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 지하철역에서 투표, 가능하다!

누리꾼들 요구에 선관위·도시철도공사 '긍정적'

등록 2008.08.02 13:29수정 2008.08.04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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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0일 서울시교육감 선거일을 전후해 투표소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왜 교회가 이렇게 많은가" "찾기 불편한 투표소가 많다"는 지적 등이 바로 그것. 특히 교회 투표소를 둘러싸고 비판적 의견이 많았다.  

 

서울특별시 선거관리위원회 자유게시판에 글을 남긴 누리꾼 '벼랑'은 "투표소인 강동지역 교회에서 전도 강요를 목격했다"며 "불쾌감을 유발해 투표율을 낮추려는 게 아니라면 반드시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신정희씨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불교신자인 모친은 '교회가 싫다'며 투표를 포기했고 나는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이번 교육감선거 투표장소를 알 수 없어 주민자치센터에 두차례나 전화를 넣어 알아냈다"고 밝혔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도 전체 투표소 6곳 중 1곳이 특정 종교시설이고, 쉽게 찾기 어려운 아파트 경로당, 오피스텔 등에 투표소를 설치했음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누리꾼을 중심으로 '지하철역에 투표소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제기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투표율도 올라갈 수 있고, 불필요한 논쟁도 피할 수 있다는 이 주장은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 취재 결과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

 

'투표하려면 교회 가야해? 안 하고 말지'

 

서울시 교육감 선거 투표소 30일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위해 공덕동의 한 교회에 투표소가 마련되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 투표소30일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위해 공덕동의 한 교회에 투표소가 마련되었다.유성호
▲ 서울시 교육감 선거 투표소 30일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위해 공덕동의 한 교회에 투표소가 마련되었다. ⓒ 유성호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2189개 투표소 중 364개(16.6%)가 특정 종교시설 즉 개신교 교회 안에 설치됐다. 천주교 성당이 27군데, 불교 사찰이 2군데, 대순진리회 등 기타종교시설이 6군데인데 비하면 개신교 교회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7월 2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시정 의견을 전달했다. "우리 헌법 제20조 제1항과 유엔자유권규약 제18조 제2항에서 보장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 속에 '국민이 종교상의 이유로 출입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특정 종교시설에 출입을 강제당하지 아니할 자유'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이미 지난 3월에도 종교시설 내에 투표소를 설치하지 않도록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에게 권고한 바 있다.

 

특정 종교시설에 편향된 투표소 설치는 타종교 신자이거나 무교 유권자를 소외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층에 개신교가 많은 점을 살폈을 때 이 대통령의 교육정책과 맞닿는 후보가 '교회 투표소'의 수혜를 입었으리라'는 추측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다.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도 이같은 지적을 인정하고 있다. 선관위는 홈페이지에 입장문을 올려  "그동안 계속 사용해왔던 투표소를 일시에 변경함에 따른 투표편의성 상실과 혼란을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종교시설에 설치하는 투표소를 최대한으로 줄이고 점차 다른 시설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선관위는 또한 "이번 교육감선거에서 종교시설 내 투표소가 지난 제17대 대선 460여개, 제18대 총선 390여개보다 감소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유권자들] "투표 못하면 억울해, 지하철을 투표소로"

 

(지하철)역을 투표소로 씁시다 다음 아고라에서 닉네임 '김디지를 국회로'가 지하철 역사에 투표소를 설치하자고 청원했다.
(지하철)역을 투표소로 씁시다다음 아고라에서 닉네임 '김디지를 국회로'가 지하철 역사에 투표소를 설치하자고 청원했다.다음
▲ (지하철)역을 투표소로 씁시다 다음 아고라에서 닉네임 '김디지를 국회로'가 지하철 역사에 투표소를 설치하자고 청원했다. ⓒ 다음

투표일이 평일임을 고려하지 않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투표소 설치를 했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오피스텔 로비, 학교 강당, 아파트단지 경로당 등과 같이 안내를 받지 않고는 간편하게 찾아가기 힘든 곳에 투표소를 설치해 생계에 종사하는 바쁜 사람들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체 투표소 2189곳 중 기관별로 학교 826곳, 종교시설 399곳, 읍면동 관공서 349곳, 공공기관단체사무소 145곳, 주민회관 43곳, 기타 427곳이다.

 

이같은 사실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던 유권자들 사이에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지하철역을 투표소로 쓰자'는 의견이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누리꾼 '상식괴테'는 "이번 선거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비롯해 수많은 평일 선거가 있을 텐데, 그 때마다 소중한 투표권을 생업에 밀려 포기해야 할 생각을 하니 억울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에 투표소를 설치해 청장년층의 투표율을 높이자"고 제안했다.

 

다른 누리꾼은 지난 30일 '(지하철)역을 투표소로 씁시다'라는 청원을 다음 아고라에 시작해 누리꾼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그는 "지하철 역사를 투표소로 활용할 경우 별도의 위치 안내가 필요 없고 접근성이 뛰어나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하철 역사는 공기업의 시설물로 협의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장점을 제시했다. 그는 "도곡역이나 여의도역을 보더라도 여유공간이 충분히 예비되어 있으며, 업무용 공간을 빌릴 수도 있지 않겠냐"며 본인의 의사를 밝혔다.

 

[선관위] '지하철 투표소, 고려해볼 만 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006년 8월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 토론회에서 공개한 '무선 전자투표기'. 이 장비는 전원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 투표를 할 수 있으며, 도입될 경우 지하철역 등에서도 투표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006년 8월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 토론회에서 공개한 '무선 전자투표기'. 이 장비는 전원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 투표를 할 수 있으며, 도입될 경우 지하철역 등에서도 투표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이종호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006년 8월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 토론회에서 공개한 '무선 전자투표기'. 이 장비는 전원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 투표를 할 수 있으며, 도입될 경우 지하철역 등에서도 투표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이종호

지하철 역사에 투표소를 설치하는 것은 실현 가능한 정책일까.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 관리담당관인 홍문표 사무관은 긍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학교나 교회 등의 투표소를 단지 지하철 역사로 옮기는 개념이라면 중앙위원회의 정책결정을 거쳐 가능할 것이다. 지하철 1층 내부공간에 회의실 같은 폐쇄된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접근성이 좋다면 지하철 역사에 투표소 설치를 고려해볼 만하다."

 

홍 사무관은 "평일은 지하철이 접근성이 좋을지 몰라도 공휴일에 지하철 역사에 가는 것은 오히려 집에서 멀 수 있다"며 "투표율 향상에 큰 기여를 하지 않으리라 생각해 아직 지하철 투표소를 고려한 적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많은 유권자들이 역사에 투표소를 설치하길 원한다면 얼마든지 추진 가능하다"고 말했다.

 

홍 사무관은 공직선거법 제 147조의 투표소 선정 규정을 설명해주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선거인의 투표편의를 감안하여 ① 접근이 용이하고 교통이 편리한 곳 ② 장애인이 이용하기 쉬운 1층이나 편의시설을 갖춘 공공시설을 투표소로 우선적으로 선정'한다.

 

더불어 투표소 설치 장소는 20㎡ 이상 공간이 확보되고 투표에 방해되지 않을 만큼 안정적인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2층이나 지하층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장애인 접근권이 보장된다면 투표소로 가능하다. 지하철 역 안의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투표소 선정은 동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장소를 물색하고 투표 한 달 전부터 기관장에게 요청해 소정의 임대료를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다음 선거 때 지하철 역사에 장소 요청을 할 계획이 있는지 묻자 홍 사무관은 긍정적으로 고려하겠다는 답변을 남겼다.

 

[지하철] 서울메트로 '어렵다'... 서울도시철도공사 '전 역사 가능'

 

그렇다면 지하철역을 관리하고 있는 서울 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입장은 어떨까. 서울 메트로는 난색을 표한 반면 도시철도공사는 적극적이었다.

 

선관위가 제시한 '투표소 선정 조건'을 서울메트로(1,2,3,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5,6,7,8호선)에 전달하고 입장을 들어보았다.

 

먼저 서울메트로 측은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황춘자 서울메트로 홍보실장은 "투표소 설치 문제는 우리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니 언급하지 않겠다"며 "위에서 설치하겠다고 하면 그 때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렇게 덧붙였다.

 

"지하철 1·2·3·4호선은 5,6,7,8호선에 비해 역당 공간이 100평 적다. 지은지 34년이나 되어서 공간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마 투표소를 설치할 수 없을 것이다. 승객들의 이동통로를 가로막거나 직원들 역무실을 비우고 투표소를 마련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서울메트로의 입장에 반해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적극적인 투표소 설치의지를 비쳤다. 김택균 서울도시철도공사 홍보실장은 "안 그래도 사장님이 '이번 선거 투표율이 너무 낮았고 자신도 골목길로 들어가서 투표하는 게 매우 불편했다'며 지하철에 투표소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투표소 설치에 필요한 20㎡ 이상의 공간은 모든 역사에 마련되어 있고 각 역사에 회의실도 거의 있다. 없으면 대합실에 임시칸막이를 설치해주면 된다. 우리는 역사에 투표소가 생기면 투표율도 오르고 시민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선관위에 얼마든지 협조할 의향이 있다."

 

서울시 선관위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긍정적 반응으로 볼때 다음 선거부터는 지하철 역에서 투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투표율 재고와 유권자 권리 존중을 위해 제기되고 있는 지하철역 투표소 설치 문제가 현실화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박유미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2008.08.02 13:29ⓒ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박유미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지하철 #투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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