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탑승구
한나영
"아줌마, 공항에 있는 도우미들은 뭘 먹고 살라고 승객인 아줌마가 설쳐대고 난리야. 왜 죽어라고 공항을 뛰어다녀? 아줌마가 이름 모르는 그 인간 도와줄 때 아줌마가 잘 아는 동생은 엄청 속이 탔다고. 아무 연락이 없어서…. 그런데 비행기까지 놓칠 뻔 했다고?"
나를 '아줌마'라고 칭하면서 화난 목소리로 이메일을 보낸 사람은 하나 뿐인 친정 여동생. 가시 돋친 동생의 발언은 계속 이어진다.
"아줌마, 비행기 안에는 승무원들이 있는데 왜 아줌마가 나서서 그래. 늘 피곤하다면서 잠이나 잘 일이지. 그렇게 장시간 힘을 빼면서 아프다는 말이나 말고."한국을 방문한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항과 기내에서 착한(?) 일을 좀 했다. 그 때문에 동생 속을 좀 태웠다. 그러자 다혈질인 동생은 '아줌마'로 시작되는 격정적인(?) 이메일을 보내면서 자신의 분노를 드러냈다. 도대체 공항과 비행기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비행기표가 뭔지 모르는 연변 아주머니 지난 11일 인천 국제공항. 예정 시간보다 일찍 공항에 도착한 나는 출국 수속을 마친 뒤 한가하게 공항 안을 거닐고 있었다. 공항에는 불경기와 상관 없이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선한 인상의 50대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와 A4 크기의 종이를 내 보이며 북한 말투로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겁네까?" "… 아니오, 그건 비행기 표가 아닌데요. 아주머니가 타고 가실 비행기 일정을 적은 종이예요. 창구에 가서 여권을 보이시고 비행기 표를 받아야 해요.""아, 이게 비행기 표가 아닙네까?"출국수속을 마치고 탑승권을 받아야 하는 기본조차 모른 채 공항에 혼자 나온 아주머니를 보니 딱한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그 아주머니는 3년 전, 연변에서 와 줄곧 파출부 생활을 했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주머니 목에는 산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반짝거리는 금목걸이가 걸려 있었고, 귀에는 작은 보석이 단정하게 박혀 있었다. 베이지색 정장 투피스와 진한 갈색 구두로 멋을 부렸지만 아주머니 몸에 걸린 의상은 다소 생경하고 어설퍼 보였다. 하지만 아주머니 표정만은 아주 밝았다.
"3년 동안 너무 외로왔시오.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순박해 보이는 연변 아주머니의 눈자위는 금세 붉어졌고 아주머니는 눈물을 보였다. 곱게 화장한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애처로워 보이는 아주머니 모습을 보고 있자니 TV에서 많이 보던 조선족의 고생과 서러움이 떠올라 가슴이 찡했다.
"저랑 같이 창구에 가 봐요. 여권만 있으면 비행기표는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긴 우산은 기내로 들고 갈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그래요? 동생이 사줬는데 못 가지고 가나요?"연변 아주머니 3년 생활의 흔적은 아는 동생이 사 줬다는 화려한 긴 무지개 우산과 큰 가방, 작은 기내 가방 한 개가 전부였다. 아주머니가 타고 간다는 남방항공 창구를 찾아갔다.
긴 우산은 기내 반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수속은 시간이 일러서 많이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부치는 짐 꼬리표 작성을 도와 드리고 수속 절차와 나가는 곳 등을 상세히 설명해 드린 뒤 아주머니와 작별을 해야 했다.
"이리 고마울 수가. 어디 가서 음료수라도…."인사를 하고 싶어하는 아주머니에게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돌아서려는데 자그마하고 거친 아주머니 두 손이 덥북 내 손을 잡았다.
"선생님, 고맙습네다. 꼭 성취하시길 빕네다.""성공하시길 빕네다."'성취' '성공'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말을 들으며 나는 아주머니의 여생이 행복하길 기원했다. 그런데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던가. 그리운 고향으로 떠나는 아주머니의 금의환향(?)을 지켜보며 나는 정말 행복했다.
그런데 아뿔싸, 아주머니와 헤어진 뒤 정신을 차리고 출국장으로 들어서려고 보니 겨우 30 여분밖에 남지 않은 게 아닌가. '아, 비행기 놓치겠구나. 더구나 출국 게이트까지 가는 셔틀도 타야 한다고 했는데.'
그때부터 나의 '달리기 전쟁'은 시작되었다. "죄송합니다" "Excuse me"를 연발하며 길게 늘어선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앞만 보고 뛰었다.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뛰고 또 뛰었다. 아니, 펄펄 날았다. 마침내 내가 타고 갈 비행기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다음부터는 여유 있게 다니십시오."
"아, 죄송합니다."
자리에 앉아 이마와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닦기도 전에 비행기는 이륙했다.
'아, 식구들에게 전화했어야 했는데.'아기와 씨름하는 필리핀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