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실용주의'는 북한과의 '로맨스'를 부활시키는 것

[주장] '6·15 공동성명' 8주년을 일주일 앞두고

등록 2008.06.08 20:03수정 2008.06.0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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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꾀에 빠진 한국 정부

  

"오늘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상의 실행동력이 (이처럼 형편없이) 결여된 까닭은 세가지 수준에 그 원인들이 스며들어 있다. 첫째는 희망과 신뢰의 수준이다. 오슬로 협정 타결 이후, 로맨스는 평화협상 이행과정에서 홀랑 깨지고 말았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요란법석을 떨며 사랑고백 후 마침내 결혼하고, 서로 속이며 식을 치른 후엔 일년이 지난 한 쌍의 부부를 보는 것 같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인 거주촌을 팔레스타인 거주지역 안에다 계속 건설하고 있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미움을 끊임없이 키워가고 있었다. 잠시의 평화 뒤에 속이고 전쟁을 일삼을 때, 신뢰는 오랫동안 증발해 버린다."(6월 4일, 프리드만, 뉴욕타임즈)

‘북미 관계’가 획기적 진보를 눈앞에 두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은 임기 말, 퇴임 후 국제관계에 대해 쏟아질 엄청난 비난에 한가닥 우산이 되어줄 굵직한 진보를 위해 과감하다 못해 기존 부시 행정부의 모든 원칙과 관행을 실질적으로 뒤집는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북한의 행보도 못지 않게 빠르다. 일본과 비밀리에 국교정상화 테이블을 차려놓고 있었다. 북한의 복안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이후, 일본을 비롯해 당장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서방 국가와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소위 ‘실용주의’ 대북정책을 천명하면서, 북한은 이참에 강경파들의 반개방 정서를 누그러뜨리면서도 개방을 통한 생존을 모색하는 방안으로 ‘봉남통미’ 정책과 더 나아가 남한의 도움 없이도 경제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방향의 과감한 행보를 강화한 것으로 엿보인다.  

 

한반도에서 남북한 관계의 이런 변화는 2가지 측면에서 안타깝다. 첫째, 남한이 이처럼 국제관계에서 북한문제에 대해 소외되는 상황은 곧바로 안보를 비롯한 ‘위기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상존하는 구조가 강화된다는 의미에서 냉전으로의 퇴보를 의미한다.  

 

둘째, 남북한의 통일지향적 관계가 깨지면서, 이를 역학적으로 악용하려는 주변국들에게 우리의 이익과는 상관없이 휘둘릴 가능성이 현저하게 높아진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북한이 주변국들에게 분할 통치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는 그 자체로 중동처럼 분쟁 상시지역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한국의 새 정부가 스스로의 꾀에 빠진 꼴이다. 북한을 압박해서 국민들에게 무언가 보여줄 수 있다는 의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순진하다 못해 무지한 자살 골을 넣은 셈이다. 지금에 와서 다급해진 정부는 식량지원을 하겠다며 몇 주째 북한의 답변만을 기다리고 있다. 오히려 지난 정권이 그랬다고 비난했던 것보다 더 비굴한 모양새로 구걸하고 있다. 

 

자기 꾀에 빠진 한국정부, 대북정책을 다시 검토하라! 

 

'오슬로 협정'과 '6·15 공동성명'

 

배경과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오랫동안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로의 진전을 도모하는 관계라는 측면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평화협정 이행 기록은 남북한 평화협정 이행에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이-팔 관계에서 1994년 체결된 '오슬로 협정'은 남북의 '6·15 공동성명'에 비교할 만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오슬로 협정 체결 이후, 모든 적대행위를 종식한다. 이스라엘에서는 테러가 거의 완전히 사라지고, 팔레스타인은 독립국가의 모형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2000년 6·15 남북 공동성명은 그 동안 물밑에서 음성적으로 진행되어오던 남북교류의 물꼬를 튼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전쟁은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신뢰를 심는다. 경제적, 인적 교류도 급증한다. 물론 만족할 만한 수준을 못되었지만. 

 

그러나 라빈 당시 이스라엘 총리가 극우파 유대인 청년의 저격으로 암살되자, 테러와 보복은 다시 이-팔 사이에 부활한다. 오슬로 협정이 현실적으로 파기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끝을 알 수 없는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강경파 하마스의 ‘가자지구’와 온건파 압바스 수반의 ‘서안’으로 실질적 분단 상태까지 이르렀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식적으로 ‘6·15 공동성명’을 계승하겠다는 언급을 정책에서 삭제해 버린다. 그리고 뜬금없이 ‘1994년 제네바 합의’를 기본으로 남북 관계를 가져가겠다고 공언한다. 북핵 문제 해결 없이는 남북 관계 진전은 없다는 의도를 나타낸 것이다.  

 

물론 무슨 뜻인지 이해는 되지만, 북미간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을 분명히 지켜보면서 이런 정책을 만천하가 듣도록 내놓았다는 측면을 생각하면 이 정부가 도대체 국제관계를 제대로 이해나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더 우려하는 상황은 오슬로 협정 파기 이후 10여년 세월 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는 참혹하다 못해 비극으로 치닫고 있다. 이스라엘은 정보를 흘리면서 이웃한 ‘요르단’이 ‘서안’을, ‘이집트’가 ‘가자’를 흡수 합병해주었으면 하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꿈꾸던 독립국가 건설은 물건너가는 양상이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은 마음이 편한가? 테러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더 큰 문제는 둘러쌓고 있는 주변 아랍국들의 적개심이 더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항상 긴장이 높은 안보 불안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실질적으로 6·15 공동성명을 파기한 행태는, 10년 후 남북 관계가 어떤 파국으로 치달을지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게 만든다. 그렇지만 다행인 것은 아직 늦진 않았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6·15 공동성명을 계승한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 

 

시점도 좋지 않은가! 곧 다가올 6·15 공동성명 8주년을 기념할 수도 있고, 들끓는 민심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주는 분명한 조치로 보일 수도 있다. ‘소통과 쇄신’은 이런 곳에서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갈라진 ‘신뢰’를 회복하고 남한과의 협력이 북한의 미래를 위해 유익하다는 ‘로맨스’를 부활시켜야 한다. 토마스 프리드만은 현재 파국상태의 ‘이-팔 관계’는 근본적으로 이런 ‘신뢰와 로맨스의 붕괴’에 있다고 진단하고 있듯이 말이다. 

 

이-팔 관계에서 오슬로 협정은 실패했지만, 남북한 관계에서 6·15 공동성명은 되살려 놓아야만 한다. 우리에겐 반면교사가 있다. 지금 신음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테러에 시달리는 이스라엘 국민들의 얼굴이 그것이다.

 

근본적 실용주의, 가짜 실용주의는 버려라!

  

"(이-팔 관계에서) 근본적 실용주의가 의미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겐 지금의 자치권 보장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철군의 필요성을 그러나 안보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드는 균형 잡힌 유일한 방법은, 요르단 같이 신뢰할만한 국가를 개입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서안지구가 요르단에 할애된다 할지라도 팔레스타인 자치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요르단은 (서안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자국민으로 받아들일 용의가 없다. 그러나 역시 서안지구가 (가자를 이미 통치하고 있는) 하마스에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지 않는 것이 자국의 이익에 치명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6월 4일, 프리드만, 뉴욕타임즈)

    

신뢰도 완전히 깨졌고 대화 파트너인 팔레스타인마저 정작 분열된 상태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당사자끼리의 평화협상은 무의미할 수 있다. 현재 서안지구를 간신히 장악하고 있는 압바스 수반과 올머트 이스라엘 총리가 여러 번 회담을 가졌지만, 성과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프리드만은 이런 난국에선 철저하게 실용적 접근, 다시 말해 결과를 낼 수 있는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해법으로 요르단이 서안지구의 보안을 책임지면서 팔레스타인 독립과정을 돕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양측의 지도자가 회담을 갖고 있는 와중에도 이스라엘 정착촌은 계속 건설되고 있고, 팔레스타인 쪽에선 로켓을 발사하는 신뢰의 회복불능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따라서 이-팔 당사자간 협상은 현재로선 그다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원래의 목적, 즉 이스라엘의 ‘철군’과 적어도 서안지구에서만이라도 ‘독립’ 과정을 밟기 위해서는 서안지구를 일정 기간 할애하는 한이 있더라도 요르단이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요르단의 입장이 이들 목적과 일치하기 때문에 더더욱 실용적이고, 이는 그 동안의 중동정책 발상을 전환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 또는 철저한 실용주의’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럼 다시 남북 문제로 돌아와 보자.  

 

이-팔 관계에서 ‘요르단’은 누구일까? ‘중국’일까? 틀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더 가깝다. 북한이 붕괴될 경우,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은 물론 중국 동북지역까지 안보불안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중국이 군사력을 동원하면 불안이 진정될 것이란 보장도 하기 힘들다. 그건 중국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가장 현실적으로 동북아에 평화기반을 조성할 수 있는 남은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바로 김정일의 통치기간 내에 굳건한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통일지향적 선언과 협정을 확고하게 해서 유사시 북한에 대한 우선권이 남한에게 분명히 있다는 국제적 공인과 근거를 마련해 두어야만 한다. 

 

김정일과 대화하는 것은 공산주의를 인정하는 것도, 친북도, 반미도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께서 그렇게 추앙하시는 가장 ‘실용적’인 한반도 안보정책 추진 방법이다. 김정일 사후, 혼란스러울 수 있는 북한과 대화할 것인가? 북한에 침을 흘리는 중국과 대화할 것인가? 그렇다고 일본과? 

 

지금 해야 한다. 6·15 공동성명을 재확인하고, 북한에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조치를 잇따라 내놓으며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 방법이야말로 진짜 북한에게 구걸하지 않고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는 유일한 길이다. 진짜, 완전하고도 철저한 ‘실용주의’ 대북정책이다! 

 

정확히 일주일 후면 6·15 남북 공동성명 8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재의 정체, 아니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 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이날을 그냥 지나처서는 안 된다. 진짜 실용주의 남북 관계를 선포하는 기념일로 만들어야 한다. 

 

근본적 실용주의(Radical Pragmatism), 남북 관계에 긴급히 수혈되어야 할 태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본인의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krakory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6.08 20:03ⓒ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본인의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krakory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6.15 공동성명 #남북관계 #통일 #실용주의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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