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이 활짝 피었다. 진흙탕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운 연꽃은 볼수록 고고한 느낌을 준다. 하얗게 피어오른 백련은 고매하다. 붉은 색의 홍련은 황홀경을 연출한다. 아름다운 연꽃을 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름 난 백련지로 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도 이 연을 사랑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연꽃이 피면 새벽에 함께 모여 연잎의 이슬을 받아 마시고 연꽃이 피어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연꽃을 심은 연못에 정자를 짓고 연꽃을 바라보면서 시회(詩會)도 열었다고 하니, 이 얼마나 운치 있는 삶인가.
연꽃의 고매한 성품을 사랑한 나머지 연잎에 맺힌 아침이슬을 받아 마시고 또 이슬을 모아 차도 끓여 마셨단다. 이 차를 마시면 심신이 상쾌해지고 혈색이 소년처럼 밝게 됐다고. 세속에 사는 선비가 연꽃처럼 세속에 물들지 않고 청렴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는 반증이다.
전남 보성에 있는 대원사에 이 연꽃이 활짝 피었다. 일부러 조성한 것이지만 여느 연지(蓮池)에서 보는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단순히 눈을 즐기기 위해 만든 게 아니다. 연꽃의 청정함과 향기에 취해 욕심을 놓아버리라는 수행의 한 과정으로 마련해 놓은 것이다. 절에서 키운 연꽃을 보면서 그 향기에 취해 마음의 짐을 놓아버리라고 권하는 것 같다.
붉은 꽃잎이 정갈한 수련과 샛노란 물양귀비도 보인다. 절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보랏빛 가시연꽃과 앙증맞은 노란 개연, 애기 수련, 물옥잠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수생식물도 많다. 주변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들꽃도 부지기수다. 식물에 이름을 써놓은 배려가 넉넉하다.
극락의 향기를 전하고 오염된 물을 정화시킨다는 연꽃과 수생식물의 향이 세파에 찌든 몸과 마음을 씻어 주는 것 같다. 극락의 향기가 온몸을 감싸면서 선경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금세 혈색이 좋아지고 속살까지 예뻐지는 것만 같다.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주암호 변에 자리하고 있는 대원사는 백제 무령왕 3년(503년)에 신라 고승 아도화상이 창건한 절. 웅장함과 화려함은 없다. 대신 울고 있는 부처와 가슴이 타버린 부모의 마음을 표현하는 부처상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절이다. 태안 지장보살을 모시고 태아령을 위한 기도도량으로 특화돼 있다. 태아령이란 태아 귀신 즉, 낙태아를 일컫는 말이다.
사철나무에 매달린 머리로 치는 왕목탁도 눈길을 끈다. 이 왕목탁은 남이 나에게 했던 나쁜 말이나 행위 등 모든 것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치는 것이다. 나쁜 기억들 사라지고, 나의 지혜 밝아지고, 나의 원수 잘 되라고….
왕목탁을 매달고 있는 사철나무도 사연을 품고 있다. 이른바 ‘연인목’으로 알려진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나이가 많은 사철나무. 왼쪽과 오른쪽 두 그루가 서로 손을 맞잡고 터널을 이루고 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닌 불이(不二)의 세계를 깨닫게 하는 나무다.
대원사 티벳박물관도 볼거리다. ‘한국의 작은 티벳’으로 불리는 이 박물관에서는 불교 탱화인 탕카를 비롯 만다라, 밀교 법구, 민속품 등 티벳 미술품을 볼 수 있다. 죽음과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죽음체험실도 마련돼 있다.
대원사로 들어가는 길 또한 무성한 벚나무들이 잎의 장막을 이루고 있어 정말 아름답다. 시원한 느낌을 받으며 하는 드라이브 코스로 멋지다. 고인돌공원과 송광사, 주암호 조각공원, 서재필 기념공원 등도 가까이 있다. 주암호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호수의 풍경도 예쁘기 그지없다.
대원사는 호남고속국도 송광사 나들목에서 30분이면 거뜬히 닿을 수 있다. 송광사 입구를 거쳐 고인돌공원과 서재필 기념공원을 거쳐 대원사에 이른다.
2008.07.27 11:36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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