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신은 미국을 돌봐주고 있는 것일까

[서평]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

등록 2008.07.05 15:18수정 2008.07.0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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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모든 권력은 신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대통령은 취임식 전 교회예배에 참석하고 취임식장에서는 왼손을 성경에 얹고 대통령 선서를 한다. ‘신이여 도와주서소'(So help me God)라는 간구가 선서에 붙는다. 대국민 연설에서도 신은 빠지지 않는다. 지난 2005년 부시 대통령은 취임식 대국민 연설을 "신이시여 미국을 돌봐주소서"라고 끝맺었다.

1620년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영국 청교도들의 후손답게 미국인들은 지금도 지도자의 신앙을 확인하고 있다. 현대 미국인들의 53%가 창조론을 믿고, 44%가 50년 안에 예수가 다시 세상에 내려온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랑의 종교를 믿는 미국이 무신론자들의 비율이 높은 나라들보다 '사랑'스럽지는 않다. 미국에서는 매일 총기사고로만 약 81명이 목숨을 잃는다. 자살률, 낙태, 10대 임신 등의 사회적 문제도 골칫거리다. 우리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영화 <식코>의 무대도 미국이다. 미국 내에서도 보수 기독교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공화당 지지 주에서 강력 범죄가 더 많이 일어난다. 눈을 밖으로 돌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은 남의 나라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있고, 남의 나라에서는 반미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녕 신은 미국을 돌봐주고 있는 것일까. 신 때문에 일어나는 증오와 전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샘 해리스 지음, 동녁사이언스 펴냄)는 잠 들어 있는 사람들을 깨우는 알람이다. 증거가 없는 주장을 받들면서 합리적인 비판을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보내는 이성적인 편지인 것이다.

'존중'을 통해 종교 간의 분쟁과 사회적 갈등을 뿌리뽑자

이미 <종교적 종말>에서 종교적 도그마를 비판했던 저자는 리처드 도킨스, 다니엘 데닛,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함께 종교인들로부터 비난을 많이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다시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화살을 날렸다. 아직도 비이성적인 종교의 힘이 세상을 비정상적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상황을 "윤리적, 지적 비상사태"라고 선언했다.

a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 ⓒ 동녘사이언스

미국 10대의 임질 발병률은 무신론자들이 많은 네덜란드나 프랑스의 10대보다 70배나 높다. 10대 임신과 미혼모 그리고 낙태의 경우는 4-5배나 더 많다. 하지만 매년 2억 달러나 쏟아붓는 미국의 성교육 프로그램의 30%는 절제만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질병통제선터에서 일하는 레지날드 핑거가 에이즈 백신이 혼전 섹스의 위험을 줄여 혼전 섹스를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로 백신 개발에 반대한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저자는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도그마에 빠진 기독교인들이 걱정하는 건 섹스이지 10대의 임신과 성병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당신은 우주의 창조주가 사람들이 벌거벗고 하는 행동에 대해 화를 낼 것을 걱정한다."

윤리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미국의 외교정책도 '신의 말씀'을 따르고 있다. 그 중 하나를 골라본다면 '생육하고 번성하야 땅에 충만하라'(창세기 1:28)가 될 것 같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의 씨를 말리고 생육하고 번성한 미국인들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충만하고 있다. 이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겠다며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물론 사람뿐만이 아니다. 상품이나 자본이 더 빠르게 땅에 충만하고 있다. 그 와중에 각종 범죄가 발생하지만, 모두 신의 뜻으로 돌리면 만사형통이다.


기독교도 무시무시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여러 종교 간의 충돌이다. 각각의 교리를 가지고 있는 배타적인 종교의 충돌이 얼마나 큰 파국을 불러오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십자군전쟁이 그랬고 9·11 공격이 그랬다. 종교의 맹신은 불관용을 낳는다. 사랑과 자비로 무장한 종교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다.

지금도 팔레스타인들은 이스라엘 헬기의 폭격에 쓰러져가고 이스라엘인들은 팔레스타인의 자살폭탄 공격으로 목숨을 잃지 않나. 미국이 자신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 나라를 '악의 축'이라고 매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교인들을 보면서 종교적 마찰에 대한 공포를 경험했다. 저자는 종교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인간들끼리의 충돌을 부추기고 있다고 개탄한다.

"종교는 영원한 보상과 처벌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사람들을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구분하는 유일한 사고 체계다. 신앙을 기반으로 다른 인간을 두려워하면서 악마로 취급하도록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이다."

축복과 행복을 느끼기 위한 종교가 비판과 두려움의 대상이 된 상황. 저자는 "불합리한 신앙이 없어도 우리의 감정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존중'을 통해 종교 간의 분쟁과 사회적 갈등을 뿌리뽑고 열린 마음과 합리적인 사고로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역지사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것.

비록 제목이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지만 종교인구 중 절반 정도가 기독교인인 우리도 눈여겨 봐야 할 책이다. 촛불을 든 시민들을 '사탄의 무리'라고 생각하는 목사님과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 바 있는 교회 장로 이명박 대통령은 꼭 읽어보시길.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blog.ohmynews.com/gkfnzl)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blog.ohmynews.com/gkfnzl)에도 실었습니다.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

샘 해리스 지음, 박상준 옮김,
동녘사이언스, 2008


#기독교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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