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아고라가 민주주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의 원형이었던 고대 그리스의 토론 광장 아고라가 2008년 쇠고기 정국의 중심에 서며 날마다 새로운 형태의 '촛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일일 방문자 수 140만명에 달하는 아고라의 '힘'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감사원의 KBS 특별감사가 실시된 11일 오후 7시 촛불을 들고 나온 아고리언(agorain, 다음 아고라에서 토론을 하는 네티즌을 통칭하는 말)들은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을 인간 띠잇기로 긴 행렬을 이었다. 이들이 KBS로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KBS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날 '촛불 인간 띠잇기'에 나온 68명의 아고리언들은 "오늘 오후 7시 KBS 앞에서 촛불 띠잇기를 하자"는 아고라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보고 곧바로 직접 행동에 나섰다. 경기도 분당에서 지하철을 타고 1시간 30분 걸려 '허겁지겁' KBS로 달려온 회사원도 있었고, 유모차를 끌고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온 '유모차 부대'도 있었다.
광고 디자이너 김지선씨(여·30)는 "뉴라이트의 감사청구로 KBS 특별감사가 갑자기 이뤄졌다는 소식을 아고라에서 접하고 나왔다"며 "자기 입맛대로 방송을 내보내기 위해 공영방송 KBS를 장악하려는 이명박 정부가 너무 못마땅해 나왔다"고 말했다.
보험설계사 최재선씨(남·34)는 "감사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감사는 시기를 봐서도 그렇고 '함정감사'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며 "어제 MBC <마감뉴스>('뉴스24'를 지칭)와 KBS <시사투나잇>을 번갈아 봤는데 KBS가 이번 '촛불'을 제대로 다루고 있었다. 앞으로 KBS는 공영방송의 역할을 계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학원에서 방송통신융합연구를 하고 있다는 대학원생 김성원씨(남·29)는 "이명박 정권은 방송을 이윤창출로서의 도구로 밖에 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방송을 거대 통신기업과 조·중·동에게 넘기려 하고 있다"며 "신문·방송 겸영허용은 반민주적인 언론공공성 파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현 정부의 방송통신정책에 대해 진단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특감으로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려고 하는 것은 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공영방송사 사장의 임기제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고리언들은 '이명박 방송장악 꿈 깨라' '정연주 사장 법정임기 보장하라' '국민의 방송 KBS는 국민이 지킵니다' '미친 소 너나 먹어, KBS는 국민에게' '최시중은 물러나라' 등 다양한 피켓을 들고 나와 의견을 피력했다.
또한 11일 KBS PD협회원 505명이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촛불'을 제목으로 "시대의 어둠을 밝히며,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언론까지 바꾸는 힘입니다. 그 진정한 뜻을 '방송'에 담아내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란 내용의 광고는 아고리언들을 KBS로 달려나오게 하는 데 한 몫했다. 아고리언들은 "광고를 보고 울컥해서 KBS를 도우러 나왔다"고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서 '임시반장'을 맡은 논술학원 원장 나명수씨(남·49)는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매일 등장한 '토론의 성지, 아고라' 깃발을 만든 네티즌이었다. 나씨는 "아고라에서는 시국현안에 대해 매일 다른 주제로 토론하고 이를 직접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며 "아고라가 청계천 소라광장에 5월 2일 처음 촛불을 밝힌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씨는 "최근 벌어진 조·중·동 광고주 압박운동은 날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줄어드는 광고수익을 감당하지 못해 <조선일보> 지면 수를 줄이고 있다. 조·중·동의 언론 왜곡이 없어지는 그날까지 광고압박 운동을 펼칠 것"이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아고리언들은 KBS 노조가 KBS 본관 앞에 '정연주는 퇴진하라'는 만장을 걸어놓은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일부 아고리언들은 KBS 본관 앞에 설치된 수십 여 개의 만장을 다 뽑아버렸고, 급기야 박승규 KBS 노조위원장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의류업에 종사하는 김명민씨(여·29)는 "뉴라이트가 주최하는 시청 앞 집회에 걸려있던 '만장'이 KBS 앞에 걸린 것을 보고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KBS노조에서 걸어놓은 것을 알고 두 번 놀랐다"며 "우리가 '만장' 앞에서 촛불을 들고 있으면 꼭 정연주 사장 퇴진을 바라고 촛불 집회를 하는 것 같아 만장을 다 뽑아 버렸다. 솔직히 우린 정 사장 퇴진을 원치 않는다. 정연주 사장이 퇴진하고 MB 측근이 오면 그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 말은 꼭 써달라고 한 김씨는 "KBS 내분이 심각한 것 같은데 빨리 가닥을 잡고 한 목소리를 내라"며 "KBS 사원들도 나와서 함께 동참하라. 매일같이 나와서 촛불 드는 우리도 힘들다"고 말했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촛불'의 등장에 경찰도 적지 않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차 3대와 함께 등장한 서울 영등포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은 KBS 앞에 모인 아고리언들을 유심히 살피기도 했고, 등장해 아고리언들의 동태를 한동안 지켜봤다.
6월12일 오전 9시 현재 다음 아고라(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50061)에는 KBS 특별감사 반대서명이 1만4000명을 넘어섰다. 서명을 시작한 네티즌은 "공영방송 KBS에 대한 표적감사가 11일부터 실시됐다"며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의도는 이미 취임 초기 최시중을 방통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해 최근 YTN 아리랑을 비롯한 모든 언론 기관들의 사장을 자신의 최측근들을 임명함으로써 그 정점에 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아고라의 '촛불 인간 띠잇기'는 갑작스레 결정됐지만, 아고리언들은 계속해서 합류하는 사람들을 맞이하며 오후 10시 30분까지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가 언론통제정책을 거두지 않는다면 오늘도 내일도 KBS 앞에서 촛불을 들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PD저널'(http://www.pdjournal.com)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2008.06.12 13:53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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