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엔 아주 고드름똥 싸겠구나"

일흔 넘은 노모의 한숨... "가스값까지? 뭐 이런 세상이 다 있냐?"

등록 2008.07.16 15:09수정 2008.07.16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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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용 가스 요금이 25%나 인상된다고 합니다
가정용 가스 요금이 25%나 인상된다고 합니다김혜원
가정용 가스 요금이 25%나 인상된다고 합니다 ⓒ 김혜원

 

"가스값도 오른다고? 밀가루부터 약값까지 안 오른 게 없고 기름값 올라서 차도 타고 다니지 말라더니 이제는 가스값까지 올린데? 뭐 이런 세상이 다 있냐?"

"그러게 말이에요. 남편월급· 애들 성적 빼곤 다 오른다더니 진짜 그래요."

"어려운 사람한테만 점점 더 힘든 세상이 되는 거야. 가스요금 오르면 보일러 켜지 말아야지, 뭐. 가스요금에 벌벌 떠는 우리같은 노인네들은 올 겨울 아주 고드름똥 싸게 생겼다."

 

일제 치하였던 1930년대에 태어나신 엄마는 그 시대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렇듯 쌀 한 톨, 물 한 방울이라도 결코 함부로 써버리지 않는 절약정신이 몸에 배이신 분입니다.

 

올해 들어 밀가루 값부터 목욕 요금까지 오르지 않는 것이 없자 엄마는 이를 일찌감치 감지하고 누구보다도 먼저 긴축모드로 생활패턴을 바꾸었습니다. 힘들게 살아왔던 지난 70년 인생 경험을 통해 어려운 때를 견디는 요령을 나름대로 터득하신 때문이지요. 

 

남편 월급· 애들 성적 빼곤 다 오른다더니 ...

 

"밭에서 나는 것만 먹어도 다 못 먹는다. 물가 오르는데 비싼 반찬거리 사러 다니지 말고 밭에서 나는 것만 먹어. 오이·토마토·가지·감자·파·마늘 다 있는데 뭐하러 시장 가서 돈써?"

"여름엔 원래 더운 거야. 전기요금 비싼데 몸에 좋지 않은 에어컨 바람 틀지 말고 정 못 참겠으면 찬 물 한 바가지 뒤집어쓰면 참을 만 해. 이럴 때일수록 더 아껴야지."

"요즘엔 박스랑 종이 주우러 다니는 사람들도 더 많아졌어. 전에는 노인네들이나 쓰레기 주우러 다녔는데 요즘엔 젊은 사람들이 다 주워가는 바람에 노인네들은 그나마도 품값도 못 건진다고 하더라. 먹고 살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거지. 그나저나 큰일이다. 올해는 정말 얼어죽는 사람도 나오겠어. 굶어죽고 얼어죽고… 이게 난리지. 뭐가 난리냐?"

 

더위는 찬물 한 바가지가 해결해주고 높은 물가는 손수 기르는 채소밭이 해결해 준다는 엄마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한겨울의 추위지요. 노인들은 대부분 추위에 약합니다. 기력이 쇠한 탓으로 조금만 기온이 떨어져도 쉽게 감기에 걸리고 감기가 악화되어 다른 합병증으로 고생을 하는 때문이지요.

 

엄마와 아버지 두 분만 사시던 때는 한겨울이라도 가스요금이 10만원을 넘은 적이 없었습니다. 방3개와 거실, 부엌이 있는 30평대의 집이지만 오직 당신 주무시는 방 하나만, 그것도 정 추우실 때만 불을 넣으시고 나머지는 거의 잠궈놓고 사시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아파트에 사는 자식들이 반팔과 반바지 차림으로 겨울을 날 때, 방 안에서 내복은 물론 솜버선과 오리털 점퍼까지 입고 지내셨던 엄마와 아버지십니다.

 

 가스 요금인 인상되면 저 많은 가스 사용계 중 멈추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가스 요금인 인상되면 저 많은 가스 사용계 중 멈추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김혜원
가스 요금인 인상되면 저 많은 가스 사용계 중 멈추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 김혜원

 

감기 때문에 사흘이 멀다고 병원신세를 지면서도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만 들으면 돈이 타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보일러 틀기를 무서워 하시는 엄마에게 가스요금 인상은 소식은 원망스러운 뉴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스공사는 지난 1월 도매가격을 2.8% 내린 이후 지금까지 동결했지만, 도시가스의 원료인 액화천연가스(LNG)의 단가가 50%나 올라 요금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산업용 전기요금 위주로 올리고 가정용은 조금 올리는 방안을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어쨌든 가정용 가스 25% 인상은 기정사실화되는 느낌입니다.

 

"잘 살게 해준다고 뽑았더니... 이러다 이승만 대통령 짝 난다"

 

"엄마 아무리 올라도 불은 때고 사셔야 해요. 지금 감기에 걸리시면 쉽게 낫지도 않고 고생하신단 말이에요. 노인네들은 고뿔에도 돌아가신다는 말이 있잖아요."

"못 사는 백성들만 쥐어짜는 세상이야. 시장통에 나가봐라. 어디 오르지 않은 게 있나. 다들 살기 어렵다고 난리들인데 여기다가 전기값·가스값까지 올리면 서민들은 그냥 죽으라는 거지. 그러니까 백성들이 저렇게 나가서 촛불을 들고 그러는 거 아니냐. 예로부터 백성들이 못 먹고 헐벗으면 민란이 났다. 저게 민란이 아니고 뭐야. 이러다 이승만 대통령 짝 나는 거 아닌가 몰라…."

 

 전기 요금인상으로 인해 전기공급이 끊기는 가정도 있을 것입니다.
전기 요금인상으로 인해 전기공급이 끊기는 가정도 있을 것입니다.김혜원
전기 요금인상으로 인해 전기공급이 끊기는 가정도 있을 것입니다. ⓒ 김혜원

 

70 평생 손톱여물을 썰어가며 아끼고 절약하신 엄마도 요즘처럼 사람들 인심이 흉흉하긴 처음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너나없이 못 먹고 못 살았으니 서로에게 기대고 위로하며 작은 콩 한 쪽이라도 나누어 먹는 인정이 있었지만 심화되는 빈부의 격차 때문에 서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빈곤감은 더 커졌다는 것입니다. 

 

"잘 살게 해준다고 해서 뽑았는데 이 정부가 들어와서 하나도 오르지 않는 게 없으니 누가 대통령을 믿고 따르겠냔 말이야. 시장에서 장사하면서 어렵게 살았다던데 전기값·가스값 올리면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부터 죽어나간다는 걸 왜 모를까 싶다. 가스값 정말 올린다면 나도 촛불을 들고 나갈란다. 너도 잘 봐라. 올 겨울에 가난한 노인네들 추위에 얼어죽었다는 뉴스가 틀림없이 나올 테니."

 

'1% 프렌들리'라고 하는 잘 사는 사람들이 이런 서민들의 절박한 두려움을 알기나 할까요?

 

단 돈 한 푼이 아쉬운 서민들은 얼어 죽지 않을 권리를 위해서 가스요금 인상반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싶은 심정입니다.

2008.07.16 15:09ⓒ 2008 OhmyNews
#공공요금인상 #가스요금인상 #서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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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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