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의 행진 "너네도 고향 떠나니?"

다 떠나고 8가구만 남은 고향마을, 마을버스도 텅빈 채 운행

등록 2008.07.03 16:55수정 2008.07.0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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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개미들의 행진 너네도 고향떠나는 거니? 한무리의 개미떼가 줄을 맞추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개미들의 행진 너네도 고향떠나는 거니? 한무리의 개미떼가 줄을 맞추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 김동이


두 달여 만에 찾은 고향 마을에서 줄을 길게 늘어선 채 어디론가로 옮겨가고 있는 한 무리의 개미떼가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에 목적지가 있는 듯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 속에서 이제 8가구밖에 남지 않은 고향마을을 떠올렸다.


170여 세대의 고향마을, 이제는 8가구만 남아

내 고향마을인 '충남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는 인근의 4개 마을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170여 세대(2005년 5월 기준)가 오순도순 모여 살던 씨족마을이었다. 예전에는 여양 진씨 집성촌이었으나 점점 세월이 지나면서 경주 김씨가 집성촌을 이루었다. 지금은 진씨와 김씨가 비슷한 비율이 됐고, 이외에도 이씨와 박씨 등의 집안도 마을로 들어와 한 마을을 이루고 살아왔다.

얼마 안 있으면 나머지 8가구도 곧 고향을 떠나게 될 것이다. 행복도시건설청이 통보한 시한이 10월 말이기 때문에 올해 안에는 고향마을이 인적 하나 없이 텅비게 될 것이다.

조상묘 이장을 위해 지난 1일 이사한 지 두 달여 만에 고향마을을 찾았다. 인기척 없는 마을이 삭막하기만 했다.

a 시끌벅적했던 그 옛날이 그립다 한 마을 아주머니가 정자에서 낮잠을 청하고 있다. 예전에는 이곳 정자가 마을사람들의 땀을 식혀주던 정겨운 곳이었다.

시끌벅적했던 그 옛날이 그립다 한 마을 아주머니가 정자에서 낮잠을 청하고 있다. 예전에는 이곳 정자가 마을사람들의 땀을 식혀주던 정겨운 곳이었다. ⓒ 김동이


농업이 주업이었던 마을 사람들이 논과 들에서 농사일을 마치고 마을로 들어오면 땀을 식히기 위해 모여들던 마을의 정자를 가 보았다. 시끌벅적했던 과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아직까지 고향마을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아주머니 한 분이 시원한 정자를 안방 삼아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혼자 낮잠을 주무시는 아주머니를 보고 있노라니 그 옛날 마을 어른들이 다같이 정자에 모여 농사일로 인한 피로를 달래기 위해 막걸리를 나누며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추억이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빈차로 운행하는 마지막 마을버스, 7월 15일까지만 운행


a 마지막 마을버스 빈 버스로 운행하고 있는 마을버스. 6월말까지 운행할 예정이었으나 15일 더 연장해 운행할 예정이란다.

마지막 마을버스 빈 버스로 운행하고 있는 마을버스. 6월말까지 운행할 예정이었으나 15일 더 연장해 운행할 예정이란다. ⓒ 김동이


텅빈 고향마을을 둘러본 뒤 농로를 따라 이동하는데 저 멀리서 마을버스가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어? 아직도 버스가 댕기네?"
"글쎄? 6월말까지만 댕긴다고 했는디?"
"그래요? 마을에 사람도 없는데. 그리고 남은 사람들 다 차도 있는 것 같고."
"아! 맞다. 15일 더 연장한다고 그랬었다."
"버스 탈 사람도 없는데 뭐하러 연장한데유? 기름값도 비싼디."
"그러게 말여."

마을버스를 보고 내가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아버지가 거들었다. 나로서는 보는 게 마지막이 될지 모를 그날의 마을버스는 아무도 타지 않은 채 그렇게 빈 소리만 요란하게 내며 떠나가고 있었다.

a 숨은 나비 찾기 숨은 나비를 찾아보세요. 고향의 들녘에 핀 들꽃들 마저 그리울 것 같다.

숨은 나비 찾기 숨은 나비를 찾아보세요. 고향의 들녘에 핀 들꽃들 마저 그리울 것 같다. ⓒ 김동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개미들의 행진을 바라보며 고향마을을 떠난 마을사람들을 떠올렸다. 이날 난 언제 사라질 지 모를 마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민속지에 나타난 「반곡리」
지난 2006년 2월 국립민속박물관이 펴낸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예정지역 인류ㆍ민속분야 문화유산 지표조사 보고서 <반곡리 민속지>에는 '반곡리'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반곡리는 골짜기가 열려있는 북쪽을 제외하면 괴화산에서 이어진 산줄기가 마을을 삼면으로 둘러싸고 있어 지형지세상 골짜기 안쪽으로 괴상(塊狀:덩어리모양)의 집촌 형태를 띠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골짜기 안쪽으로 가옥군이 고도로 밀집하면서 약 30~60호 내외의 일반적인 마을의 촌락의 규모를 훨씬 상회하는 100호 이상의 대촌(大村)을 형성하였다. 1960년대 당시 마을에서 작성한 소개자료에 의하면 반곡리는 약 172호가 거주하는 대촌으로 금남면에서는 면소재지를 제외하고 가장 호수규모가 큰 마을 중의 하나였다."
#반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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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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