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 속으로 칼바람이 들어오네요. 춥지 않냐고요? 아마 얼어 죽기 전에 멋진 남성이 따뜻한 코트를 걸쳐줄 걸요?'
여성들의 속마음은 이럴까. 교육받은 신여성과 고전인 요조숙녀 사이를 오갈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달콤하고 씁쓸한 고민을 새삼 알 수 있다. 이 책은 현대 도시 여성에 대한 흥미와 고민을 같이 알려준다. 아래와 같은 글들 보자.
"당신이 멋진 원룸에 살지 않는다면 멋진 호텔을 예약하세요. 좋은 둥지를 마련하는 건 수컷의 의무니까요." - 책에서
위의 인용문들은 잡지 <보그>의 김지수 차장의 첫 에세이 <품위 있게 산다는 것>(2008·팜파스)에 나오는 글이다. 이 책은 피처스토리(잡지의 특집 기사로, 독자의 정보요구에 따라 사람들 관심에 주안점을 둔 기사)를 모아 엮은 책으로, 시인이 되고자 했던 지은이의 유쾌하고 빼어난 표현이 가득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한다.
서울, 도시 여성들의 꿈과 사랑, 일과 욕망에 관해 사색을 하는 지은이는 여성이 접하는 일상과 거기서 느끼는 감정을 발랄하지만 진지하게 잘 드러낸다. '짝퉁은 태생적으로 상처를 안고 있다. 그건 날고뛰어도 명품의 품질보다 못하다는 외형적 상처보다 태생 자체가 ’모방과 거짓말이라는 실존적 상처다', 이런 날카롭고 우아한 표현들이 책 읽는 맛을 더한다. 패션 잡지에 실리는 글이라 조금 가볍게 보려고 했던 짧은 생각은 산산조각 난다.
성형외과에서 가슴을 열어 보이는 것과 같은 두려움으로 자궁을 열어 보이며 받은 자궁암과 유방암 진단 체험, 복부지방을 덜어내기 위해 피트니스 센터에서 땀을 흘린 다음, 뇌의 지방을 덜어내기 위해 심리치료사 앞에서 눈물 흘리는 지은이의 이야기는 무척 관심을 끌 것이다.
성형을 단념하고 결단을 내리는 사람들, 현대인을 좀 먹으면서 예술인으로 만들기도 하는 우울증, 직장인으로서 유용한 대화 기술인 아부, 고단하지만 달콤한 직업, 그 누구도 모르는 싱글맘, 해체 위기에서 더욱 짠해지는 가족, 위험해서 더욱 그리운 이웃,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봉사 등 가리지 않은 소재와 여러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들은 여성들이 무척 동감할 것이다.
이 책은 <품위 있게 사는 법>이란 제목으로 나왔지만 '현대 도시 여성의 솔직한 해부도'가 정확한 제목이라 할 수 있다. 그저 솔직하기만 하다면 가벼울 수 있을 글이 수많은 책과 영화, 사람들 인터뷰에서 따온 내용을 잘 녹여낸 글 솜씨 덕에 책을 품위 있게 하였다. 사치, 허영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에는 사랑과 나눔을 펼치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잘 건드리면서 깔끔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지은이를 '<보그>가 존중하는 가장 특별한 문장가'라는 찬사를 받게 한다. 책에 일부를 꼽았다. 천천히 감상해보시길.
"담배가 지닌 마술이 동등한 '연애'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오로지 여성들만 안다. '나를 사랑해?' 또는 '첫키스는 언제 해봤지?'라는 곤혹스러운 질문 앞에서 시선을 피하며 수줍음과 신파적인 분위기를 풍기거나 '모든 게 니가 처음이야'라고 악녀의 이중성을 내보이는 대신, 그저 '잠깐만!'하며 담뱃갑에서 3.3인치의 흰 연초를 꺼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몰래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는 여성은 '방탕함'이라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가 안아준다고 다가와도 연기 냄새를 맡을까봐 전전긍긍. 돌연한 키스라는 낭만 무드가 감지되면, 다시 '잠깐만'을 외치며 진토닉의 애꿎은 매실 한 알을 베어 무는 것이다." - 책에서
2008.06.24 15:48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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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게 사는 법
김지수 지음,
팜파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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