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7월 13일 봉하마을 사저를 방문한 국가기록원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노무현 공식 홈페이지
셋째, 봉하마을에서 이미 하드디스크를 직접 반환했으나 완전하지 못하다고 하여 서버까지 요구하고 있다.
국가기록원은 참여정부 임기가 종료되기 전 대통령비서실과 자문위원회 등 대통령기록생산기관으로부터 약 825만여건의 기록을 이관받았다. e지원시스템 등에 의해 생산된 전자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이 전자기록은 청와대 기록관리시스템에 이관하고 장기보존포맷과 인증정보 등을 포함하여 패키징한 후 저장매체에 담아 국가기록원에 이관하여 대통령기록관에서 대통령기록보존시스템으로 보존하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전자기록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 의해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관리된다면 진본 전자기록이 관리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기록관에 있는 것이 진본이고 봉하마을에 있던 것은 사본이므로 이를 회수하여 복구 불가능한 방법으로 파기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서버를 요구하고 완벽한 반환인지 검수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법률적 권한이 없는 자가 대통령지정기록에 접근할 의도가 있지 않다면 필요없는 행위이다.
IMF주범도 못 잡는 역사 되풀이할 텐가이렇듯 대통령기록관리법 개정 움직임, 대통령기록관장의 대기발령 조치, 서버가 포함된 완전한 반환 운운하는 상황으로 볼 때 조만간 대통령지정기록의 보호체계는 무너질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 결과는 필연적으로 대통령기록의 생산과 보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보호되지 않는다면 기록을 생산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생산했다고 하더라도 등록하지 않아 결국은 멸실되도록 할 것이다. 멸실되는 기록은 국가의 주요 정책에 대한 입안과 경과 그리고 결과에 대한 평가 등 가장 중요한 기록들일 가능성이 크다.
참여정부 이전의 역대 대통령기록이 33만여 건에 불과한 것은 그것만 생산된 것이 아니라 그것만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정권교체 후 기록이 남아있다면 정쟁의 소지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중요 정책이 담겨져 있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하지만 보존가치가 있는 역사적 기록이 소각장이나 파쇄기를 통해 사라졌던 것이다.
대통령지정기록제도가 무너지면 이러한 관행이 부활하여 정권 말기가 되면 무단폐기가 자행될 것이 뻔하다. 이것은 대통령기록관리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전체 국가기록관리 차원의 문제이다.
공공기록관리체계가 제도화된 이후 지난 10여년간 공공기관의 기록관리는 많은 발전을 해 왔지만 아직 시작하는 단계이다.
기록관리는 현안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귀찮은 업무로 취급받아 뒷전으로 밀린다. 여전히 주요사안에 대해서는 대면보고를 하고, 그 보고서는 등록하지 않고 멸실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금까지 기록관리하지 않아도 일만 잘해왔는데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하는 공무원들이 여전히 많다.
이번 대통령기록과 관련한 논란은 이런 상황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기록이 정쟁의 도구가 되고 민감한 기록이 보호받지 못한다면, 유리한 기록만 남기려 하거나 정책의 입안과 경과는 사라지고 최종 결재문서만 남을 것이다.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은 다시 실종될 것이다. IMF 환란 사태를 겪고도 관련 기록이 없어 아무에게도 책임지우지 못하는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기록관리 후진국으로 돌아갈 것인가대통령지정기록의 보호체계가 무너지고, 공공기관의 기록관리가 다시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된다. 우리에게 기록관리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기록을 남기고 이를 통해 국민과 소통하는 것은 정부와 공공기관이 해야 할 의무이고, 민주주의의 그루터기이다.
따라서 정부는 "대통령지정기록제도의 변화를 원하지 않으며, 참여정부 대통령지정기록을 열람할 의도가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지금 정부는 주요 정책관련 사안이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기록을 생산하고도 보존하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으로 의심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확인된 대통령기록관리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해서 법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에게 대통령지정기록의 열람권을 부여하는 등의 대통령기록관리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들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된다.
만약 이번 일을 합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기록관리 후진국의 반열에 다시 그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다. 기록을 생산하지 않고, 관리하지 않으며, 공개하지 않는 어두웠던 지난 시기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조영삼 기자는 2005년 5월부터 약 3년여간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에서 기록관리업무를 수행했으며, 현재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기록관리업무를 하는 기록연구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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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공공기관의 기록관리를 위해 임용배치된 기록관리전문요원.
현재는 한신대학교 국사학과에서 초빙교수로 있으며 기록관리학을 강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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