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식 대법관 대법원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인적쇄신이 한창 진행 중이다. 대통령실장과 수석비서관 등 청와대 참모진 인사가 20일 발표되었고, 총리⋅장관 등 내각도 어떤 방식으로든 조만간 새로 꾸려질 것 같다.
그런 가운데 법원이 난데없이 정부 인사에 끼어들었다. 김황식 대법관이 감사원장으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일부 언론은 '확정'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김 대법관의 임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현직 대법관이 임기 도중에 정부의 고위직으로 간 경우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어서 법원 안팎에서 말들이 많다. 지금은 정치인이 된 이회창씨가 대법관 임기를 5개월 정도 앞두고 김영삼 정부의 감사원장으로 간 사례가 유일하다.
김 대법관은 74년 법관으로 임용된 이래 30여 년 동안 판사로 일해왔고, 2005년 11월에 대법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임기(6년)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갑자기 감사원행을 택한 것이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김 대법관의 감사원행은) 본인의 판단에 불과할 뿐"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지만 "이번 일로 법원이 받을 타격이 적지는 않다"고 우려했다.
곰곰 한 번 생각해보자. 사법부의 최고법관이 임기 도중에 정부의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맞는가.
대법관의 감사원행, 사법부 독립 훼손 우려우리나라 헌법을 보자. 입법권은 국회에(40조),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66조 4항),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101조)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누구나 아는 삼권분립의 원칙이다.
국가의 권력을 입법·행정·사법으로 나누고, 상호 견제·균형을 유지하여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려는 원리이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 중에서 특히 사법부의 독립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해방 이후 군사정부 시절까지 법원의 판결이 결과적으로 정권을 옹호하는 역할을 해왔던 경우가 많았다. 특히 시국 사건 등 국가와 관련된 소송에서 국민보다는 정권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군사정부 시절 일부 소신있는 판사들이 시국사건에 무죄를 선고하거나 검찰의 구속영장청구를 기각하여 뒷조사를 당하고 협박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버텨오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지금은 어떤가.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정부가 법원에 간섭하고, 법원이 정부의 입장을 고려하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사법불신'이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법원이 국가와 가진 자를 위한 기관이라는 오해를 사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관이 임기중에 감사원장으로 갈만큼 한가한 자리인가거창하게 삼권분립과 사법부의 독립을 얘기한 것은 이것이 아직도 한국 사회가 해결할 과제로 남아있어서다.
법원이 국가기관의 한 축으로 역할을 하려면 특정 정권이나 정치세력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국민도 그것을 간절히 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