세계적 투자은행으로? 간난아이에게 뛰라고 강요하는것"금융위는 산업은행 민영화를 통해 세계적인 투자은행(IB)으로 육성하겠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이를 위해 올해 12월까지 산은 지주회사가 세워진다. 지주회사는 산업은행과 대우증권, 산은자산운용, 산은캐피탈을 자회사로 거느린다.
정부는 내년부터 2010년까지 산은 지주회사의 지분 49%를 매각하고, 2012년까지 민영화를 완료한다. 이 과정에서 국내외 IB 전문가를 경영진으로 선임하고, 내년에 주식시장에 상장한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또 산업은행이 지주사로 바뀌면서, 시중은행과 같이 예금과 대출영업도 할 수 있게 해준다. 산업은행 총재의 이름도 '은행장'으로 바뀌고, 은행장이 지주회사 회장을 겸직하게 된다. 대신 민영화 이전까지 지주회사 이사회 의장은 정부쪽에서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세계적인 투자은행은 단순히 규모만 키운다고 그쪽 시장에 진입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오랜 세월에 걸친 전문적인 노하우와 평판을 축적하는 등 세심한 준비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현재의 산업은행 역량으로 세계적 투자은행을 지향하는 것은 걷지도 못하는 간난아이에게 뛰라고 강요하는 것"이라며 "세계적 투자은행 목표 자체는 좋지만, 국내시장이나 아시아지역에서 먼저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지원은 KDF로... 자칫 금융공백 발생할 수도금융위는 산업은행 민영화와 함께 올해 말까지 정책금융기관인 한국개발펀드(KDF)를 만든다. KDF는 내년 1월에 산은 지주회사의 지분 49%를 현물로 출자 받고, 산은이 가지고 있는 국내 기업을 매각해서 모두 15조~20조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 돈을 가지고, 중소기업과 대북경제협력 사업 등에 사용할 방침이다.
KDF의 중소기업 지원 방식은 직접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다. 대신 민간 금융회사에 자금을 대 주고, 이 회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온 랜딩, On-lending 전대방식)이다.
금융위는 KDF의 중소기업 지원이 한미FTA(자유무역협정)의 금융부문과 상충할 수 있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 "정부 은행인 산은 매각 대금으로 만들어지고, 민간 금융회사 등과 경쟁이 없는 공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문제 없다"고 밝혔다.
김상조 교수는 "KDF가 중소기업 지원 과정에서 특정 기업이나 사안을 두고 지원할 경우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면서 "이는 한미FTA 뿐 아니라 WTO(세계무역기구) 협정 위반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KDF의 중소기업 지원 방식은 은행과 중소기업 사이의 자발적인 주거래은행 제도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면서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같은 주거래은행 제도가 작동하는 것도 아니어서, 정부 발표대로 추진할 경우 자칫 중소기업 지원 금융의 공백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금융위의 산은 민영화 방안이 나름대로 합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준비가 너무 소홀하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이 같은 기간을 생략한채 5년 안에 모든 것을 끝내겠다는 것은 금융발전보다는 오히려 금융불안을 야기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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