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그 최종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이명박 정권 대 <PD수첩>' 이야기다. 아니, '검찰 대 <PD수첩>'이기도 하고, '이명박 정권 대 촛불'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언뜻 상황은 <PD수첩>이 사면초가인 듯 싶다. 농림수산식품부가 낸 정정보도 청구 소송에서 1심 법원도 정부 손을 들어주었다. 다는 아니라고 하지만, 주요 쟁점에 대해 농림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정정과 반론 보도를 하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단하기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쉽게 말하자. 이번 다툼은 결코 법정에서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어느 쪽도 법정 다툼으로 이것을 끝낼 수 없다. 아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앞으로 대한민국의 진로와 직결된 문제다. <PD수첩>이 끝내 '잘못된 보도'로 낙인찍히고 그 제작진들이 터무니없는 선동꾼 정도로 매도된다면, 그런 대한민국은 더 이상 자유언론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닐 것이다. 그것이 어떤 포장을 하고 있든 그것은 거짓 민주주의 체제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두운 미래다.
명예훼손에 대해 단 한 마디 없는 이상한 검찰 수사
검찰 수사는 각본대로 가고 있어 보인다. 명예훼손 사건으로는 사상 유례없이 5명이라는 '거대 수사팀'을 꾸린 검찰은 '중간 수사발표'라면서 <PD수첩> 측에 장문의 공개질의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역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중간 수사발표에는 정작 정운천 전 농림부장관의 명예가 어떻게 훼손됐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언급이 없다. 참 이상한 검찰 수사다.
검찰은 <PD수첩>에 초고배율의 전자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다. 화면과 말 하나하나씩을 자르고 떼어 내 초정밀 분석에 들어갔다. 저널리스트나 언론학자의 수준은 뛰어넘은 지 오래다. 논리학과 언어학의 수준까지를 넘보는 듯하다. 언론학자는 물론이고, 글과 말에 관한 강의까지도 앞으로는 검사들의 차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검찰들은 그 평이한 문맥 하나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것 같다. 번역 문투 하나하나를 트집잡고, 전문 용어에 대한 해석도 해석이지만, '문맥'은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채 '의도'를 앞세우다 보니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
명예훼손 사건에서 언론 보도의 사실 여부는 부차적일 수 있다. 아무리 '사실'을 보도했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면 명예훼손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 수사의 시작과 끝은 어디까지나 정운천 전 농림부 장관이나 수사를 의뢰한 농림부의 명예가 과연 훼손됐느냐 여부다.
상식과 과학, 저널리즘 조롱하는 법원 판결
또 하나 검찰이 고려해야 할 점은 <PD수첩>의 의도와 이른바 위법성 조각 사유다. <PD수첩>이 정운천 전 장관의 명예를 악의적으로 훼손하려 했던 것인지가 중요하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정부의 협상 태도를 비판한 것은 명예훼손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검찰의 분석대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설령 과장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정운천 전 장관과의 명예훼손과는 관계가 없다.
게다가 위법성 조각 여부도 따져봐야 한다. 그동안의 판례는 언론의 보도가 설령 명예를 훼손했다고 하더라도 그럴만한 사유가 있을 때는 그 위법성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지 않아왔다. 그런 위법성 조각 사유로 가장 먼저 예시되는 것은 바로 국민의 알권리다. 국민의 알권리나, 공공의 이익, 또 사실이라고 믿을만한 정황 등이 있다고 판단될 때 설령 명예훼손 혐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
특히 그 대상이 공인이거나 공공기관일 경우에는 이런 위법성 조각 사유가 보다 폭넓게 용인된다. 공인과 그의 언행, 그리고 공무집행에 대한 언론의 문제 제기나 비판, 검증은 그것이 다소 과하다고 하더라도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판례였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믿을 게 못 된다. 농림부가 낸 정정보도 청구소송에 대한 법원 판결은 상식과 과학, 그리고 저널리즘을 조롱하고 있다. <PD수첩>이 다우너소의 광우병 위험을 지적한 데 대해 법원은 "허위이므로 정정하라"고 판결했다. 소가 주저앉는 이유가 여러 가지인데, 다우너 소를 의도적으로 광우병 소로 각인시켰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광우병 우려를 과장했다는 것이다.
법원, 민주주의 수호자 역할 할 수 있을까
분명히 하자. <PD수첩> 다우너 소 영상들이 충격적인 것은 주저앉은 소가 도축되고 있는 영상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이 광우병 소일수도 있다는 개연성이 시청자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고 하더라도, 그 것 때문에 광우병에 걸린 소의 주요 증상 가운데 하나가 '주저앉는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이미지가 사실을 대체할 수도 없고, 논리를 뒤바꿀 수도 없다. 그런데 법원은 이른바 '인상비평' 수준의 접근으로 '사실'을 '허위'라고 판단했다.
법원이 정정과 반론보도 요구를 받아들인 한국형 유전자 형에 따른 광우병 발생 빈도의 문제나 광우병위험물질의 경우도 법원은 <PD수첩>이 이미 내보낸 정정 보도를 인정하지 않거나 사실 판단을 달리하는 착오를 범했다.
법원의 이번 결정에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법원이 정부의 '발언권'과 그 '영향력'을 전혀 감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는 <PD수첩> 방영 내용에 대해 모든 '입'을 다 동원해 일일이 반박에 나섰고, 수십 억원을 투입해 대대적인 '광고'를 하기도 했다. 또 조중동처럼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준 언론들이 있었다. 이들 쟁점을 다룬 방송 토론도 수차례나 있었다. 정부의 발언권과 반론권은 차고 넘쳤으면 넘쳤지, 결코 모자람이 없었다. 법원은 그러나 이런 사정을 전혀 헤아리지 않았다.
검찰 수사는 정해진 수순을 밟을 것이다. 그럴수록 그것은 검찰의 존재 양식과 검찰권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과정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 다음은 법원이다. 법원은 진실을 가리는 판관의 역할과 사회적 정의 실현과 민주주의 수호자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까. 그럼으로써 법치주의의 정당성과 근간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농림부 대 <PD수첩>' 소송에서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 15부(재판장 김성곤)의 31일 판결은 법원 또한 '어두운 미래' 쪽에 설 개연성이 적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어쨌거나 그 최종 결과에 대한 예측은 '민의의 법정'에서 '시대의 심판'이 나올 때 까지는 잠시 유보해 두는 것이 좋겠다. 속도의 시대인 만큼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2008.08.01 14:15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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