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65)

― '당신의 한 걸음', '당신의 금연', '당신의 이야기' 다듬기

등록 2008.06.28 19:13수정 2008.06.2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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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당신의 한 걸음이

 

.. 한 사람이 백 걸음을 걷는 것보다 백 사람이 한 걸음씩 함께 걷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당신의 한 걸음이 세상을 바꿉니다 ..  《요시다 도시미찌/홍순명 옮김-잘 먹겠습니다》(그물코,2007) 65쪽

 

 “걷는 것보다”로 적기보다는 “걷기보다”로 적으면 한결 낫습니다. “함께 걷는 것이”도 “함께 걷기가”로 적으면 더 낫고요.

 

 ┌ 당신의 한 걸음이 세상을 바꿉니다

 │

 │→ 당신이 내딛는 한 걸음이 세상을 바꿉니다

 │→ 당신이 걷는 한 걸음이 세상을 바꿉니다

 │→ 당신 한 걸음이 세상을 바꿉니다

 └ …

 

 한 걸음을 걷고 두 걸음을 걷습니다. 나도 걷고 너도 걷고 우리도 걷습니다. 내가 걷는 걸음이며 네가 걷는 걸음이고 우리가 걷는 걸음입니다.

 

 

ㄴ. 당신의 금연

 

- 당신의 금연을 도와드립니다.  〈서대문보건소 금연클리닉〉

 

 서울 홍제동에 있는 선배네에서 하루밤 묵던 어느 날, 형들과 낮밥을 밖에 나가서 먹자고 해서 동네 칼국수집으로 간 적 있습니다. 언덕마루 집에서 슬슬 걸어내려와서 칼국수집으로 가는데, 길가에 걸림막이 하나 있기에 뭔가 하고 보았더니, “당신의 금연을 도와드립니다”라고 크게 적은 글씨.

 

 ┌ 당신의 금연을 도와드립니다

 │

 │→ 당신이 담배를 끊을 수 있게 도와드립니다

 │→ 당신이 담배를 끊도록 도와드립니다

 └ …

 

 사람들 몸을 생각해서 담배를 안 피우거나 덜 피우도록 하겠다는 소리일 테지요. 담배가 우리 몸에 안 좋으니 보건소에서 ‘금연클리닉’이라는 곳도 꾸리는가 보지요. 그러면 이 나라에서는 왜 담배를 만들어서 팔까요. 더구나 정부에서. 사람들 몸이 걱정된다면 담배를 아예 만들지 말아야지, 담배값만 자꾸자꾸 올리면서 새 담배를 꾸준하게 내놓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담배인삼공사에서 내는 신문을 보면, 담배 팔아 자기네 돈 벌어 좋고, 담배가게도 장사 잘되어 좋다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그래, 이렇게 한쪽에서는 ‘병을 주’고, 다른 한쪽에서는 또 세금을 거두어들여서 나라돈으로 꾸리는 보건소에서 금연클리닉을 열어서 ‘약을 주’는군요.

 

 “당신이 튼튼하게 살 수 있도록 담배를 안 만들고 안 팔겠습니다” 하고 걸림막을 내걸 날이 올까요. 그나저나 ‘클리닉’은 뭐를 하는 곳을 가리키는지.

 

 

ㄷ. 당신의 힘들었던 이야기

 

.. 할머니는 입덧이 심한 조카며느리들에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참 이상도 하다”며 당신의 힘들었던 임신 때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한다 ..  《강희정,김선주,김한담-삼송, 사라지는 마을과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높빛,2007) 31쪽

 

 “입덧이 심(甚)한”은 “입덧을 많이 하는”이나 “입덧으로 괴로워하는”으로 손질합니다. “임신 때 이야기”에서는 토씨 ‘-의’를 넣지 않아 반갑습니다만, ‘임신(妊娠)’도 ‘아이를 배었을’로 손질하면 한결 낫습니다. 차근차근 마음을 기울여 주었더라면, 한결 알맞춤하며 살갑게 이야기를 펼쳐 나갈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들이 조금 더 우리 말씨를 돌아보지 못하기 때문인데, 아무래도 ‘건네주거나 들려주려는 생각’에만 마음을 쏟아서 그러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 당신의 힘들었던 임신 때 이야기

 │

 │→ 당신이 힘들었던 아이 뱄을 때 이야기

 │→ 당신한테 힘들었던 애뱄을 적 이야기

 └ …

 

 옆사람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속살처럼, 속살을 담는 그릇도 살포시 매만져 주면 더없이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부터도 그릇을 잘 여미지 못하고 있는데, 속살처럼 얼굴을 추스르고 얼굴처럼 속살을 매만지기란 쉽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하루하루 애쓰고 이틀사흘 힘쓰면, 조금씩 나아지면서 새로워질 수 있으리라 믿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6.28 19:13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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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우리말 #우리 말 #-의 #당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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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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