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나무들의 '떨기춤'에 웃음이 절로

'마을산을 거니는 행복' 느끼는데 필요한 건 여유 한 움큼

등록 2008.06.24 15:59수정 2008.06.2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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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숲 마을숲도 여름이면 제법 울창해진다.
마을 숲마을숲도 여름이면 제법 울창해진다.김선호



모처럼 일요일을 한갓지게 보내려니 자꾸 눈이 밖으로 향한다. 날씨가 너무 좋지 않은가. 비는 진작에 그쳤고, 하얀 뭉게구름이 떠있는 하늘은 아이 말마따나 '가을 같이' 청명하다. 맑은 날씨 속에서 바람은 또 얼마나 맑게 불어대는지, 일하러 간 남편을 빼고 아이 둘과 함께 뒷산에 오른다.

지방의 중소도시인 이곳 경기도 남양주도 아파트가 숲을 이뤄 더 이상 시골 느낌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 마을 산이 덩그마니 놓여 있어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아파트 숲에 포위될 듯 위태로워 보여도 적어도 이맘 때면 무성한 나뭇잎이 있어 숲으로서 제 역할에 충실해 보이는 작은 마을 산을 오랜만에 올라본다.

기껏해야 200여 미터도 못 될 낮은 고도의 이 산은 오른다는 개념보다는 그냥 산책한다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하듯 뒷산을 오른다. 준비물은 필요 없다. 그저 마음속 작은 주머니에 '여유 한 움큼'이면 족하다.

쪽동백 나무 쪽동백 나무는 마을 숲에서도 싱싱하게 살아간다.
쪽동백 나무쪽동백 나무는 마을 숲에서도 싱싱하게 살아간다.김선호


여름으로 가는 숲이 제법 풍성하다. 들머리엔 들녘에서 흔히 보던 풀들이 무성하다. 그 사이로 붉게 익어 가는 산딸기가 반갑다. 허리를 낮춰 들여다 보면 아이의 표현에 의하면 '할아버지 지압구슬 같은 뱀딸기'도 보인다. 먹을 수 없으나 물기 촉촉한 뱀딸기의 색깔은 참으로 곱다.


토종소나무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리기다소나무가 대부분을 차지한 등산로 초입은 그래도 제법 가파르다. 마을 노인회에서 나무마다 이름을 달아 놓았다. 어느 산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수종들이 대부분이고, 그 사이에 '노간주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어서 눈길을 끈다.

그나마도 시들하다. 원래 높은 산, 심산유곡에서 잘 자랄 나무가 마을산에 와서 고생하는구나 싶어 안쓰럽다. 예전에 이 작은 마을산도 이렇게 규모가 작지 않았을 땐 지금보다 숲이 훨씬 풍성했을 테고, 공기 또한 더 맑았을 게 틀림없을 것이다.


운동기구 어느 뒷산에서 처럼, 우리마을 산에도 운동기구가 놓여있다.
운동기구어느 뒷산에서 처럼, 우리마을 산에도 운동기구가 놓여있다.김선호


마을과 가까이 있어 찾기 쉬운 만큼 훼손 가능성도 더 크게 마련이었겠지. 벌써 몇 년 사이 개발 바람을 타고 숲 한 귀퉁이가 뭉텅 잘려나가는 걸 두 눈으로 목격하지 않았던가. 잘려나간 만큼 길이 넓어졌다. 어쩌면 마을산의 운명이 그것인지 모른다. 사람들의 편익을 위해 희생될 수밖에 없는.

그러나 인간의 편익의 시선으로만 대한다면 언젠가 인간인 우리는 반드시 자연으로부터 재앙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자연과 잘 지내는 법'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마을 산을 오르며 하게 된다.

참나무 숲을 곧 지나쳐 봉긋한 정상 능선이다. 정상이라고 하기엔 그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도의 언덕에 불과하지만. 그 능선길에 밤나무가 많아 이맘 때면 밤꽃이 흐드러진다. 간밤에 내린 비에 떨어진 밤꽃도 씩씩하게 나뭇가지에 붙어 가을날 토실한 열매를 약속한다.

'무슨 벌레 같은 게 꽃이라구' 그렇다. 밤꽃은 누르스름한 꽃 빛에 그 모양이 벌레 같아 꽃이라고 하기에 참 안 생긴 꽃이다. 그러나 마치 병 솔같이 생긴 그 누르스름한 꽃에서 매끈하고 알찬 밤알이 영글어 간다고 생각하면 못생긴 밤꽃도 참으로 위대해 보인다.

애기나리 군락 내리막길에 지그재그로 숱한 길들이 생겼다. 군락을 지어 피는
애기나리가 길을 피해 한켠으로 물러나 있다.
애기나리 군락내리막길에 지그재그로 숱한 길들이 생겼다. 군락을 지어 피는 애기나리가 길을 피해 한켠으로 물러나 있다.김선호


숲에서 만나는 세세한 일들이 모두 이야기가 되는 길이 바로 마을산의 또 다른 매력일 것이다. 밤나무 군락을 지나 정상에 서면, 그곳에 운동기구가 몇 개 놓여있다. 그리고 벤치가 놓여 있어 잠시 다리쉼을 하기에 적당하다. 오르는 길이 그리 고되지 않으니 '다리쉼'이라고 할 것까진 없고 그저 같이 온 동행이나 가족끼리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얘기 나누면 좋을 장소다. 

봉긋한 언덕 같은 정상을 지나치면 싱겁게도 내리막이 금방 나온다.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심정은 내리막길에 요기조기 산길을 만들고 말았다. 그 심정 조금 다스렸으면 좋으련만, 짧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숲 속에 지그재그로 길을 내는 바람에 애궂은 숲 속의 뭇생명들에 치명타를 안기지 않았나 걱정스럽다.

산 아래쪽을 마치 강원도 산길을 뚫은 도로처럼 구불구불 수없이 많은 산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인간의 걷고 싶은 욕심이 빚은 이 참극 앞에서 그만 아연해지고 만다. 길을 그렇게 냄으로 해서 없어져간 뭇 생명들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지.

즐거운 한때 마을 뒷산에 올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가족들,
즐거운 한때마을 뒷산에 올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가족들,김선호


도로 쪽으로 깍아 놓은 비탈길을 마주보고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본다. 쓰러진 밤나무 둥치 위에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앉아 얘길 나누는 시간이 좋았다. 바람이 좋은 건 우리들만이 아닌 모양이다. 밤나무는 밤나무대로, 참나무는 참나무대로, 청미래덩굴은 또 그 나름대로 바람을 맞아 춤을 춘다. '떨기춤'이라고 아이들이 명명한대로 나뭇잎을 부르르 떨며 추는 나뭇잎들의 춤이 재밌어 한참을 들여다보며 웃는다.  

길 건너 기차 건널목에서 딸깍, 딸깍, 경고음이 울리고 곧이어 춘천 가는 기차가 지나간다. 마을 산에 앉아 비 온 뒤 한결 깨끗해진 마을을 바라보면 가끔은 그렇게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지나가기도 한다. 마을 산에서 참 많은 이야기들을 안고 내려오는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저물어 간다.

'흔들리는 수많은 나뭇잎들이 따로따로 또 때로 함께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눈부셔하는 사람은 행복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 말은 섬진강 시인인 김용택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자, 어느 바람 부는 일요일 오후, 아이들과 더불어 나뭇잎들의 군무를 지켜본 나의 생각이기도 하다.
#마을 산 #나뭇잎들의 군무 #작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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