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한 살. 세상을 떠나긴 이른 나이. 세상에 남아 할 일이 많은 나이 마흔 한 살. 마흔 한 살의 초여름 무더운 날에 고 이병렬 열사는 우리의 곁을 떠났다. 2008년 6월 14일 무더운 초여름 날 그는 떠났고 우리는 남았다.
제 몸 태워 국민의 건강 지키려 했던 열사 우리 곁을 떠나다
그를 죽음의 길로 내 몬 것은 병든 소를 들여오겠다는 이명박 정부. 그러나 오늘(14일) 영결식엔 잘난 사람은 하나도 없고 군화발에 짓밟히며, 더러는 방패에 찍혀가며 하루를 살아가는 백성들만이 눈물을 삼켰다.
유월 하늘은 높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않았다. 그를 떠나 보내는 운구 행렬이 서울대병원을 떠나 종로 거리를 지나 시청 앞까지 오는 중에도 대한민국 경찰은 멀뚱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백성이 스스로 몸 죽여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데도 무심한 시민들은 가던 걸음만 재촉했다.
제 몸을 태울 용기 없어 초라도 태우기 시작한 지 45일. 온 국민이 촛불을 밝혀 들고 제 몸을 태우듯 초를 태우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국민의 소리를 귓등으로 흘릴 뿐이다.
초가 아닌 자신의 몸을 태워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이 병든 소 먹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길 염원했던 고 이병렬 열사. 불길에 휩싸이면서도 그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쳤고, 무능한 이명박 정부의 퇴진을 부르짖었다.
이 사람아
이 몹쓸 사람아
어찌 그리 모질게 떠나가는가
우리의 가슴을 할퀴고
피 묻은 손톱으로 어찌 떠나가려는가
남은 우리는 어떡하라고
독재의 방패에 찍혀 머리에 흐르는 피를 누가 닦아주라고
잡은 손 뿌리치고 훠이 훠이 먼저 가려하는가
- 장을규 조시 '동지여 편히 쉬게' 일부
깨어 살아 남으라는 사람들의 기도에도 그는 분신 16일째인 지난 9일 숨을 거두었다. 살아서 이명박 정부가 항복하는 모습을 지켜보라는 숱한 바람도 물거품이 되었다.
"왜 이병렬 열사가 죽어야 하는 겨, 정작 죽어야 하는 것은 이명박이 아녀!"
눈물 바람인 영결식장에선 그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애써 눈물을 참아 보려 했지만 솟구치는 울음은 견디기 어려웠다. 그렇구나. 정작 죽어야 할 이는 따로 있는데 참한 길 살아가던 이가 억울한 죽음을 맞았구나.
우리의 비겁함 일깨운 이병렬 열사, 살아남은 자들이 일어나야 해
국화를 바치던 교복 입은 여학생의 서러운 눈물과, 눈시울을 훔치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백기완 선생과, '편히 잠드세요, 우리가 해낼게요'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어린 소녀들의 눈물은 답답한 하늘빛을 닮았다.
고 이병렬 열사의 민주시민장에 참석한 이들의 눈에는 그렇게 눈물이 가득 맺혔지만 가슴 속으로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분노와 저주를 품었다.
"젊은 사람이 또 죽음을 맞았습니다."
백기완 선생께 물었다.
"그는 죽음으로써 우리의 비겁함을 일깨웠어. 살아남은 자들이 열사의 뜻을 따라 열사가 이루지 못한 일을 해내야 해."
백기완 선생이 대답했다.
그러하다. 이 땅에 살아남은 자들은 더이상 비겁함으로 이명박 독재정부 앞에 무릎 끓어서는 안된다. 무저항으로 경찰의 폭력에 무릎 꿇어서도 아니된다. 맨 몸으로 청와대까지 가야한다.
죽음 부르는 폭력이 날아와도 맨 몸으로 청와대 가야 한다
방패가 날아오고 곤봉이 뒷머리를 치더라도 걸어서 청와대까지 가야 한다. 물대포에 맞아 눈이 멀고 장파열이 온다 해도 걸어서 청와대에 가서 이명박 정부로부터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
비폭력이되 철저하게 맨 몸으로 걸어서 가야한다. 벽이 있다고 걸음을 멈추지 말자. 담이 있으면 담을 넘고, 경찰차가 있으면 그 차를 밀어내고, 컨테이너 박스가 우리의 앞 길을 막으면 넘어서 가야하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금단의 땅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자멸은 우리 스스로 경계를 만들 때 생긴다는 것 또한 명심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경계를 긋지 말아야 한다. 백성은 어디든지 갈 권리가 있고, 살아남은 자 걸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백성의 앞 길을 막는 자. 그들이 불법이요, 폭력배인 것을 우린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고 이병렬 열사가 몸을 태워 이루고자 했던 일. 살아남은 자들이 저항으로서 이루어야 한다. 이제 될 때까지 모이자는 촛불의 구호는 '촛불아 모여라, 모여서 되게 하자'로 바뀌어야 한다. 분노하지 않는 축제는 이제 그만이다. 두 눈 부릅 뜨고 청와대로 가자.
마흔 한 살의 이병렬 열사. 보내긴 아까운 나이. 떠나기도 억울한 나이. 모진 세상 싫어 먼저 떠난 게 아니라면 그는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우리 곁에서 촛불을 들고 있을 것이다.
오늘 밤 우리 곁에서 "고시 철폐, 협상 무효!" 구호를 외치며 촛불을 들고 있을 고 이병렬 열사.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살아남은 자 맨 몸으로 청와대로 가야 한다. 그 일만이 살아남은 자들이 열사의 죽음에 답하는 길이다.
고 이병렬 열사여, 이제 그만 눈 감으시고 편히 가소서. 우리가 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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