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시청 앞 광장. 조금은 남루한 옷차림의 할아버지가 검은 비닐봉지 두 개를 들고 한 텐트에 와서는 "고생 들 한다. 참외를 사 왔으니 먹어라"며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이어 다른 봉지에서 페트병 소주를 꺼내더니 한잔 들이켰다.
72세의 이봉근 할아버지는 "지난달 3일 전남 순천에서 상경하여 지금까지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올라와서 지금까지 집에 한번 도 못 갔다 왔어, 우리 마누라? 지금 저 위에서 쳐다보고 있을 거야! 아들들은 인천하고 천안에 살고 있고, 지금 시골에서는 우리 소 40마리를 동생이 대신 키우고 있지. 아들들? 올라온 거? 다 알지. 지랄들 떨지. 그런 건 애들이나 하는 거지 노인네가 뭐 하냐며 많이 혼났지. (웃음)
6일 날 물대포 맞고 정신을 잃어 깨보니 적십자 병원이었어. 어떻게 실려간지도 몰라. (손으로 당시 상황을 표현하며) 이렇게 얼굴에 물대포가 날아오는데 누가 날 막아주지 않았으면 죽어버렸다니까. 젊은 사람이 날 막아서 물대포를 막아준 거 까지만 기억이나. 그 뒤에는 전혀 기억이 안나.
왜 앞에 서 있었느냐고? 첨엔 뒤쪽에 서 있는데 학생이 맞는 자리가 저기면 난 이쯤에 서 있었어. 저 앞에서 여학생이 군화 발에 짓밟히고 있었어. 그날이야. 그래서 튀어 나갔지. 그리고 (경찰에게) 한마디 하자마자 바로 물대포가 날아왔어. 얼굴에다 바로….
기절했지. 막아준 거 까지만 기억나. 한 젊은 사람이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하면서 앞에서 막아준 거 까지만 기억이 나. 그 젊은이 꼭 한번 만났으면 좋겠어! 소주라도 꼭 한잔 사주려고…."
할아버지는 그간 준비해온 여비와 아들들이 보내준 돈이 바닥나 서울역에서 자고 왔다고 한다.
"내가 없다는 소리 안하고 지낸지 열흘 쯤 돼. 천막 쳐진데 여기저기 다니면서 라면 한 그릇 얻어먹은 게 열흘 쯤 돼. 올라올 때 150만원 가져왔어. 그거 푼돈밖에 안되더구먼. 하루하루 사 먹다보니 금방 없어 지드만. (웃음) 그렇지! 아예 작심하고 올라왔지 이명박이 죽던지 내가 죽던지 하나 죽으려고!"
"혼자 오셨냐"고 물었다.
"그렇지. 누가 가자면 따라올 사람도 없고. 그러고 뭔 좋은 일 이라고 일행을 얻어오겠어? 이런 일에는 혼자서 해야 제대로 하지 같이하면…. 3일 날 올라와서 여인숙에서 자면서, 여기서 불이 안 났으면 다시 내려갔을지도 몰라. 중학생들하고 고등학생들 나온 걸 내가 울면서 봤네. 데모가 아녀. 시위가 아녀, 우린 이명박한테 지금 항의를 하는 거지 시위나 대모가 아녀. 시위나 데모라 그러면 나한테 맞네.
어제(21일) 또 잡혀갔었어! 지네들이 데려가서 지네들이 재워줬어. 자고 있는데 한 놈이 오더라니까. 와가지고 처음에 일식집으로 끌고 갔어. 내가 '도저히 못 봐주겠다' 그랬더니 날 데려갔어. 내가 그랬어. '다른 건 다 모르겠고 내가 소를 키우니 소 키우는 사람들 1억원씩만 줘라 그러면 여기서 사라질게' 하니 '1억원 해주면 되겠냐?' 그러더라고. 양복 입은 사람이…. 준다고 얘기는 했어.
다 1억원씩 소 키우는 사람마다 다 주면은 그 정도면 되는 거 아닌가? 그 정도면 어느 정도의 보상은 되니까. 어느 정도 정리는 된다는 말이야. 다는 아니더라도.
나보고 술 먹지 말라고? 그런 소리 하지 마! 시골서 그런 소리 하면 이해가 되지 지금 여기서 그런 소리 하면 술 안 먹고 어떻게? 시골 사람들 다들 농협 빚이 많지. 갚을 능력이 다들 안 돼. (한숨)"
"텐트에 좀 누워서 쉬세요"라는 말에 할아버지는 "나 편하게 쉬러온 사람 아니네"라며 거절한다. "언제 내려가시냐" 물었다.
"내가 한 놈 잡고 내려갈 거야. 전경들한테도 그랬어. 시킨 대로만 하고 폭력을 하지 말라고 했어. 장관고시? 못할 거야 우리를 무시하고 고시했다가는 지는 죽을 줄 알아야 돼!
순천 낙안 마을 거기가 우리 집이네, 우리 시골 한번 내려와. 참 좋은 곳이야. 이제 좀 자야겠어."
할아버지는 텐트 앞 광장에 드러누우셨고 피곤하셨던지 곧바로 잠 드셨다.
2008.06.24 18:22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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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서 만난 72세 할아버지 "절대 안 내려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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