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촛불'에게 귀띔하다

<축제의 정치사> 저자 윤선자 교수와의 간담회

등록 2008.08.07 11:11수정 2008.08.12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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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자 교수의 <축제의 정치사>(한길사 펴냄)는 최근 촛불정국과 맞물려 서둘러 출간되지 않았을까 하는 항간의 소문과 달리 윤 교수는 빨리 출간을 해달라고 출판사에 요청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출판사는 시점을 맞추기 위해 한두 달 기다리다가 결국 물대포가 발사되기 바로 전날(5월 30일) 시중에 배포했다.

 

윤 교수와의 저자 간담회가 4일 저녁 7시 안국역 근처 북카페 '마고'에서 진행됐다. 매달 주요한 저자를 초대해 인문사회 중심의 심도 깊은 간담회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하니누리'가 자리를 마련했다.

 

뗄 수도 없고 어울릴 수도 없는 딜레마, '혁명'과 '혁명정부'

 

a  윤선자 교수(고려대)는 '촛불'에 대해서 말을 아꼈다. <축제의 정치사>가 '촛불'에 시사점을 던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책과 상관없는 정치적 성향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답을 청한다면 "나는 휴머니스트이다"라고 대답하겠다고 말했다.

윤선자 교수(고려대)는 '촛불'에 대해서 말을 아꼈다. <축제의 정치사>가 '촛불'에 시사점을 던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책과 상관없는 정치적 성향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답을 청한다면 "나는 휴머니스트이다"라고 대답하겠다고 말했다. ⓒ 오승주

윤선자 교수(고려대)는 '촛불'에 대해서 말을 아꼈다. <축제의 정치사>가 '촛불'에 시사점을 던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책과 상관없는 정치적 성향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답을 청한다면 "나는 휴머니스트이다"라고 대답하겠다고 말했다. ⓒ 오승주

프랑스혁명기의 정치문화를 다루고 있는 <축제의 정치사>의 문체는 다소 건조하고 온건하다. 학술서적이기 때문에 어떤 관점에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사정이 반영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촛불정국에 몰입했던 독자라면 촛불에 대한 과잉된 상징과 부푼 희망이 아직도 꺼지지 않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촛불을 오랫동안 꺼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차갑게'와 '뜨겁게'라는 두 관점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축제의 정치사>는 촛불에 대해서 '차갑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해줄 것이다.

 

성공한 혁명은 필연적으로 이질적인 두 개의 키워드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혁명'과 '혁명정부'다. '혁명'은 전복의 쾌감을 주는 축제 그 자체이지만, '혁명정부'는 혁명의 결과를 수습하는 마무리곡이다. 고대 중국으로 보면 옹철(雍徹, '雍'은 천자가 제사를 끝낼 때 부르는 노래이며, '徹'은 제사를 마치고 제기를 거두는 의식으로, 행사를 끝내는 음악을 말함)과 같다.

 

혁명의 성과물을 오롯이 시대정신에 담기 위해서는 혁명정부에게 역할을 맡기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혁명정부가 혁명의 기억들을 하나씩 지워가다가 결국 혁명의 모든 취지와 근거들을 없애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모든 혁명은 배반이다"는 말은 그래서 가능하며 87혁명의 실패(나는 실패라고 평가한다) 역시 '혁명정부의 배반'으로 생긴다.

 

책의 내용으로 이를 표현하면 저자는 축제를 비공식적 축제와 공식적 축제로 나눴다. 비공식적 축제는 프로이트의 개념을 빌려온 것인데, 일상에서 자기를 짓누르는 금기를 파괴하면서 느끼는 환희, 기쁨의 순간 자체가 축제라는 해석이다. 난장·이탈·해방의 분출구는 축제의 주된 땔감이다.

 

바흐친은 비공식문화·집단적 민중적 특성·웃음과 패러디를 통해 지배계층의 권위와 전통을 파괴하는 카니발이야말로 '축제 중의 축제'라고 평가했다. 이때의 카니발은 비공식적 축제로 분류된다. 가히 '혁명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비해 공식적 축제는 형식을 강조하며 절대적인 존재자를 상정한다(혁명정부는 '이신론'의 전통을 따르므로 인격신은 아니다. 가톨릭은 더더욱 아니다).

 

a  <축제의 정치사>

<축제의 정치사> ⓒ 한길사

<축제의 정치사> ⓒ 한길사

사회를 통합하고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영웅이나 지존을 끌어들이는 것이 공식적 축제 기획자들, 즉 '혁명정부'의 특징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을 대표하는 세력, 자코뱅 파(중앙집권)과 지롱드 파(지방분권)는 끊임없는 혈투와 대결로 혁명공간을 피로 물들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차이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샤토비오 축제와 시모노 축제는 모두 '자유'라는 대표 슬로건을 앞세웠지만 그 의미는 천양지차다. 샤토비오 축제의 '자유'는 "뭉치면 자유롭다"는 혁명적 개념으로 억압, 구체제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오겠다는 공화주의적 의지의 표현이다.

 

이에 반해 시모노 축제가 내세우는 '자유'는 "법을 따르면 자유롭다"는 선언처럼 법, 헌법, 입헌군주제적인 자유를 앞세운다. 축제의 사소한 형식 역시 두 파로 갈린다. 왕정 전제정치에 억눌리고 핍박받는 민중은 '마리안느'라는 자유의 여신으로 상징되는데, 이는 곧 공화주의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 서 있는 행위, 가슴까지 노출시키는 과감한 복장, 빨간 프리지아가 등장한다. 이에 비해 앉아 있는 것, 정숙한 긴 드레스, 별(절대적 존재 상징) 등은 온건한 혁명정부를 상징한다.

 

혁명정부는 국민축제를 기획하며 혁명의 기억들을 점점 없애 버렸는데, 대표적인 예는 연맹제 때 구체제의 상징물인 왕실의 기물들을 태우는 퍼포먼스를 하자마자 비둘기 100마리를 창공에 날린 일이다. 불을 태운다는 것은 '폭력성'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날려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써 요즘 말로 하면 '물타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문화의 힘이다

 

저자 간담회를 진행하는 고명섭 기자는 물론이고 청중들은 저자가 자신의 책을 '촛불'에 연관시켜 말해줄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촛불문화제에 대한 견해는 축제를 많이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정치적 성향이 무엇이냐에 의해 더 많이 좌우된다. 하지만 인간을 앞서는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은 없다고 생각하며 더욱이 난 정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 누가 당신의 정치적 성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냥 휴머니스트'라고 대답하겠다"고 말하며 즉답을 피했다. 저자의 말처럼 축제와 촛불의 무리한 관계 맺기는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으나, <축제의 정치사>는 분명 '촛불'에 시사하는 바를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가 혁명에 성공하고 축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앙집권제'가 약했기 때문이라는 일부의 평가에 대해 저자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 프랑스는 독일이나 이탈리아 그 어떤 나라보다 중앙집권화가 강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제도나 영토가 통일됐다고 해서 '대사'가 성립될 수는 없으며, 결국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문화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가장 잘 말해주는 사건은 '손수레의 날들'이다. 당시 혁명을 완수하고 축제를 기획하던 혁명정부는 축제에 사용할 공간을 만드는 데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장인들의 인건비 문제가 가장 큰 난관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축제가 개최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십만 명의 시민들은 집에서 농기구 등 물품을 실어 날라 며칠 만에 축제준비를 끝냈다. 시민들이 '손수레'로 축제의 장을 열었던 사건을 '손수레의 날들'이라고 한다.

 

조국대순례도 국민통합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프랑스 혁명의 초창기는 '대공포 시대'였는데, 농민들이 성을 침략하거나 이웃 마을을 침략하는 등 서로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런데 혁명을 완수하고 이를 기념하는 축제를 위해 지방에서 중앙으로 중앙에서 지방으로 축제준비단을 파견하는 이른바 '조국대순례'를 계기로 '대공포'는 눈 녹듯 사라졌다. 지방의 시민들은 국민방위대 대표들을 뜨겁게 환영하고 소식을 물어보는 과정에서 경계와 공포가 사라지며 '국민감정'이 생기게 된 것이다.

 

유머도 여기에 한몫 했다. 샹드마르스의 연맹제 때 '열기구'를 띄우려는 논의가 있었는데, 그 이유가 재밌다. "달에 착륙시켜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자유로운지 확인하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인권선언을 읽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익살스러운가.

 

a  ▲ 30석 규모의 공간이 빈칸없이 독자들로 채워졌고 더러는 계단에 앉아야 했다. 대학 교수의 저서답게 제자들이 적지 않은 눈치였는데, 2~3시간의 간담회 내내 열띤 강의실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 30석 규모의 공간이 빈칸없이 독자들로 채워졌고 더러는 계단에 앉아야 했다. 대학 교수의 저서답게 제자들이 적지 않은 눈치였는데, 2~3시간의 간담회 내내 열띤 강의실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오승주

▲ 30석 규모의 공간이 빈칸없이 독자들로 채워졌고 더러는 계단에 앉아야 했다. 대학 교수의 저서답게 제자들이 적지 않은 눈치였는데, 2~3시간의 간담회 내내 열띤 강의실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오승주
 

촛불의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면, 촛불을 든 사람들과 촛불을 들지 않은 사람들 간의 '국민감정'이 만들어졌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내가 잘 가는 식당의 주인 아저씨 말처럼 "촛불을 든 시민들이 모든 시민들을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 얼마나 반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촛불광장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고 통제된 공간(도로)를 한껏 전복하는 환희를 맛보는 등 축제의 특징을 여지없이 누렸다고 이해할 수 있으나, 그것은 전 국민의 승리는 아니었다. 촛불을 든 사람들끼리 인사하며 자위를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촛불을 들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묶을 수 있는 문화적 힘을 창조해 낼 수 있는가'가 촛불에 주어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2008.08.07 11:11ⓒ 2008 OhmyNews

축제의 정치사

윤선자 지음,
한길사, 2008


#축제의 정치사 #윤선자 #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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