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역대 대통령기록은 왜 사라졌나

[주장] 대통령지정기록제도는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등록 2008.08.01 10:05수정 2008.08.0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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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 정진철 국가기록원장(왼쪽 두번째)이 임상경 대통령기록관장, 국가기록원 관계자 2명 등과 함께 김해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 방문 조사를 진행했다.
지난 13일 정진철 국가기록원장(왼쪽 두번째)이 임상경 대통령기록관장, 국가기록원 관계자 2명 등과 함께 김해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 방문 조사를 진행했다. 황방열

대통령기록물 보호체계가 흔들리고 있다.

이번 대통령기록과 관련한 논란은 사본의 제작·유출, 그리고 전직 대통령 열람권에 대한 것으로서 기록관리에 한정되는 사안이었다. 따라서, 그에 합당한 방안을 만들면 쉽게 해결될 것이었다. 국가기록원이 사본을 회수하고 봉하마을에 열람체계를 구축해주면 끝날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정치적 쟁점이 되고 급기야 고발사태로 비화됨으로써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치적 문제와 상관없이 국가기록관리의 측면에서는 이미 참담한 상황이 되어버린 듯 하다.

중앙기록관리기관으로서의 국가기록원의 위상·전문성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고, 대통령지정기록 보호 체계가 무너질 위기에 있다. 국가기록관리 체계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흔들리는 대통령지정기록제도... 참담하다

공공기록 관리에 관한 법·제도의 체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기록관리에 관해서는 따로 법률을 제정했다.

이는 대통령이 갖는 직분의 특수성, 대통령기록생산기관에서 생산되는 정책관련 기록의 중요성 및 기록생산 프로세스의 차별성, 그리고 대통령기록의 보호와 열람체계의 구축에 관한 사항을 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기록의 보호에 대한 규정은 많은 연구를 거쳐 법제화한 것이다. 대통령기록은 외교·안보·국방·통일 등 주요 정책 추진은 물론 정치적으로 중요하고 민감한 기록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기록을 보호할 수 있는 권한도 조직도 없다. 이 상태로 기록만 남아 특별한 보호 장치가 필요했다. 기록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보호장치 없이는 민감한 기록의 생산과 보존이 보장되기 어려워 대통령지정기록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제도가 근본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들이 지난 13일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에 들어서고 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들이 지난 13일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에 들어서고 있다.노무현 공식 홈페이지

[징후① 법개정 추진] 미국 대통령은 기록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러한 정황을 확인할 만한 여러 징후가 있는데 먼저, 대통령기록관리법의 개정 추진 움직임이다.

김정훈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추진한다는 개정안은 아직 공개되지 않아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그러나 지정기록을 현직대통령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인 것 같다. "지정기록의 경우 전직 대통령의 열람권만 인정해 현직 대통령의 국정운영 연속성과 국가적 중대 사안에 대한 기록물 활용에 심각한 제한을 가하고 있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대통령지정기록제도는 기록을 생산하고 보존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다. 만약 이런 내용으로 법률이 개정된다면, 대통령기록의 생산은 절름발이가 될 것이며 설령 생산되었다 하더라도 보존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대통령지정기록제도는 미국의 접근제한제도를 참고한 것인데, 미국의 경우는 현직 대통령의 접근이 가능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그러나 현직대통령의 열람은 "현행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가 있는 기록으로서, 그 외에 달리 관련 정보가 없는 경우"에 한정한다고 엄밀하게 규정해 놓았다.

이것은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에게 직접 요청하는 경우에 한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대통령기록법 제정 이후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에게 접근제한 기록의 열람을 한 번도 요청한 사례가 없다. 업무활용을 위해 각 부처의 기록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한편, '달리 정보가 없는 경우'는 국립기록관리처장이 판단한다. 처장은 상원의 권고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기록관리전문가로서 실제적으로 독립성과 전문성이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전문 관료를 '국가기록원의 원장'으로 임명하며 수시로 교체되는 등 독립성과 전문성 측면에서 많은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사례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따라서 미국의 사례를 들어 대통령지정기록을 현직 대통령이 열람할 수 있도록 개정하자는 것은 제도의 외피만 보고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다.

[징후② 국가기록원장 직무정지] 새 관장 임명하면 기록 보호는 어쩌나

둘째, 이번 고발대상자에 대통령기록관장이 포함되어 있고, 현재는 대기발령되어 직무정지 상태에 있다. 지금 당장은 후임 대통령기록관장을 임명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법률에 의해 임기가 보장된 별정직 고위공무원을 고발한 것도 모자라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대통령기록관리법에 의하면 대통령기록관장은 5년의 임기가 보장되어 있다. 짧지 않은 임기를 보장한 것은 적어도 차기정부 임기의 대부분을 그 관장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일반적인 기록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임무는 대통령지정기록의 보호를 위해서다.

대통령기록관리법 제22조의 대통령기록관의 기능에 관한 조항에는 '대통령지정기록물의 보호조치 해제'의 규정이 있다. 이것은 대통령기록관장이 '대통령지정기록의 관리를 수행하는 책임자'라는 의미이다.

그 역할을 하는 대통령기록관장의 직무를 검찰 수사가 시작되는 단계에서 정지시킨 후 가까운 시일 내에 경질하고 새 관장을 임명하게 된다면 대통령기록의 보호는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징후③ 봉하마을서버 요구] 사본만 회수하면 될 것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7월 13일 봉하마을 사저를 방문한 국가기록원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7월 13일 봉하마을 사저를 방문한 국가기록원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노무현 공식 홈페이지
셋째, 봉하마을에서 이미 하드디스크를 직접 반환했으나 완전하지 못하다고 하여 서버까지 요구하고 있다.

국가기록원은 참여정부 임기가 종료되기 전 대통령비서실과 자문위원회 등 대통령기록생산기관으로부터 약 825만여건의 기록을 이관받았다. e지원시스템 등에 의해 생산된 전자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이 전자기록은 청와대 기록관리시스템에 이관하고 장기보존포맷과 인증정보 등을 포함하여 패키징한 후 저장매체에 담아 국가기록원에 이관하여 대통령기록관에서 대통령기록보존시스템으로 보존하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전자기록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 의해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관리된다면 진본 전자기록이 관리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기록관에 있는 것이 진본이고 봉하마을에 있던 것은 사본이므로 이를 회수하여 복구 불가능한 방법으로 파기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서버를 요구하고 완벽한 반환인지 검수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법률적 권한이 없는 자가 대통령지정기록에 접근할 의도가 있지 않다면 필요없는 행위이다.

IMF주범도 못 잡는 역사 되풀이할 텐가

이렇듯 대통령기록관리법 개정 움직임, 대통령기록관장의 대기발령 조치, 서버가 포함된 완전한 반환 운운하는 상황으로 볼 때 조만간 대통령지정기록의 보호체계는 무너질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 결과는 필연적으로 대통령기록의 생산과 보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보호되지 않는다면 기록을 생산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생산했다고 하더라도 등록하지 않아 결국은 멸실되도록 할 것이다. 멸실되는 기록은 국가의 주요 정책에 대한 입안과 경과 그리고 결과에 대한 평가 등 가장 중요한 기록들일 가능성이 크다.

참여정부 이전의 역대 대통령기록이 33만여 건에 불과한 것은 그것만 생산된 것이 아니라 그것만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정권교체 후 기록이 남아있다면 정쟁의 소지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중요 정책이 담겨져 있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하지만 보존가치가 있는 역사적 기록이 소각장이나 파쇄기를 통해 사라졌던 것이다.

대통령지정기록제도가 무너지면 이러한 관행이 부활하여 정권 말기가 되면 무단폐기가 자행될 것이 뻔하다. 이것은 대통령기록관리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전체 국가기록관리 차원의 문제이다.

공공기록관리체계가 제도화된 이후 지난 10여년간 공공기관의 기록관리는 많은 발전을 해 왔지만 아직 시작하는 단계이다. 

기록관리는 현안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귀찮은 업무로 취급받아 뒷전으로 밀린다. 여전히 주요사안에 대해서는 대면보고를 하고, 그 보고서는 등록하지 않고 멸실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금까지 기록관리하지 않아도 일만 잘해왔는데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하는 공무원들이 여전히 많다.

이번 대통령기록과 관련한 논란은 이런 상황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기록이 정쟁의 도구가 되고 민감한 기록이 보호받지 못한다면, 유리한 기록만 남기려 하거나 정책의 입안과 경과는 사라지고 최종 결재문서만 남을 것이다.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은 다시 실종될 것이다. IMF 환란 사태를 겪고도 관련 기록이 없어 아무에게도 책임지우지 못하는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기록관리 후진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대통령지정기록의 보호체계가 무너지고, 공공기관의 기록관리가 다시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된다. 우리에게 기록관리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기록을 남기고 이를 통해 국민과 소통하는 것은 정부와 공공기관이 해야 할 의무이고, 민주주의의 그루터기이다.

따라서 정부는 "대통령지정기록제도의 변화를 원하지 않으며, 참여정부 대통령지정기록을 열람할 의도가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지금 정부는 주요 정책관련 사안이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기록을 생산하고도 보존하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으로 의심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확인된 대통령기록관리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해서 법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에게 대통령지정기록의 열람권을 부여하는 등의 대통령기록관리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들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된다.

만약 이번 일을 합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기록관리 후진국의 반열에 다시 그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다. 기록을 생산하지 않고, 관리하지 않으며, 공개하지 않는 어두웠던 지난 시기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조영삼 기자는 2005년 5월부터 약 3년여간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에서 기록관리업무를 수행했으며, 현재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기록관리업무를 하는 기록연구사로 재직중이다.


덧붙이는 글 조영삼 기자는 2005년 5월부터 약 3년여간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에서 기록관리업무를 수행했으며, 현재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기록관리업무를 하는 기록연구사로 재직중이다.
#대통령기록 #대통령기록유출 #대통령지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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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공공기관의 기록관리를 위해 임용배치된 기록관리전문요원. 현재는 한신대학교 국사학과에서 초빙교수로 있으며 기록관리학을 강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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