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기사에 대한 반론을 잘 들었습니다. 심재술 기자의 제 글에 대한 반론을 보고 이를 다시 기사로 반론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편집노트나 다른 가벼운 글을 통해 제 의견을 피력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였습니다.
고민하던 중, 심 기자의 시각과 제 시각이 바로 현재 우리의 촛불집회 대책위나 여타 단체들에서 나타나는 고민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에 다시 한 번 기사로써 우리의 담론을 밖으로 끄집어 내어 많은 분들과 촛불집회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촛불집회가 초기 시청 앞 광장에서 미국 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을 이야기할 때까지만 해도 그 근본적인 잘못이 국민의 건강주권을 전혀 고려치 않고 천박한 경제논리에만 의존한 굴욕적인 협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의 목소리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 대통령과 정부의 모습에 다시 한 번 실망하게 되고, 또 대통령과 정부 측 인사들 스스로도 정리되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거짓말이 다른 거짓말을 낳고, 국민들의 목소리를 괴담 따위로 치부해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촛불집회를 이해하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나마도 배후세력으로 몰고, 소나기만 피해가려 하고, 결국 미국 정부를 등에 업기만 하면 정권 유지는 보장된다는 구시대적 발상을 가진 듯한 대통령과 정부의 모습에 국민들은 청와대로 진출하여 대통령에게 국민들의 목소리를 더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청와대 진출을 위한 국민들의 행진은 결국 경찰력의 제지를 받게 되고, 많은 국민들이 피를 흘리고, 범법자로 몰리는 아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때 터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은 피 흘리는 국민들을 위해 청와대로 가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한나라당이나 수구세력들을 압박하여 이명박씨에게 올바른 정책을 펴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주장하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반박은 왜 청와대로 가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보여주는 자세는 대한민국 역사상 정통성을 잃은 대표적인 세 정권의 특징을 압축하여 담아 놓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찬탁, 반탁 시위를 통해 국론을 분열시키고, 이를 통일이냐, 분단이냐의 문제에서 좌우문제로 바꾸며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분단 국가로 고착시켜버린 이승만 정권의 모습을 보면서, 최근 촛불시위에 나타난 특수임무수행자회나 기독교단체들의 시청 앞 광장점거를 위한 추모제, 기도회를 떠올립니다.
또 박정희식 개발독재는 대운하와 여러 정책에서 보듯이 국민과의 소통을 외면한 일방통행식의 정책 결정과 추진이 불러오는 폐해를 생각나게 합니다. 또 전두환식 폭력진압은 따로 비교할 필요도 없고요. 이렇게 부패한 이전 세 정부를 떠올리면서 어쩌면 이렇게 부패하고 정통성을 잃은 대표적 정권의 특징을 이명박 정부는 그대로 빼다 박았는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단초는 경무대로 가자던 국민들의 발걸음에서 4·19가 시작되었으며, 군부독재를 끝낸 6·10항쟁 또한 국민의 목소리를 대통령에게 보여주기 위해 서울역, 시청 앞에 모인 국민들의 뜻이 청와대로 전해졌기 때문에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청와대로 가는 것은 단순히 대통령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국민들은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고, 소수 부유층과 미국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리콜을 원하게 된 것입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많은 국민이 피를 흘리고, 범법자로 남는 데 노 전 대통령의 뜻이 담겨져 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지금처럼 타락한 이전의 세 정부와 같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고, 계속 소수의 부유층과 미국을 위한 한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면 아마 전 국민의 리콜 요구를 수용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몇몇 분들은 노 전 대통령의 언급과 유사하게 어차피 이야기해도 씨도 먹히지 않으니 국회와 한나라당을 압박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국회와 한나라당에 대한 압박은 기본적인 옵션사항이고, 청와대로 가자는 국민들이 없다면 아마 '닭장성'에 둘러 쌓여 소나기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이명박씨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보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시그널을 받아들인 이명박씨는 아마 더욱 적극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책들을 추진해 버릴 것입니다. 그 결론은 아시다시피 한 번 결정된 정책을 뒤집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그에 대한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 입니다.
하지만 많은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고, 시위대와 전경으로 대립하고, 범법자가 되는 것에는 여전히 청와대로의 진격이 반드시 바람직하냐는 의문을 달게 됩니다. 평화시위를 주장하지만, 대립이 서게 되면 평화만을 주장하기 쉽지 않습니다. 합법적인 시위만을 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따라서 청와대에 잘못된 시그널을 주지 않을 만큼의 범위에서 최대한 합법적인 테두리에서 시위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예를 들자면 국민들이 촛불집회에 쓰인 초와 종이컵을 시위장소에 퍼포먼스로 남겨두어 그 의미를 유지시킨다던지, 아니면 지난 시위에 나타난 초코파이를 전경들에게 항의로 던진다든지 하는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의 참신한 발상을 모아 경찰력의 무리한 진압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또 한나라당과 수구세력들을 압박하기 위한 적극적인 온라인, 전화 등의 참여는 전국민의 성원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척도라 생각됩니다. 이미 많은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이러한 의사표현을 하고 있고, 일정 정도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지속적이지 못한다면 한나라당과 수구세력들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주게 됩니다. 한 마디로 냄비처럼 끓었다가 사라질 것이라는 이들의 예상이 빗나가게 해줘야 합니다.
지난 일요일 집사람과 돌을 앞둔 아기와 시위에 참여하였습니다. 시청에서 종로를 돌아 삼청동에 오니 닭장차들로 도로를 막아놓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사람 하나 지나갈 틈이 없이 빽빽이 들어찬 전경버스들을 보면서 위정자가 국민들을 상대로 이렇게 벽을 세웠다면 그 생명력은 길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명박씨가 이런 '닭장성'에 숨어서 헬기를 타고 서울 시내를 다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정권 내내 그럴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더욱 성문을 열라고 국민들이 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08.06.10 11:15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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