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하게 굳은 박근혜 전 대표의 얼굴은 풀릴 줄 몰랐다.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을 듣는 동안에 말이다.
3일 오후 새 지도부를 뽑는 한나라당 전당대회 현장. 이 대통령은 직접 대회장을 찾아 축사를 했다. 박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 대의원들과 함께 2층 방청석에서 연설을 들었다.
이 대통령이 말을 하는 약 15분 동안 박 전 대표가 박수를 친 건 단 다섯 번. 사회자는 당원과 대의원들에게 "이명박을 연호하자"며 분위기를 북돋웠지만, 박 전 대표는 입술조차 떼지 않았다.
이명박 "박근혜 위시한 당 고문들에 감사" - 박근혜 "......."
특히 이 대통령은 연설 도중 당에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박근혜 전 대표를 위시한 전 당직자와, 또한 당 고문 선배 여러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박 전 대표의 이름을 언급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이 말을 듣고도 박수만 칠 뿐 무표정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과 총선 과정에서 서운한 일이 있었더라도 모두 잊고 새 출발하자"며 박 전 대표에게 사실상 화해의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대통령의 연설 중간 즈음부터는 '친박' 정갑윤 의원이 옆자리로 찾아오는 바람에 그의 말을 들어주기에 바빴다.
이 대통령이 자리를 뜰 때도 박 전 대표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박수만 쳤다. 사회자는 십여차례나 "우리의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자" "힘을 내시라고 박수를 쳐주자"며 연호와 기립박수를 유도했지만, 박 전 대표를 비롯해 그가 앉은 대구지역 대의원들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친이' 박희태에는 미소만, '측근' 허태열에는 일어서 인사
대표최고위원 경선 후보자들의 연설을 듣는 박 전 대표의 태도도 확연히 갈렸다. 특히 친이의 대표격인 박희태 후보와 자신의 측근인 허태열 후보의 연설 때 그랬다.
박 후보는 연설 도중 "박근혜 전 대표, 여기에 와 계시죠?"라며 박 전 대표를 찾았다. 박 전 대표는 지긋이 미소만 지었다. 대신 주변 몇몇 대의원들이 "네"라며 손을 들었다.
반면 허 후보에게는 직접 일어나 손까지 흔들었다. 허 후보는 자신의 연설 차례가 되자, 박 전 대표의 이름을 특별히 여러 차례 거론했다.
허 후보가 "오늘 박 전 대표 오셨느냐"고 말하자, 박 전 대표는 환하게 웃으며 허 후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어 "박 전 대표에게 격려의 박수를 부탁한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자 박 전 대표는 직접 일어나 또다시 손을 흔들며 대의원들에게 허리 굽혀 인사했다.
자신의 마음이 어떤 후보에게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박근혜 "정권교체 보람 느끼도록 새 지도부가 잘 해야"
이날 박 전 대표가 대회장에 앉아있는 동안 그의 주변에는 악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국회의원을 비롯해 시·도의원, 도지사, 당원과 대의원 등 수백명이 그를 찾아와 인사했다. 박 전 대표와 악수를 하기 위해 양 옆으로 줄까지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그의 옆자리에는 지지자들이 주고 간 물과 음료수·떡·과자·아이스크림이 쌓여갔다.
박 전 대표는 이날 가장 먼저 투표를 한 뒤 개표결과를 보지 않고 대회장을 떠났다. 그는 선출될 새 지도부에 "너무 국민이 어렵다. 국민이 좀 편안해질 수 있고 정권교체의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새 지도부가 협력해서 잘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기고 차에 올랐다.
2008.07.03 17:04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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