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학원가
성낙선
그런데 고맙다는 말대신 대뜸…,
"아빠, 학원비 내야 하는데요."
"얼만데?"
"25만 원."
"지난번에 20만 원이었잖아."
"아빠는 참, 그게 언젠데 그래. 원어민 강의가 더 늘어서 그렇단 말야."
요즘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 그런 말씀이냐는 투다. 요즘 너그들이 잘쓰는 말로 '이런 된장'이다. 25만 원이라는 소리가 어찌 저리도 쉽게 나올까.
내게는 25만 원이 마치 25kg짜리 역기가 내 가슴을 짓누른 듯 했건만 딸애는 아무 감정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그렇지, 무슨 영어 한과목에 25만 원씩이나 하는데?"라며 버럭 목청을 높였다. 순간 딸애가 도끼눈을 흘기기에 아차 싶었다.
"알았어, 오늘 퇴근하면서 카드 밀고 올게."
"창피하게 뭐 학원까지 오시고 그래요. 그냥 입금하든지 현금 주시면 되잖아."
'이놈의 기집애야, 그래 너 주고 싶다. 아니 너 돈 주는 건 위험하니 무통장으로 입금해도 된다. 그런데 왜 내가 일부러 학원 가는줄 아냐. 말하기 거시기 하지만 3개월 할부하려고 한다, 왜. 매달 몇천 원 할부 수수료 내는 게 낫지 한꺼번에 25만 원이 어느 동네 도그 이름인 줄 아냐.' 나 원참 말은 못 하고 속으로만 씩씩거리고 있는데 이놈의 차까지 밥 달라고 불이 껌벅껌벅거린다.
"1500원 받은 지 한참 됐거든요""주유 끝났습니다. 4만8000원입니다."
"네? 4만5000원이면 됐는데…."
"손님 뉴스도 안 보세요. 오늘부터 리터당 50원 올랐잖아요."
또한번 속으로 '이런 된장'을 궁시렁 궁시렁거렸다. 뉴스도 안 본 한심한 놈됐다. 도대체 뭐가 이리도 많이 오르는가. 내려가는 건 배고파 홀쭉해진 내 배 위에 걸친 바지뿐 그 외는 다 오른 것 같다. 애를 내려다 놓고 나니 그 생각에 갑자기 배가 고프다. 학교 앞 분식가게가 보인다.
"1500원입니다."
"천원 아닌가요?"
잘못 들었나 싶다가도 이것도 뉴스에 나왔던가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번 더 물어 봤다.
"1500원 받은 지 한참 됐거든요. 그동안 한번도 안 사 드셨어요?"
이런 '왕된장'. 곳곳이 된장밭이네. 김밥 한 줄에 천원 하던 걸 1500원 받다니…. 돈도 그렇지만 50% 인상 이게 말이 되나? 진짜 김밥 옆구리 터진다. 남자가 쫀쫀하게 뭘 그만 일에 열받고 신경 쓰냐고 타박할 수 있다. 더 벌면 되잖으냐고 할 수도 있다.
애들 교육비에 매년 인상되는 각종 공과금, 삼베바지 방귀새듯 슬그머니 다 올라 버린 음식값. 예전에는 가끔 빈지갑이라도 막소주 한잔에 내일을 기약하며 직장 다니고, 애들 키워 나름 재미가 있었는데 어느덧 아, 옛날이 돼버렸다. 이제는 돈 달라는 자식이 '웬수'처럼 보여 내가 부모 자격 없는 건 아닌지 혼란스럽다.
돈 달라는 자식이 '웬수'처럼 보여...나 부모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