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다 '세인트 조셉 호텔'
고두환
바보같은 젊은이는 그래봤자 촌인 동네를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우린 그림 같은 풍경에 아기자기한 모습을 가진 세인트 조셉 호텔에서 묵기로 결정했다.
그나저나 점심 때가 되자 창성 형님의 체력이 급격하게 고갈되고 있었다. 어제 산행의 피로가 다시금 밀려오고 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음식을 호텔로 시켜먹기에 이르렀다. 이번엔 현지 닭고기의 향연. 우리나라의 양념통닭 같은 것과 훈제통닭 같은 것이 차례로 선보이고 찰진 밥과 알찬 감자가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에러라면 음식 냄새를 맡은 고양이가 수시로 우리의 몸을 타고 오르려고 했던 것! 일행 중 고양이에 관심있는 이는 없었다.
배불리 식사를 하고 우리는 사가다로 떠날 채비를 시작했다. 물에 빠진채로 동굴 저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전정보를 입수한 우리는 물에 젖는 옷과 카메라를 보호하기 위한 방수팩, 그리고 샌들 및 아쿠야슈즈를 장착한 채 당당하게 호텔을 나섰다.
우리는 현지 가이드 두 명(필리핀 법적으로 동굴에 들어갈 때 3명에 1명씩 가이드를 붙여야 한다. 안 붙이면 절대 동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왜? 위험해서)을 구하고 밴을 탄 채 동굴입구로 이동했다.
도착한 동굴 입구. 입구 앞 기념품 가게엔 한글로 '샤워가능'이란 글씨가 붙어있었다. 동굴탐험을 시작하면 박쥐똥에 범벅, 물에 범벅되니 나와서 샤워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리. 갑자기 장미 얼굴에 근심이 한가득이다.
우리 일행은 용감하게 사가다 동굴로 첫발을 내딛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무지막지하게 웅장한 동굴, 갈수록 들리는 박쥐의 "찍찍" 소리. 난 용감하게도 짦은 영어를 들이밀면서 가이드와 대화를 시도했고, 놀랍게도 짧은 한국말로 응수하는 그의 재치에 흠뻑 빠져서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근데 조금 내려가니 퀘퀘한 냄새와 놀랍도록 미끄러운 돌 길이 펼쳐지고 있었다. 문제는 급경사 내리막 길이며, 수많은 돌로 이루어져 걷길 포기하라는 듯한 길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
뒤에 따라오는 일행들은 벌써부터 난리가 아니었다. 평지에선 누구보다도 나르듯이 일행의 선두에서 걸어나가는 장미, 역시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에 약한 모습을 보였고, 창성 형님은 이미 장비를 현지 가이드에게 모두 줘버린 뒤였다. 역시 큰 형님과 훈 형은 그 둘을 챙기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박쥐똥 범벅인 바위를 손으로 문지르며 내려가는 길. 이미 미끄러운 돌에 한 두 번씩 춤을 추고 땀과 물기가 뒤범벅되어 몸에서 연기(열기로 인한 김)를 뿜어내고 있었다. 1시간쯤 내려왔을까. 갑자기 가이드는 신발을 벗으라고 한다. 더불어 양말도.
"여기서부턴 맨발로 가야되요. 그래야 갈 수 있어요!"
그렇다. 미끄러워서 맨발로 가야만 했다. 그나저나 사가다 동굴, 사가다 동굴 하는 이유가 있었다. 매끈한 돌들이 빚어내는 환상적인 조각들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초콜릭 케이크, 각종 동물 모양, 사람 형태의 동상 바위까지…. 램프의 노란 불빛과 묘하게 맞는 이 분위기.
이 어두운 곳에서 모두 사진찍을 능력이 안됐지만, 창성 형님은 어느샌가 기운을 차리고 특유의 수치를 계산하여 카메라의 동굴을 담기 시작했다. 형님은 사진을 찍을 포인트에 초인적인 기력을 발휘하는 게 틀림 없었다. 아마도 사진기가 망가지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쓰러질지도 모르지만.
잠깐 쉬고 다시 출발한 우리들. 이제 밧줄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 곳이 나오고 뛰어 내려하는 곳이 나오고 물에 들어가야 하는 곳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 팀의 사정을 고려한 가이드는 쉬운 코스로 우리를 인도했고, 다행히 물이 목까지 잠기는 코스는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미끄럼과 암벽 등반 비슷한 체험을 한 뒤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