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에서 박왕자씨가 피살 당한 지 11일로 꼭 한 달째이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있다. 해결은커녕 북한이 10일 금강산에 체류 중이던 한국관광공사 직원을 추방, 되레 남북간 대립만 더욱 격화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3일 금강산에 체류중인 '불필요한 남측인원'을 모두 추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 9일 "추방조치를 10일부터 실시한다"면서 1차 철수대상으로 '한국관광공사와 금강산면회소의 인원들을 비롯한 남측 당국 관계자 전원'을 지목했다.
금강산에 체류중이던 면회소 인원 9명 가운데 1명이 9일, 2명이 10일 철수했고 11일 오전 나머지 6명과 한국관광공사 직원 2명이 남쪽으로 돌아왔다.
한국관광공사는 면세점 물건도 모두 가져올 예정이다. 또 11일 오후에는 금강산 협력업체 직원 2명이 추가로 철수해 금강산에는 137명만이 남게 된다. 정부와 현대아산은 오는 14일까지 시설 관리 등 필수 인원 117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철수시킬 계획이다.
'살라미' 북한, 날마다 강경해진다
정부 일각에서는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북한이 한달 200만달러 안팎의 관광비용 손해를 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타협적인 자세를 취할 것으로 예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는 달리 북한의 태도는 갈수록 강경해지고 있다.
북한은 원래 '살라미 전술'(자신이 갖고 있는 카드를 잘게 나눠 조금씩 사용하는 전술)에 능한데 금강산 피살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이 나서더니 3주가 지나서는 군부가 직접 나섰고, 남쪽 인원 추방도 한꺼번에 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실행하면서 긴장을 높이는 수법을 쓰고 있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로서는 남북관계에 있어 금강산 사건이 중요한 현안"이라며 "앞으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뜻에 부합되도록 금강산 문제 해결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금강산 사건과 다른 남북관계를 분리해서 대처해왔다"며 "금강산 사건과 관련한 일부 정부 조치를 대결 논리로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금강산 사건과 다른 남북관계가 함께 엮여서 돌아가는 형국이다. 정부는 북한에게 진상 조사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전교조 등 일부 민간단체의 대규모 방북을 불허했다. 또 북한에 대한 옥수수 5만t 지원도 보류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옥수수의 경우 애초 북한이 받지 않으면 세계식량기구(WFP) 등을 통해 우회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박씨 피살 사건 뒤에는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여 조사를 해봤다는데 박왕자씨 피살사건 이전보다 국민감정이 훨씬 악화됐다"고 소개했다.
박씨 사건 당일, 청와대는 박씨 피살과 남북관계는 별개라고 밝혔지만 이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는 등 국제 무대로 끌고 가면서 남북간의 감정 대립은 더욱 격화됐다.
남한, 방북 불허하고 옥수수 지원도 보류
사실 금강산 피살 사건 해결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었다. 살인 사건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게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인데 이번 사건의 경우 북한 당국 스스로 초병이 박씨를 조준사격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태가 장기화된 것은 결국 남북 당국 사이에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몇 가지 사건이 겹치면서 자존심 싸움으로 비화되어 이제는 선뜻 어느 한쪽이 약간의 양보도 하기 힘든 형국이 됐다.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북한을 방문했던 김원웅 전 의원은 11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남북 경색 국면이 장기화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북한은 이명박 정부와 대화조차 할 필요가 없고, 신뢰할 수 없는 정부다, 이런 인식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년간의 햇볕정책을 완벽하게 실패한 정책이라고 비판해왔다. 이런 입장에서 금강산 피살 사건과 관련해 '북한이 무릎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못한다면 정권 정체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이렇게 서로 심각하게 대립할 때는 남북한 사이에 비선라인이 존재하거나 제3의 중재자가 나서야 되는데 현재로서는 이것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청와대의 일부 강경 성향 참모와 공직에 있지도 않은 민간분야의 일부 네오콘 성향 인물들이 이명박 정부 대북 정책에 너무 많은 영향을 끼쳐 소모적인 남북 대립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2008.08.11 15:30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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