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잎.덖어서 차로 만들거나 쌈으로 식용한다. 당뇨와 암예방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인기가 높다.
강기희
나무를 흔들었다. 오디 떨어지는 소리가 양철 지붕에 떨어지는 우박소리처럼 경쾌하다. 하지만 흔들어서 떨어지는 것은 이미 싱싱함을 잃은 것들이다. 나무 장대로 오디를 털었다. 밤을 털 듯 대추를 털 듯, 오디를 털었다.
허나 다 털 수는 없는 일이다. 오디가 필요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얼마간은 남겨 놓아야 했다. 애초 내 것이 아닌 터라 지나친 욕심은 버려야 하는 것이다. 잠시 털었는데도 오디는 한소쿠리나 떨어졌다. 몇 개 주워 맛을 보니 달고 맛있다. 어릴 때 먹던 오디맛과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게 변하는 시절, 오디는 여직 제 맛을 간직하고 있었다.
뽕나무에 얽힌 사연, 이젠 추억으로만 남아어린 시절 집에서는 양잠을 했다. 집집 마다 하는 일이었다. 작은 누에가 고치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컸다. 물론 뽕잎을 따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었다. 뽕잎을 사각사각 갉아 먹으며 큰 누에들은 고치가 되어 보리쌀로 혹은 자반고등어가 되어 돌아왔다.
지금은 소방서와 보건소가 들어섰지만 예전에 살던 집 근처는 뽕나무밭이었다. 뽕나무밭의 주인은 제사공장. 누에고치를 키워 실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스무살 안팎의 여성들. 그녀들은 하늘색 옷을 입고 하루 두 차례 뽕나무 밭으로 나와 뽕잎을 땄다.
그 시간이 되면 동네 총각들이 몰려와 휘파람을 휙휙 불며 영자를 찾았고, 복순이를 찾았다. 그러면 여공들은 까르르 웃으며 "상철아, 퇴근 후에 만나!"하며 맞장구를 쳤다. 하루 3교대로 돌아가는 제사공장. 그래서인지 여공들도 많았고, 여공 만큼이나 총각들도 많이 꼬였다.
친구네 집은 제사공장에서 나오는 번데기를 받아 그것으로 아이들을 다 키웠다. 동네 사람들은 친구네 집에서 번데기를 사다가 먹었다. 번데기 한 되만 있으면 온 식구가 며칠은 먹었다. 이젠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옛 이야기이다.
그의 말이 정말인 듯, 공장 뒷문으로 여직공들이 바구니 하나씩을 들고 뽕밭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가씨들은 모두들 연한 하늘색 계통의 두건과 작업복을 입고 있어, 마치 구름 송이들이 바람결에 산들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 강기희 장편소설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중에서나는 그 모습을 기록해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내 소설 속에 그 장면을 넣기도 했다. 여공들이 퇴근할 시간이 되면 자전거를 탄 총각들이 공장 앞으로 모여 들었고, 몇몇은 자전거 뒤에 여자친구를 태우고 비포장 길을 달렸다. 그 속에는 지금은 부동산업을 하고 있는 친구도 있었다. 26년 전의 일이고 그렇게 만나 결혼한 친구는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은 스무살이 되었다.
어린 시절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뽕나무 밭으로 숨어 들어 오디를 땄던 그 기억은 아직도 새롭다. 그때마다 뽕나무 밭을 지키는 '뻔데기 할아버지'에 의해 쫓겨났지만 우리는 끝내 익어가는 오디를 포기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