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올려놓으라고 찍어줬더니 그래 물가만 올려놔?"
"글쎄 이 정부가 사람을 살라고 하는 건지 죽으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어."
'잘한 것은 내 탓, 못한 것은 정부 탓'이란 생각의 근저를 그대로 반영한 대화이긴 하지만, 시장바구니를 들여다보며 서로 주고받는 대한민국 아주머니들의 이런 대화를 그저 지나치기에는 물가가 너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장바구니 물가를 잡지 못하면 경제성장은 뜬구름 잡기다.
시장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4~5개월 전만 해도 보통 한 번 시장을 보면 7만원 이쪽저쪽에서 되었는데, 지금은 12만원은 가져야 예전 수준의 장을 볼 수 있어요"라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분명히 물가가 서민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물가상승 공공요금이 주도하나?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 서민들은 물가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산다. 그래도 연초에 정부가 공공요금은 건드리지 않을 것처럼, 혹 올리더라도 서민경제에 부담이 안 되도록 조금만 인상할 것처럼 호언장담을 하는 통에 서민들은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15일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도시가스요금은 3차례 정도로 나눠서 인상하는 방안을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기시 되었던 공공요금 인상의 도화선에 점화를 한 것이다. 올해 도시가스 도매요금을 산업용은 50%, 가정용은 30% 올리되 시기는 3차례로 나눠 단계적으로 인상한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한 번에 50%를 올리면 부담이 크니까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산업용 요금은 원가인상요인을 모두 반영해 50% 올리지만 경제와 서민의 장바구니를 생각해 가정용 요금은 인상요인을 모두 반영하지 않고 30% 미만만 올릴 것이라고 했다. 이런 정부의 발표가 적용되는 8월과 9월, 11월에는 각각 산업용은 10~20%, 가정용은 9%대로 인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장관은 또한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전기요금도 역시 산업용 전기요금 위주로 올리고 가정용은 조금 올리는 방안을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가스와 전기요금의 인상은 그간 정부 눈치만 보던 지하철, 시내버스, 택시 등 시민의 발이라 할 수 있는 여타 공공요금의 도미노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이러다가 인플레이션의 경제로 가는 게 아닌가 하여 국민들은 불안해한다.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달 기대 인플레이션이 전년 동월 대비 4%를 넘어선 것으로 밝혀졌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 추이도 심상치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3.9%였는데 4월 4.1%, 5월 4.9%, 지난 6월에는 5.5%에 이르렀다. 불안 심리가 확산되지 않는다면 되레 이상할 지경이다. 경제주체들이 예상하는 미래의 물가 상승률(기대 인플레이션)은 작년 3분기까지 3%를 밑돌았고 올 1분기만 해도 3.3%에 머물렀으나 지난달에는 4%를 넘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 앞으로는 더 올라갈 게 뻔하다.
이명박 정부의 호헌장담은 어디로?
경제성장 7%, 물가안정 3%” 이명박 정부는 당찬 계획을 내세우며 그간 노무현 정부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경제발전 성적표를 맹공격하며 출범했다. 그러더니 지금 와서는 경제성장률은 4%대에도 이르지 못할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경제발전을 기대했던 국민들은 정권이 바뀌면서 사뭇 새 정부에 거는 기대치 또한 높았다. 한 대기업의 CEO로서 성공한 그의 모델은 서울시장을 거치면서 유감없이 발휘되었고(불도저식 경영철학, 실용주의 정치철학), 국민들 또한 그의 능력을 의심치 않는 눈치였다.
그래서 이름 하여 이명박 대통령을 일컬어 '경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100일이 지나면서 '무능한 경제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그의 불도저식 경영철학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계속 국민을 무시하고 달려가는 이명박 정부의 행태는 광우병이 의심된다고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 아우성치는 국민들의 반대를 무슨 불순세력이 개입된 것인 양 바라보았다.
국민을 무시한 처사는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대통령도 소통이 좀 부족했다고 말하면서도 그 해결방법은 계속 국민과 담을 쌓는 것으로 이어나가고 있다. 지금 국민은 장바구니 무게에 지질컹이가 될 지경이다. 국민을 위한다면 미봉책이 아닌 진짜 대책이 나와야 한다.
김동수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물가 및 민생안정회의에서 "유가가 안정돼도 물가는 당분간 더 오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더 오를 수 있는 물가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국민이 대통령을 뽑은 이유는 경제를 살리라는 것이다. 물가를 잡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취임 초기 의기양양하던 정부는 어디 있는가?
만약 정부가 '유가급등과 원자재 급등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미국의 경제를 비롯하여 국제 경제가 다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경제도 어쩔 수 없고, 치솟는 물가 또한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한다면, 국민은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이런 국제적인 경제방향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7% 경제성장, 3% 물가안정'이란 공약을 내세웠다면 그야말로 공약(空約)을 위한 공약(公約)이었던가.
정부는 모든 것을 국민에게 떠넘기지 말라
물가상승은 국제유가와 국제 원자제값 상승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유가가 150 달러를 넘어설 경우 승용차 요일제와 목욕탕 격주 휴무 등 민간부문에 대한 강제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한다. 당초 유가가 170 달러를 넘어설 경우 시행키로 한 2단계 비상조치를 앞당겨 실시한다는 것이다.
2단계 비상조치는 승용차 요일제, 목욕탕 격주 휴무, 골프장 야간 영업시간 단축, 외부조명 등 야간 시간대 전기사용 제한 등의 조치인데 강제조치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위기관리대책회의'를 구성하고 거시경제, 에너지 수급, 물가동향, 민생안정, 부동산 등의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정부는 1단계에서 공공부문은 승용차 홀짝제를 도입하고 공공시설물의 경관조명 사용을 금지하는 등 강제조치를 내놓았지만 민간부문은 승용차 요일제, 옥외간판 조명 사용 자제 등은 권장사항으로 남겨놨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민간부문에도 강제 규정을 통하여 에너지 사용을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청와대는 청와대 관용차량들을 하이브리드 카로 바꿨다. 물론 휘발유나 경유를 덜 사용할 것은 뻔하다. 그런데 예전에 사용하던 차량들을 하이브리드 카로 바꾸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제대로 산정했는지 모를 일이다. 연료는 절감할지 모르지만 재정은 더 들여야 한다면 그리 좋은 정책은 아니다.
공공부문에서의 자동차 홀짝제가 이미 겉돌고 있다. 먼 곳에서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이 여전히 자신의 차를 타고 과천 정부청사에서 좀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출근하는 것이 방송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무 문제없다고 말하는 공무원도 있다. 그런데 국민에게 똑 같은 방법으로 강요함으로 실효를 거둘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너무 순진한 게 아닐까.
국민만을 믿고 바라보는 정책으로는 고유가시대의 산을 넘을 수 없다. 하반기에는 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물가 불안 심리를 차단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먼저 정부가 국민에게 신뢰를 주어야 한다. 광우병 쇠고기 사태나 대운하 논란에서 보듯이 겉으로 말하는 것과 속으로 추진하는 일이 달라서야 국민은 정부를 믿을 수 없다.
정부는 실효성 있는 물가안정대책을 내어놓아야
모기지 부실이 금융기관의 손실로 이어지고 양대 국책 모기지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미 정부의 긴급구제책까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신뢰가 무너진 미국의 시장경제는 좀처럼 벗어날 기미가 없다. 고유가와 물가상승 또한 그 브레이크가 없다. 소비의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국에서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도 둔화로 돌아서고 있다. 15일 뉴욕 증시는 2년 만에 최악으로 1만1000선이 붕괴됐다
미국의 예는 곧 전 세계의 예이다. 국제경제는 더 좋아질 기미가 없다. 정부는 국제경제의 덕을 보겠다는 생각은 빨리 접어야 한다. 국제경제는 저성장 고물가의 스테그플레이션 수렁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다. 우리 경제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경제의 재채기를 이겨낼 자생력이 없는 가운데 온몸으로 몸살을 알아야 할 판이다.
정부는 새로운 경제팀이 필요하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팀을 수장부터 교체하고 심기일전 새로운 정책으로 맞서 국제경제 추락에 대비해야 한다. 강만수 장관을 교체하면 우리 경제에 무슨 큰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는 대통령의 생각은 빨리 바뀌어야 한다. 인적 쇄신 없이 물적 쇄신 또한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란 말이 있다. 누더기식의 처방으로 가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또한 거시경제를 다잡아야 한다. 환율과 금리 같은 거시정책변수들을 동원해야 한다. 상거래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고유가로 국민의 허리가 휘는데도 정유사들은 사상최대의 폭리를 취하는 현상은 그 일례에 불과하다. 담합행위, 불공정한 거래행위를 못하게 막아야 한다. 유통구조의 현대화 또한 시급한 문제다. 대형유통업체들의 입점 영세상인들 우려먹기식 행태도 바로잡아야 한다.
공공 부문부터 솔선수범 해야 한다. 공무원들의 인금인상의 억제는 물론 국민의 아픔을 함께 나눈다는 취지의 대책들이 잇달아 나와야 한다. 자신은 지지 않는 짐을 국민만 지라 하면 국민적 반항만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공공요금의 인상으로 시작된 물가인상이 우리의 순진한 국민을 또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게 하지 말란 법이 없다.
2008.07.16 15:17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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