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날개를 펼쳐 날았지만 2m도 채 날지 못했다.
송성영
조심스럽게 다가갔지만 녀석이 1m가 넘는 긴 날개를 펼쳤다. 하지만 2m도 채 날지 못했다. 개울가 물풀 사이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노려보았다. 경계의 눈빛 같기도 하고 두려움의 눈빛 같기도 했다. 하지만 녀석의 눈은 너무 맑았다. 전혀 살기가 없어 보였다. 겁에 질렸을 것인데 겁에 질려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맑기만 했다.
녀석의 눈을 한참 들여 보고나서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카 아 아 쉬…." 녀석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경계의 소리가 분명했다. 하지만 녀석은 부리나 발톱으로 내 손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럴 만한 힘도 없어 보였다.
녀석의 부리부리한 부리에 물리면 손가락이 온전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발톱은 큰 토끼 한 마리쯤은 산 채로 낚아챌 만큼 크고 날카로웠다. 그 발톱이 내 손목이라도 움켜쥐면 뼈 사이로 깊이 박힐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녀석의 맑은 눈빛에 취해서 그런지 이상하리 만큼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맨손으로 녀석의 깃털을 가볍게 쓰다듬어가며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외상은 없어 보였다. 알 품는 닭이 그렇듯이 한동안 알을 품고 있었는지 녀석의 가슴팍에 깃털이 죄 빠져있었다.
왼손을 조심스럽게 날개 죽지 부위로 가져갔다. 오른손에는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날개 죽지에 손을 넣으려는 순간 녀석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날개를 힘들게 퍼덕거리며 저만치 다리 밑으로 내뺐다.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걸 보면 농약에 중독됐거나 쥐약 먹은 쥐를 먹었거나 작년 겨울 내내 온 산을 헤집고 다녔던 사냥꾼들이 설쳐대는 바람에 먹이가 없어 영양실조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우리집 작은아이 인상이에게 카메라를 맡겨놓고 다리 밑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녀석을 그대로 두다가는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누군가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었다.
이번에는 두 손으로 닭날개 잡듯 조심스럽게 날개 죽지를 잡았다. 녀석이 몇 차례 요동을 쳤다. 힘이 없는지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개울 밖으로 데려 나오자 두 살짜리 민영이가 바싹 다가와 녀석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나나 민영이나 겁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