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맑던 지난주 일요일 아침, 목에 사진기를 걸고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열 시 반이면 도서관 문을 열어야 하기에, 이에 앞서 잠깐 골목길을 휘 둘러보기로 합니다.
인천이 고향이면서 인천 골목길 구석구석 누벼 보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또 인천시장이 개발업자와 부동산업자한테 좋은 일 시켜 준다며 2013년까지 인천 옛 도심지를 죄다 갈아엎고 아파트로 바꾸고 나면 이제는 두 번 다시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골목길이라는 생각으로, 동구 화평동과 화수동을 둘러봅니다.
금요일 저녁에 성당에서 혼배성사를 하느라 만석동 동무를 불러서 증인으로 세웠는데, 만석동 동무는 성당이 있는 송림동으로 처음 와 보았다고 합니다. 행정구역으로 치면 같은 ‘동구’이고, 걸어서 이십 분이면 닿는 자리인데, 여기도 안 와 보았나 갸우뚱갸우뚱하다가, 딱히 이웃 동네로 마실을 가야 할 일이 없기도 하겠구나 싶습니다.
이웃한 동네라고는 해도 가까운 동무나 살붙이가 없다면 굳이 마실 갈 일이 없습니다. 그곳에 뭐, 헌책방이라도 있거나, 맛집이라도 있거나 한다면 모르지만, 따로 짬내어 골목을 둘러볼 일이 있겠습니까. 어여쁜 골목꽃이 있어서 구경하러 가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만, 집집마다 어여쁜 꽃은 다들 가꾸고 있으니, 구태여 꽃을 구경한다며 이웃 동네까지 가지도 않을 테지요.
꽃구경이라면 으레 월미도를 가니 자유공원을 가니, 또는 버스나 전철을 타고 서울 여의도를 가니 더 먼 데를 가니 하지, 이웃 동네로 마실을 가지는 않습니다. 모두모두 골목사람이지만, 자기네 터전을 살짝 벗어나서 이웃 동네 터전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아니, 여기까지 마음을 기울일 짬이나 느긋함이 없다고 해야 옳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골목길 맛과 멋에 눈길을 기울인다거나 골목길 문화를 가꾸는 쪽으로는 조금도 맞추어져 있지 않은 만큼, 저처럼 골목마실을 하는 사람한테만 아름답게 보일 뿐인 골목꽃이라고도 느낍니다. 골목길이라면 으레 ‘낡은 곳’이라느니, ‘낙후된 곳’이라느니, ‘지저분한 곳’이라느니, ‘퇴색한 곳’이라느니, ‘하루빨리 개발해야 할 곳’이라느니, ‘주거정비를 해야 할 곳’이라느니 하는 데다가, ‘나도 어릴 적에는 그런 데에서 살았지만, 그런 데에도 사람이 사는가?’ 하고 말하는 분들조차 있습니다.
골목집 담벼락에 ‘아름답게 꽃피우는 예술을 담는 벽그림’을 그리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이와 같은 벽그림들은, 골목길을 골목길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가운데 섣불리 들이대는 붓질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 모습 그대로도 넉넉히 아름답거든요. 이 모습 그대로도 얼마든지 사랑스럽거든요.
그저 하얗게만, 또는 옅노랗게만, 또는 푸르게만 발라 놓은 골목집 담벼락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한 가지 바탕빛은 바탕빛대로 깔끔함과 깨끗함을 담아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멘트로만 마감하고 아무런 빛을 입히지 않은 담벼락은, 겉가꿈보다는 속가꿈으로 집살림을 알뜰살뜰 꾸리는 데에 마음을 쓸 때가 한결 낫지 않느냐는 사람들 야무짐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버려진 스티로폼 상자를 주워 모으고 흙을 담아서 덩굴풀을 심은 다음, 버려진 나무막대기를 주워서 버팀나무를 삼고, 푸른빛 바인더끈이나 ㅇ마트 포장끈으로 담벼락 뾰족창살에 묶어 놓은 모습도 훌륭한 꽃가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화평동 120번지 골목 앞에 섭니다. 오른쪽으로는 2700세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솔빛주공아파트가 올려다보입니다. 아파트라고 하는 집은 엄청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몰려서 살 수 있도록 지었다는 대목에서는 잘 지었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을 지나치게 한 곳에 몰아넣어서 숨이 막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또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으면 이 동네에서 쓰는 물이며 전기며 대단할 테고, 이 집집마다 흘려보내는 똥오줌은 얼마나 많을까 싶어서 아찔하기도 합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립니다. 자전거에서 내려 골목을 걷습니다. 해당화가 핀 골목집 앞에 서서 사진을 여러 장 박습니다. 조그맣게 일구는 텃밭 고추포기에 물을 주는 할머니가 보이고, 일요일 아침에 어디론가 떠나는 이삿짐 실은 짐차가 보입니다. 볕이 좋은 아침나절, 꽤 많은 집에서 빨래를 바깥에 널어 놓고 있습니다. 알맞게 부는 바람에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는 빨래. 빨래줄을 이은 앞으로 펼쳐지는 골목텃밭.
조금 큰 나무라도 있으면 새들도 둥지를 틀고 살 테고, 새들이 산다면 이 조용하고 호젓한 골목길에서 새소리도 들을 테지, 생각합니다. 182번지 앞길, 헐리고 빈 집터로 보이는 자리에 일군 텃밭에 온갖 푸성귀가 가지런히 자랍니다. 올망졸망한 이랑에 나무 몇 그루 심겨 있습니다. 무슨 나무일까 곰곰이 헤아려 보는데, 뒤쪽에서 “무슨 사진 찍어요?” 하고 묻는 아주머니 목소리. “꽃이 예뻐서 찍나 보지?” 하고 다시 묻는 목소리. “네, 그런데 이 나무는 무슨 나무지요?” “그거는 감나무고 저 뒤로 배나무도 있고 무슨 나무도 있고.” “어, 감나무였어요? 그러네, 감나무네. 어린 감나무가 이렇게 생겼구나.” 아주머니가 배나무라고 가리킨 쪽을 가서 들여다봅니다. 굵직굵직한 열매가 달리지는 않을 테지만, 텃밭을 일구는 집과 이웃집에서 맛을 볼 만큼은 거둘 수 있으리라 봅니다.
파란 페인트를 바른 나무 울타리가 있는 집을 지나고 다시 샛골목으로 접어드니, 교회로 빠져나가는 길. 지붕이 높직해서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보아야 하는 건물 앞에는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시멘트블록집. 블록집 앞에도 소담하게 가꾸어 놓은 텃밭.
텃밭에서 자라는 상추를 살짝 쓰다듬다가는 자전거에 올라타고 조금 달립니다. 자동차가 오가는 제법 넓은 골목은 그다지 걷고 싶지 않아서. 교회 앞문 쪽을 지나가니 앞으로 퍽 가파르게 이어진 언덕골목. 그리고 저 너머로 푸르게 갠 하늘에 허연 매연을 내뿜고 있는 공장들. 언덕받이에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면, 내다보이는 모습이란 공장 굴뚝과 허연 매연.
그래도 골목집마다 빨래를 널 때에는 햇볕을 받을 수 있는 길가에 빨래대를 세우거나 빨래줄을 길게 드리우고. 따지고 보면, 나날이 조그맣게 줄어들고 있는 골목집에 깃들어 있는 사람들은, 골목집 둘레로 높다랗게 올라서는 아파트들 때문에, 자기 삶터를 빼앗기고 밀려난 사람들일 텐데, 이쪽으로 밀려난 골목집 사람들 삶터에 또다시 아파트를 짓겠다고 한다면, 이 사람들은 어디로 쫓겨나야 하는지. 골목집 임자는 겨우겨우 아파트를 얻는다 쳐도, 골목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은 아파트에 어떻게 들어갈는지. 게다가, 골목가게를 헐고 쇼핑센터를 들인다 한들, 골목가게 꾸리던 사람이 쇼핑센터 달삯을 치르면서 버틸 수 있을는지.
생각해 보아도 풀리지 않고, 풀리지 않으면서 답답하기만 하니, 생각은 그만 접습니다. 오르막 골목을 낑낑 올랐다가, 내리막 골목을 시원스레 내렸다가, 잠깐 멈추고 골목꽃을 들여다보다가, 아차,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나 싶어 시계를 보니 열 시 반이 넘었습니다. 아이쿠, 얼른 돌아가야겠네. 부랴부랴 화평동네거리로 빠져나와서 찻길로 접어든 다음 씽씽 달려서 도서관으로 돌아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6.25 18:28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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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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