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 그롤만이 쓴 <아이와 함께 나누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 겉표지
이윤기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처음엔 슬픔과 두려움으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이내 조금씩 평안을 찾아가는 것이 보통 어른들의 모습이라면, 아이들은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일까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만약 죽은 이가 부모 중 한 사람이라면 더욱 설명하는 것이 어렵겠지요? 혹은 아이의 나이가 어릴수록 더 힘든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아이에게 직접 죽음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미루게 됩니다. 아이가 좀 더 자라서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미루곤 합니다.
아이에게는 '하늘나라로 갔다'거나 '먼 나라로 오랜 여행을 떠났다'고 죽음에 관하여 감추는 방법을 선택하거나 혹은 '하느님이 그를 천사로 선택하셨다'거나 '깊은 잠에 빠졌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죽음에 대한 사실과 다른 이런 설명은 대개 아이에게 예쁘고 아름다운 것, 즐겁고 행복한 기억만을 남겨주려는 어른들의 특별한 '배려'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죽음 전문가인 얼 그롤만은 "아이에게도 죽음에 관하여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충고합니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환상의 세계를 만들기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관하여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아이가 죽음을 바로 이해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통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을 꺼려하고, 더군다나 아직 현실로 닥치지 않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아이에게 잘 설명하기 위하여, 책을 읽고 공부까지 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죽음에 관하여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런 책을 보는 것이 불행을 불러오는 재수 없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얼 그롤만이 쓴 <아이와 함께 나누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정경숙·신종섭 옮김, 이너북스 펴냄)는 제목만 보고 선뜻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는 그런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에게는 아이가 가지는 죽음에 대한 호기심이나 구체적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직간접적으로 죽음을 직면했을 때 구체적인 도움을 주어야 하는 일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음을 인정하고 슬픔에서 빨리 벗어나려면이 책을 쓴 얼 그롤만은 "실제로 죽음에 관해 몇 마디라도 들어 본 아이가 보다 쉽게 죽음을 인정하고, 슬픔에서 빨리 벗어나 실제 생활에 적응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금기시되어온 죽음에 관한 대화와 교육이 이제는 더 공공연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입니다.
특히, 어른들은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 아끼던 반려동물의 죽음을 겪고 슬퍼하는 아이와 죽음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대화함으로써 깊은 슬픔이나 비탄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와 함께 나누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쓴 얼 그롤만은 국제적으로 저명한 슬픔 카운슬러라고 합니다. 친지의 죽음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상담과 강연, 세미나 그리고 저술 활동을 활발하게 펼쳐오고 있답니다. 그가 쓴 이 책은 삽화가 들어간 동화 형식으로 쉽고 간결하게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부모나 보호자가 아이와 대화하면서 죽음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알려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크게 동화처럼 씌어진 '아이와 함께 읽기', 그리고 짧은 이 글을 친절하고 풍부하게 보완하여 설명해주고 있는 '부모를 위한 지침서'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읽기'는 봉제인형을 안고 슬픔에 잠긴 여자아이의 흑백 그림과 함께 "네가 만약 죽는다면, 너는 죽은 사람이 되는 거야"라는 첫 구절로 시작됩니다. 마치 한 편의 시화나 짧은 동화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죽음' 이야기는 곧 '생명' 이야기지은이는 이 책을 함께 읽는 어린이 독자들을 위하여 지극히 부드럽고 평안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을 사용하지만, 죽음에 대하여 분명하고 사실적으로 전달합니다. 그리고 죽음에 관하여 온전히 전하기 위하여 '생명'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처럼잎은 자라서색이 변하고겨울이 다가오면 생기를 잃어땅에 떨어지고 말지잎이 죽으면, 생명은 떠나 버린 거야그 잎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우린 기억할 수 있지만,이젠 죽어버린거야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그 목적을 위한 때와 시기가 있는 법이지태어날 때, 죽을 때,그리고 웃을 때와 눈물 흘릴 때.(본문 중에서)그리고, 또 아이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은 결코 다른 누구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전해주고, 그의 죽음에 관하여 함께 이야기 나누는 법을 알려줍니다. 아울러 슬퍼하는 것 못지않게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함으로써 슬픔을 스스로 조금씩 치유하도록 도울 수 있게 쓰여진 책입니다.
아이에게 죽음을 말하는 방법죽음을 잠 들었다 깨어나는 일이나, 먼 여행에서 돌아오는 일로 여기기도 하는 미취학 어린이에게도 죽음이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죽음은 끝"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어야 한답니다.
아이들은 종종 삶과 죽음이 번갈아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죽음 사람도 우리랑 똑같은 음식을 먹어?" "텔레비전을 볼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은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아이에게 죽은 사람이 다시는 살아 돌아오지 않을 뿐더러, 공동묘지에서 살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하십시오. 그리고 죽음은 결코 나쁜 행동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고 설명해주십시오."(본문 중에서)말로 설명이 되지 않을 때는 아이를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며 아이에게 사랑과 애정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죽음의 실체에 대해서는 항상 단호하고 분명하게 알려주어야 한답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이유도 정확히 알려주어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나 때문에?"라고 하는 마음을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이에게 부모나 다른 가족이 그를 홀로 남겨둔 채 급작스럽게 죽는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 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죽음에 대해서는 과장도 치장도 하지 않고 사실대로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와 함께 나누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쓴 얼 그롤만은 사려 깊은 부모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은 아이를 도울 때 반드시 지켜야할 열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은 아이를 돕는 길- 사려 깊은 부모에게 주는 십계명첫째, 죽음이라는 단어를 금기시하지 마십시오.둘째, 어떤 연령의 사람이든 죽음을 애도하거나 슬퍼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셋째,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허락하십시오.넷째, 자녀의 학교에 연락을 취하여, 가족 구성원인 누군가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십시오.다섯째, 당신 자녀가 겪고 있는 위기를 다루기 어렵다면,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십시오.여섯째, 아이에게 이제는 네가 이 집의 어른이 되는 거라고 하거나 죽은 형제를 대신하는 거라고 이야기하지 마십시오.일곱째, 죽음에 대한 비밀을 설명하기 위해 동화나 이야기의 힘을 빌리지 마십시오.여덟째, 자녀로 하여금 당신이 최종 답안을 가지고 있다고 믿게 하지 마십시오.아홉째, 슬픈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열째, 자녀가 부모에게 끊임없는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십시오.이 책에서 동화처럼 잔잔하게 쓰여진 '아이와 함께 읽기' 역시 여기 있는 열 가지 원칙은 잘 반영하여 쓰여진 글입니다. 지은이는 열 가지 원칙을 보완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죄의식 씻어주기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이가 느끼는 죽음에 관한 부인, 죽음으로 인한 슬픔, 울음, 분노, 죄책감, 기억하기, 감정에 솔직해지기 등에 관하여도 추가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일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깊은 슬픔에 잠기거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일 역시 따뜻하게 받아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살아 있다는 사실 때문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자신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죄의식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지요. 혹여, 그를 미워하거나 죽음을 바라기라도 하였다면 심각한 죄의식에 빠져들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때문에 아이로 하여금 그가 한 말이나 생각, 행동은 사람의 죽음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또한 이 책에는 보다 더 힘들고 특별한 죽음에 맞닥뜨린 아이들 돕는 법도 다루고 있습니다. 부모의 죽음이나 형제자매의 죽음, 친구를 잃는다는 것, 누군가 자살을 했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마음에 관하여 소개하고 그런 죽음을 맞이한 아이들을 돕는 법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애완동물의 죽음에 슬퍼하는 아이를 돕는 법도 소개하고 있는데, 눈여겨 봐둘 만한 대목이 있습니다. 아끼던 애완동물이 죽은 후에 서둘러 죽은 동물을 대신할 애완동물을 구해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같은 종류의 강아지를 살 수는 있지만, 예전의 강아지와는 분명히 다르다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애완동물의 죽음에 충분히 슬퍼하기를 기다린 후에, 만약 새로이 애완동물을 원한다면, 약간 다른 애완동물을 주되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좋습니다."(본문 중에서)분명한 것은 원래 아끼던 애완동물은 결코 복제되거나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하고, 충분히 슬퍼하고 이별하는 시간을 갖게 하라고 합니다.
이밖에도 <아이와 함께 나누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에는 보다 더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방법, 보다 더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증상과 반응,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단체, 도움을 주는 책과 영상물에 대한 정보도 담고 있습니다.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죽음이란 결국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생명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 없이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막상 내 아이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 막막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방적으로 죽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혹은 당장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언젠가 아이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관하여 설명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얼 그롤만이 쓴 <아이와 함께 나누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기억해낼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아이와 함께 나누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 얼 그롤만 지음, 정경숙 신종섭 옮김 - 이너북스/ 140쪽, 12,000원
아이와 함께 나누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
얼 그롤먼 지음, 정경숙 옮김,
이너북스(innerbooks),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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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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