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63)

― '서로의 얼굴', '서로의 손', '서로의 집' 다듬기

등록 2008.06.24 19:13수정 2008.06.24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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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

 

.. 마을 사람들은 뜻밖의 소식에 어리둥절해하며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  <숲이 어디로 갔지?>(베른트 M. 베이어/유혜자 옮김, 두레아이들, 2002) 11쪽

 

 “뜻밖의 소식”은 “뜻밖인 소식”으로 다듬으면 어떨까요? 이렇게 쓰면 안 어울릴까요? “뜻밖에 들은 소식”이라 하면 어떨는지요.

 

 ┌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 서로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 …

 

 보기글에서는 ‘-의’를 덜고 ‘서로’로 적으면 됩니다. ‘서로서로’를 넣어도 어울립니다. 이때에는 “서로 쳐다보았다” 사이에 ‘얼굴을’이 들어간다고 볼 수 있고 “얼굴을 쳐다보았다” 앞에 ‘서로’가 들어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로 쳐다보는데 무엇을 보느냐 하면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얼굴을 쳐다보는데 어떻게 보느냐 하면 ‘서로 본다’ 하고 말할 수 있고요.

 

ㄴ.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 순화와 엄마는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걸었기 때문에 어느 틈에 전차길까지 나왔읍니다 ..  <내 친구들 이야기>(신지식, 성바오로출판사,1987) 37쪽

 

 요사이는 동무끼리 주고받는 말에도, 식구끼리 허물없이 나누는 말에도 얄궂은 서양말이 흔히 끼어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보는 텔레비전이나 영화나 책에 얄궂은 서양말이 잔뜩 끼어든 탓이 크다고 느끼는데, 이렇게 둘레에서 흔히 듣는 말이 자연스럽게 자기가 살아가면서 쓰는 말이 되고, 어느 틈에 자기도 모르게 입에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말투나 말버릇이 된다고 느낍니다.

 

 ┌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

 │→ 서로 손을 꼭 붙잡고

 │→ 서로서로 손을 꼭 붙잡고

 │→ 손을 꼭 붙잡고

 └ …

 

 어릴 적부터 둘레에서 “서로 손을 잡는다”라는 말을 듣던 사람과 “서로의 손을 잡는다”라는 말을 듣던 사람은 말씨가 다릅니다. 자기가 읽는 책에 “서로의 손을 잡는다”라는 말이 되풀이해서 나온다면, 이분 말씨는 토씨 ‘-의’가 찰싹 달라붙기 일쑤입니다. 집식구나 이웃들이 “서로 손을 잡는다”고 말하는 터전에서 살아간다면, 이분 말씨에는 토씨 ‘-의’가 함부로 깃들지 않을 테지요.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 부대끼며 지내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일이나 놀이, 우리가 쓰는 말과 글도 다른 사람한테 배우거나 길들거나 따르기 마련입니다. 둘레사람들이 넉넉하고 살가웁고 아름다운 말을 널리 쓴다면, 우리도 이런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씁니다. 둘레 사람들이 얄궂거나 아쉽거나 똑똑한 티 내는 말을 두루 쓴다면, 우리도 이런 말에 어느 사이에 물들고 말아요.

 

ㄷ. 서로의 집에

 

.. 야외 요리 파티를 열었고 애완동물을 보기 위해 서로의 집에 방문하기도 했다 ..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마이클 예이츠/추선영 옮김, 이후,2008) 62쪽

 

 미국말을 그대로 옮기면 “야외(野外) 요리(料理) 파티(party)”가 될는지 모르나, 문화를 담는 말임을 생각한다면, 이대로 적는 말은 우리한테 느낌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마당에서 벌인 음식잔치”라든지 “들놀이 저녁잔치”쯤으로 고쳐 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애완동물(愛玩動物)을 보기 위(爲)해”는 “애완동물을 본다며”나 “집에서 기르는 귀염둥이 짐승을 보려고”로 손질합니다. ‘방문(訪問)하기도’는 ‘찾아가기도’나 ‘들르기도’로 다듬습니다.

 

 ┌ 서로의 집에 방문하기도

 │

 │→ 서로 집에 찾아가기도

 │→ 서로 찾아가기도

 └ …

 

 이 자리에 쓰인 “서로의 집”이란 “서로 살아가는 집”을 가리킵니다. 이 말뜻 그대로 “서로 살아가는 집에 찾아가기도”로 적을 수 있고, 단출하게 줄여서 “서로 찾아가기도”로 적을 수 있으며, “오며 가며 지내기도”로 적어도 됩니다. 한쪽에서 찾아가고 한쪽에서 찾아오면서 지낸다면 “가까이 지내는” 셈이기도 할 테지요.

 

 ‘서로’라는 말을 넣고 싶으면 토씨 ‘-의’만 덜어 주거나 ‘서로서로’처럼 적어 봅니다. 꼭 ‘서로’라는 낱말을 안 넣어도 된다면, 느낌과 뜻을 살려서 여러 가지 말씨로 이야기를 풀어내 줍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6.24 19:13ⓒ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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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우리말 #우리 말 #-의 #서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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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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