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헌책방 <삼성서림>을 가득 채우는 책들
최종규
(1) 책이란하루일을 마무리한 일요일 저녁, 집에서 책을 읽으며 쉬다가 책방 나들이를 잠깐 해 볼까 생각합니다. 집에도 책은 넉넉하게 있지만, 아직 모르는 책을 알고 싶으니 책방 나들이를 꾸준히 합니다. 내가 알아보아 주기를 기다리는 책으로 무엇이 있을까 만나 보고 싶어서 아직 못 다 읽은 책이 있어도 또다른 책을 만나려고 길을 나섭니다.
새책방은 한두 곳만 찾아갑니다. 인천에 있는 대한서림과 서울에 있는 인문사회과학책방. 인천에 있는 대한서림은 새로 나오는 책이나 요새 잘 팔리는 책을 알아보는 곳이 됩니다. 서울에 있는 인문사회과학책방은 그곳 일꾼이 당신 깜냥대로 가려내어 좀더 읽히고픈 책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여느 큰 새책방에서는 대접을 받지 못하거나 구석으로 밀려나 있는 책이, 오히려 이곳 인문사회과학책방에서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며 차곡차곡 꽂혀 있습니다. 모든 출판사 모든 책을 갖출 수 있을 만큼 널찍하지 못한 크기이지만, 이런 작은 크기대로, 또 책방 일꾼이 세상을 보는 눈길대로 가려진 책시렁을 둘러보면서, 저는 또 저대로 세상을 꿰뚫는 책이 무엇인가를 살피게 됩니다.
잘 팔리는 책이라고 해서 좋은 책이지는 않으며, 안 팔리는 책이라고 해서 나쁜 책이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팔림새는 좋으나 우리 가슴에 남겨지는 이야기가 없이 스러지는 책이 제법 많다고 느낍니다. 읽어서 새겨지기보다는 흐름을 타고 좍 퍼졌다가 금세 잊히는 책이라고 할까요.
어쩌면, 장삿속으로 따질 때에는, 빨리빨리 퍼져서 좍 팔린 다음 새로운 책을 또 내놓아 좍 퍼뜨려서 팔아치우기를 되풀이해야 더욱더 많은 돈을 거두어들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는 책이라 해도, 읽는이들이 두 번 세 번 되풀이 읽고 곰곰이 곱씹기만 한다면 책방 장사는 죽을 쑤고 출판사도 어려울지 모릅니다.
책장사도 많이 팔려서 돈을 거두어들일 수 있어야 먹고살 수 있는 만큼, 안 팔릴 법한 책을 내는 일은 스스로 밥그릇을 내팽개치는 짓입니다. 그런데, ‘많이 팔려서’라는 대목을 ‘얼마나 많이’로 여기고 있는가요. 몇 권쯤 팔리면 마음에 넉넉할 만한 ‘많이’가 되려는가요.
하루에 한 권씩 세 해에 걸쳐 1000권이 팔리면 ‘안 팔리는’ 책일까 생각해 봅니다. 하루에 세 권씩 한 해에 걸쳐 1000권이 팔리면, 이대로는 출판사나 책방이 먹고살 수 없으려나 헤아려 봅니다.
헌책방 〈삼성서림〉 앞에 섭니다. 문간부터 가득 쌓인 책더미를 훑습니다. 책 쌓임새를 보면 천장까지 가득 올릴 수 있으련만, 〈삼성서림〉은 벽을 빙 두른 자리만 천장까지 쌓고 다른 자리는 어른 키보다 살짝 높도록 쌓습니다. 책꽂이를 더 마련해 천장까지 붙인 다음 걸상이나 사다리를 써도 될 텐데, 〈삼성〉 할아버지로서는 여기까지는 바라지 않을지 모르겠구나 싶습니다. 할아버지도 벌써 여든 줄에 접어들었으니.
“요즘 재미 좋아요? 그저 그래요?” “늘 똑같이 그럭저럭 살고 있습니다.” “그래, 요즘 다들 어렵다고들 하니까.”
〈삼성〉 할아버지는 한삶을 헌책방 동료이자 이웃으로 지낸 분들하고 책방 안쪽 책상 앞에 둘러앉아서 소주잔을 부딪힙니다. 고물상에서 책 거두어 오고, 손님들한테 책 팔고, 저녁나절 소주 한잔 걸치며 마무리를 짓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나름대로 달삯 치르고 소주값 벌면서 이 자리를 지키고.
“앞으로 삼사 년쯤 더 할 수 있겠어요?”
할아버지 스스로한테 묻는 말씀. 이제는 그야말로 하루 앞도 내다보기 어려울 수 있는 삶. 이제는 자식들 품에 안기어 집에서 느긋하게 지낼 수 있을 테지만, 헌책방이라는 곳은 ‘정년퇴임’이 없는 곳이라, 늘그막에도 동무들을 불러서 조촐한 술잔치도 즐기고 책도 팔며 일도 하고, 사람도 만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눈을 감는 마지막날까지 ‘사장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