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가 그립던 나, 디지털에 혹했네

[오마이DMC ⑥] 서울디지털컬처오픈 축제 따라잡기 '디지털 파빌리온'편

등록 2008.06.19 10:49수정 2008.06.1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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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오마이뉴스>가 광화문 시대를 접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민 상암동 디지털미디어 시티(DMC)에서 오는 6월 17일부터 22일까지 디지털 문화 축제 '서울 디지털 컬처 오픈'이 열린다. 이번 행사는 버려진 땅이었던 '난지도'의 화려한 변신 이후 처음 열리는 문화 축제로, 그동안 DMC 조성사업의 성과가 '문화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에 집약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오마이DMC'란 기획연재를 통해 입주자의 '눈'으로 다양한 이웃들을 살펴보면서 DMC의 '오늘과 내일'을 함께 짚어볼 예정이다. [편집자말]
 누리꿈스퀘어 디지털파빌리온 3층 IT상상관
누리꿈스퀘어 디지털파빌리온 3층 IT상상관digitalpavilion.co.kr

생각이나 행동하는 걸 보면 딱 아날로그 세대입니다. 휴대폰 데이트보다는 '삐삐'를 기다리던 설렘이 더 그립고, 지하철에서도 휴대용 기기('PMP'라 부른다는 것도 최근 알았습니다)로 '열공'하기보다는 책을 선호하는 걸 봐도 그렇습니다. 최근 디지털 게릴라들의 '촛불 혁명'에 열광하면서도 이른바 '디지털 세상'이란 게 영 미덥지 않으니, 이율배반적이라고 할까요.


물론 얼리어답터와도 거리가 아주 멉니다. 게다가 완전 '서울 촌놈'입니다. 한사코 홈그라운드에서 놀기만 좋아하는 탓에, 63빌딩이란 곳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람한테 DMC 첨단 축제, '서울디지털컬처오픈'을 취재하라니, 크크 이게 말이 됩니까.

[디지털아트] 아이들 "야, 잡지 못하는 물고기다"

 디지털아트 전시장
디지털아트 전시장이정환

일단 축제 팸플릿에 나와 있는 '디지털'이 붙은 행사부터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디지털 아트 축제, "디지털 파인아트, 포토아트, 프랙탈아트, 체험 예술 등 다양한 디지털 예술작품들을 직접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합니다. 무슨무슨 갤러리에 영 취미가 없는 터라 '미술 제로', '행복한 눈물'이란 그림이 왜 그렇게 비싼지 도무지 이해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막막한 상태에서 누리꿈스퀘어 바로 옆에 있는 KGIT센터 4층 전시실로 올라갔습니다. 오묘한 작품들이 빼곡합니다. 디지털아트협회 회원들의 작품입니다. 알 듯 모를 듯, 서양화가 강금석(61·남)씨가 "포토샵 등 컴퓨터 프로그램을 붓으로 사용하는 것이 디지털아트의 특징"이라고 설명해줍니다. 회화 고유의 수작업 성격을 갖고 있는 파인아트, 사진을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포토아트로 구분된다는 것이죠.

디지털아트는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합니다. 강씨는 "수작업으로 하면 10년 걸릴 표현을 바로 할 수 있는 데다가, 표현의 폭 또한 무제한으로 많은 변화가 가능한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며 "고정관념을 깨고 장르 벽을 과감히 허물고 싶어 디지털아트도 접하게 됐다"고 합니다.


박달호(57·남) 디지털아트협회 회장은 앞으로 DMC에서 디지털아트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예술적·학술적 기반 위에서 DMC가 성장해야 한다"는, "뿌리 없는 나무가 되면 안 된다"는 당위에 근거한 전망입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를 "디지털아트를 일반인들이 좀 더 친근하게 여기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합니다.

 똑같이 해볼까? 아이들은 즐겁다
똑같이 해볼까? 아이들은 즐겁다이정환

아이들과 함께 행사장을 방문한 정은숙(37·여)씨의 반응은 호의적이었습니다. 정씨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다양한 표현을 접할 수 있어 참 좋다, 색다른 맛"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엄마도 있었습니다. 양미진(44·여)씨는 "디지털아트 자체가 낯설어 작품들이 의도하는 바를 잘 모르겠다"며 "설명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에는 참 좋은 자리"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실제 아이들도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반응이었는데요. 박윤서(10·남), 황중현(9·남) 어린이는 특히 행사장 바닥 유리판 아래 모니터 안에서 유유자적하는 거북이와 금붕어가 인상깊었던 모양입니다. "야, 잡지 못하는 물고기다", 황중현 어린이 소감에 함께 있던 할머니도 "정말 맞는 말"이라며 감탄합니다.

[디지털기술 체험] '수리수리 마수리' 입장카드에 놀라다

디지털 파빌리온(전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번 축제를 총괄한 김선홍 서울산업통상진흥원 경영전략실장이 일전에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디지털 기술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며 "평소 유료 관람인데, 이번 행사기간에는 무료로 운영되니 꼭 한 번 가보라"고 권했던 곳입니다. <오마이뉴스>가 위치한 누리꿈스퀘어에 있는데도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터라 더욱 궁금하기도 했구요.

그런데 이거 입장 절차가 조금 까다롭습니다. 1층 안내데스크에서 방문자 인적사항을 적어야 하고, 그래야 RFID(첨단전자태그) 입장카드를 받을 수 있답니다. 키오스크(무인단말장치) 모니터 화면에 또 한 번 이름과 생년월일을 꾹꾹 눌러줘야 합니다. 슬슬 치미는 거부 반응, 아니 그보다 왠지 주눅드는 거 있죠?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었더군요. 2층에 올라가 'Hello IT'라고 정보통신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전시물과 처음 마주쳤는데요. 관람객이 자신의 입장카드를 대니까, 그 사람 이름이 '나뭇잎'에 새겨져 '뿅'하고 화면에 떠오릅니다. 이렇게 입장카드에 인식된 정보와 관람이 연결되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수리수리 마수리' 카드인 셈입니다. 'Play IT'란 곳에서는 줄이 없는 하프를 퉁길 수도 있더군요. 와, 신기하다.

 디지털 파빌리온 4층 4D영상관
디지털 파빌리온 4층 4D영상관digitalpavilion.co.kr

그렇게 다양한 전시물을 눈이 똥그래져서 잔뜩 구경하고 3층 상상관에 올라갔습니다. 2층에서 다양한 체험을 통해 IT기술 원리에 익숙해졌다면, 이제는 상상 속의 미래 생활을 한 번 미리 엿보라는 '관람 동선'입니다. 국제화상회의, 헬스케어, 홈네트워크 등 미래 시스템을 구경하고 개인 신체리듬에 따라 음악·영상·조명이 조절되는 감성형 벤치에도 앉아봅니다. 그때마다 '슬로어답터' 입에서 절로 나오는 감탄사.

그리고 4층에 있는 '4D 영상관'에 입장했습니다. TV뉴스로만 봤던 '검은 안경'을 쓰고, '3D도 아닌 4D? 도대체 무시기 소리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호랑이가 눈앞에 찰 듯 나타나더니 대뜸 콧김을 내쏩니다. 동시에 얼굴로 '췩'하고 날아드는 콧김. 그만 깜짝 놀랐습니다.

호랑이가 풀숲을 헤치며 뛰어가는 장면에서는 뭔가 종아리를 '슥슥', 대지를 울리는 싸움이 펼쳐질 때는 의자 진동 '붕붕'. 아마 연신 '와'하며 입을 벌리고 관람했던 것 같습니다. 국내 순수 기술로 만들어졌다는 '화첩몽'이란 제목의 '특별한 영상'이었습니다.

 전자현악팀 '엠프리'의 디지털음악회 공연
전자현악팀 '엠프리'의 디지털음악회 공연이정환

디지털 파빌리온을 둘러본 다른 분들의 소감은 어땠을까요. 마침 카이스트 학생들이 있더군요. 방학을 일찍 해서 서울 온 김에 들렸다는 손샤론(19·여) 학생은 "이런 기술이 있는지 몰랐는데, 보다 더 많이 알려져서 대중화가 됐으면 좋겠다"며 "나중에 꼭 상용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함께 대학을 다니는 강수영(18·여) 학생 역시 "보통 사람들도 IT와 친근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했습니다. 다만 4D 영상, 화첩몽에 대해서는 "기술적으로는 63빌딩 같은 곳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면서 "그러나 아주 예쁜 영상이었다"고 평가하더군요.

공무원 교육연수 과정으로 전시관에 방문했다는 홍혜숙(50·여)씨도 기대 밖이었다는 반응이었는데요. 홍씨는 "볼거리가 참 많다, 새로운 걸 많이 접할 수 있어 신기했다"면서 "둘러보면서 앞으로 우리 미래 생활이 이런 식으로 변하겠구나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오기 좋은 곳"이란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역시 "아이들에게 참 좋은 공간"이라고 하시더군요. 아이들과 함께 방문한 임두헌(45·남)씨는 "솔직히 기술적으로는 선진국들에 비해 아주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상당히 귀엽고 예쁘게 전시관을 잘 꾸며놔서 아이들이 아주 재미있어 하더라, 체험할 수 있는 전시물 숫자도 많아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디지털 파빌리온 2층 IT 탐구관 '정보통신의 현재와 미래'
디지털 파빌리온 2층 IT 탐구관 '정보통신의 현재와 미래'digitalpavilion.co.kr


그리고 아버지가 떠오르다

이렇게 1시간 넘도록 '상상하는 모든 것이 현실로 이뤄진다는 디지털 미래'를 실컷 구경했는데요. 전시관을 나와 아버지가 떠오른 것은 뜻밖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타박과 짜증에도 굴하지 않고 칠순이 넘은 나이에 혼자 컴퓨터 공부를 시작하셨죠. 덕분에 이제는 웹서핑이나 홈뱅킹뿐 아니라, 외국에 살고 있는 딸과 메신저로 안부를 주고받고, 지금 이 글도 찾아보실 수 있답니다.

'나보다 더한 아날로그 세대'인 아버지가 떠오른 이유, 아마도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나의 자세를 돌아봤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듯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갈 텐데, 너무 디지털이란 것에 무관심하지 않았나. 이런 태도로 지금 아버지가 세상과 소통하며 누리는 기쁨을 나중에 나는 느낄 수 있을까.

물론 '기술만능주의'는 아닙니다. '빨리빨리'나 '편하게'가 꼭 좋은 것이냐 하는 물음표도 여전합니다. 다만 귀차니즘에 빠져, 혹은 '먹을 만큼 먹은 나이'만 핑계 대고 있진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를 느꼈다는 것이죠.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의 저서 <디지로그>에도 이런 말이 있죠. 디지털을 씹어라, 정(情)을 통하라. '서울촌놈 슬로어답터'가 '디지털 하루 관광'으로 되새긴 교훈치곤 괜찮지 않습니까.

끝으로 '슬로어답터'마저 혹하게 만들었던 '디지털 이야기' 하나도 덧붙입니다. "외국인과 언어의 장벽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 가까운 미래에 펼쳐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외신을 갖고 장난치는 이상한 보도는 사라지지 않을까. 또 영어몰입 교육 따위를 논하는 '불도저식 아날로그 세대'로부터 우리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불가능한 상상일까요.

 디지털 파빌리온을 찾은 어린이들
디지털 파빌리온을 찾은 어린이들digitalpavilion.co.kr
#DMC #디지털아트 #디지털컬처 #상암동 #누리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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