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져본 지하철 종이 승차권.
이덕만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어떡하면 찾을 수 있느냐고. 친구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먼저 카드부터 정지시켜!" 바로 행동에 옮겼다. 처음으로 분실신고라는 것을 해봤다. 어차피 그런 건 못 찾으니까 빨리 잊어버리라는 친구도 있었고, 며칠 기다리면 지갑만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내 눈 앞에는 만원짜리 지폐들이 둥실둥실 부유하고 있었다.
안 좋은 일은 항상 몰려다닌다더니, 버스를 타기 직전에 ATM에서 5만 원을 출금했다. 교통카드 안에 들어있는 돈을 포함해 총 10만 원에 가까운 현금이 내 손을 떠나고 만 것이다. 비록 20여 년 전에는 천원에 울었던 나이지만 이번엔 눈물을 훔치지 않았다. 다만 마음에선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그게 어떻게 해서 번 돈인데!
현금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다사실 현금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지갑 안에는 많이 있었다. 일단 지갑 자체가 예전 여자 친구와의 추억이 담겨있는 물건이다. 그 친구와 사귀었을 당시 우리 누나에게 굉장히 좋은 지갑이 선물로 들어왔는데, 누나는 지갑이 필요 없다며 나에게 주었다. 그건 남자가 소화하기에는 너무 벅찬 디자인이라 여자 친구에게 선물로 줬는데, 그 친구는 자기가 쓰던 지갑을 나에게 주었다. 그 당시 내가 쓰던 지갑은 상당히 허름했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지갑은 그 친구와 웃고 울었던 추억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소중한 물건이다. 물론 여자 친구와의 추억만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지갑 안쪽에는 세상에서 단 한 장뿐인 가족사진이 들어있다. 7년 전이었던가. 누나의 대학교 졸업식에서 네 식구가 함께 찍은 사진이다. 그 사진은 군대에 있을 때도 자주 훔쳐보던 사진이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이별을 고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학생증 또한 정말 아까운 물건이었다. 2000년에 만들어진 그 학생증은 이제 더 이상 만들지 못하는 구형 디자인인데, 왠지 내 대학생활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밖에 사촌형이 선물로 줬던 외국 지폐도 지갑의 몸체와 함께 내 곁을 떨어져 나갔다. 행운의 지폐라며 주었던 건데.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