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폭격 때 손 놓친 동생같다"

[저자와의 대화] 소설가 황석영, 누리꾼과 만나다

등록 2008.08.21 15:19수정 2008.08.2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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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황석영씨가 최근 자전적 성장소설 <개밥바라기별>(문학동네)을 출간한 가운데 <생방송 저자와의 대화 - 블로거 황석영의 소설 쓰는 이야기>가 20일 밤 서울 홍대부근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 주최로 열렸다.
소설가 황석영씨가 최근 자전적 성장소설 <개밥바라기별>(문학동네)을 출간한 가운데 <생방송 저자와의 대화 - 블로거 황석영의 소설 쓰는 이야기>가 20일 밤 서울 홍대부근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 주최로 열렸다.권우성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는 어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다. 그들은 네가 다른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소설가 황석영(65)은 최근 출간된 자전적 성장소설 <개밥바라기별>(문학동네)의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위와 같이 일갈한다. '오늘을 사는 청춘에게 바치는 조언' 쯤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자퇴와 시위 참여, 유랑과 입산을 두루 겪었던 작가의 사춘기 시절부터 20대 초반 베트남전 파병 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으로 만들어지기 전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통해 5개월 동안 연재된 <개밥바라기별>은 누적 방문자수가 180만명에 이르고, 하루에 독자댓글이 100개 넘게 올라오는 세칭 '인기 블로그'였다. 환갑을 훌쩍 넘긴 황석영이 '파워 블로거'가 된 것이다.

전작 <바리데기> 출간 이후 자신에게 이전 독자들과는 소통방식에서 차이를 보이는 젊은 독자들(10-30대)이 생겨났음을 알게 된 황석영은 이들과의 소통을 갈망해왔다. <개밥바라기별>은 바로 그런 소통의 열망에서 탄생하게 됐다.

'인터넷'이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이용하는 즐거움을 새삼 깨달은 작가는 보통의 블로거와 누리꾼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글에 붙은 독자들의 댓글에 일일이 답해주는 친절까지 발휘했다. "나중에는 소설을 쓰는 시간보다 댓글을 쓰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고 말할 정도였다.

바로 그 '블로거' 황석영이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오마이뉴스>가 마련한 '생방송 저자와의 대화-블로거 황석영의 소설 쓰는 이야기'를 통해서다. 인터넷 생중계로 방송된 행사는 20일 저녁 7시 30분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 한 카페에서 열렸다.

예정보다 5분쯤 늦게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낸 황석영은 출간 후 연일 이어지는 각종 모임에 불려 다니느라 지쳐있는 듯 다소 피곤한 모습이었으나, 밝은 표정이었고 목소리도 젊은이의 그것처럼 우렁우렁했다. 자리를 함께 한 50여명의 독자들은 박수로 그를 맞았다.


환갑을 넘긴 '파워블로거', 독자 댓글에 답글 달다

 소설가 황석영씨.
소설가 황석영씨.권우성
이번 <개밥바라기별> 연재를 통해 "인터넷이란 첨단과학을 이용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즐거웠다"는 황석영은 1998년 공주교도소에서 출감한 이후 이듬해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터넷이 문화운동의 주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이미 10년 전 인터넷이란 새로운 소통방식에 주목한 것이다.


그는 컴퓨터 사용도 다른 작가들보다 일찍 시작했다.

"1974년에 시작된 <장길산> 연재를 1984년에 끝냈다. 원고지 2만매를 손으로 썼다. 때이른 오십견이 왔다. 손으로 글을 쓴다는 것에 회의를 느끼기까지 했다. 이 때 동료작가 이문구(작고)가 쓰던 전동타자기를 봤다. 써보니 정말 편했다. 3개월쯤 연습하니 '학다리 타법'이 완성됐다. 이후 워드프로세서와 망명 시절 영문타자기·매킨토시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컴퓨터 역시 도구로 사용한지는 이미 오래다."

이어 황석영은 2003년 회갑연을 치른 후 해외에 머물던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런던과 파리에서 체류하며 젊은 세대의 변화를 목도한 그는 "오늘날 젊은이들은 조직을 불신하고 해방과 자유를 지향한다"고 정의했다. 작가 황석영이 주목한 건 바로 그 세대가 구축한 '무정형한 연대의 그물망'.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걸 보며 개인과 일상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그는 "이 둘은 내 작품의 주요한 주제"라고 말한다. <오래된 정원>과 <개밥바라기별>은 바로 이 주제가 직접적으로 녹아든 소설들이다.

이에 덧붙여 "내 경우엔 인터넷에 쓰는 소설과 원고지에 쓰는 소설에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황석영은 "이전에도 편집자의 요구와 관계없이 내 뜻대로 작품을 썼고, <개밥바라기별>을 연재하면서도 '댓글을 달 때 조심하라'는 주위의 충고와 상관없이 내가 쓰고 싶은 댓글을 썼다"고 했다.

사실 황석영은 연재 기간 동안 1000자가 훨씬 넘는 장문의 댓글을 여러 차례 써서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친절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 과정을 통해 악플이 자체 정화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새로운 체험을 통해 "문화전문 포털사이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그는 "서구식의 무정형 연대를 만들어나가고, 일상적으로 그러한 연대를 조직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로 그가 추진하는 문화전문 포털이 곧 구체화될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작가의 모두발언' 격인 이야기가 30여 분간 진행된 후 참석한 독자들과의 일문일답이 이어졌다. 아래는 그날 오간 대화를 요약한 것이다.

"인터넷으로 쓴 소설와 원고지에 쓴 소설, 차이 없다"

 소설가 황석영씨.
소설가 황석영씨.권우성

- 출간 후 느끼는 감정은?
"<개밥바라기별>을 연재하는 도중 '촛불집회'가 사회적 이슈가 됐다. 이른바 '촛불소녀'들이 나타나는 걸 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춧불집회는 어떤 조직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이었기에 그 생명력이 길 것이다. 사회적으로 진화해나갈 것이라 믿는다.

성장소설의 기본은 기존질서의 부정이다. 기성세대가 보기엔 불온할 수밖에 없다. 제도를 끌고 가는 사람들은 창의적인 국민을 원하지 않는다. 자기가 원하는 답을 써주는 사람만을 원한다. 젊은이들이 그들이 '원하는 답'만을 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책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생명력을 가지고 진화할 수 있다. 인터넷이 발달할수록 콘텐츠 강화를 위해 더 많은 책을 읽는 외국의 경우를 직접 봤다."

- 180만명의 방문자를 가진 파워 블로거다. 이웃 블로거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소설 구상과 집필, 머릿속 그림으로 존재하는 문화운동의 구체화 등을 실천하려니 너무 바쁘다. 이웃 블로거까지 관리할 시간이 없다. 사실 아직까지 난 소설 폐인이지, 인터넷 폐인은 아니다."

- 당신의 대척점에 소설가 이문열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건 한국의 매스미디어들이 장사하면서 만들어낸 이야기다. 이문열씨는 나보다 6년이나 후배다. 그가 데뷔할 당시 내가 예심을 봤다. 아끼는 후배 중 하나지, 라이벌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6·25 폭격 때 손 놓친 동생 같다고 할까.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문학은 문학이고, 사회적 행동은 사회적 행동이다. 그리고 이건 이미 지나간 화제 아닌가."

-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보는지.
"많이 못 본다. 1년에 2~3권 정도 볼까. 그러나, 그들에 대한 애정은 있다. 너무나 고생하니까. 내가 젊은 시절 문학할 때는 모두가 가난해서 소설가의 가난도 별반 힘든 줄 몰랐는데, 요새 젊은 작가들은 그렇지 못한 환경에 있지 않은가. 그들만이 아니라 젊은 예술가들을 위해 문학·조형·공연 등의 기초예술 지원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지난 정부 시절엔 유력 정치인을 만나 설득작업도 벌였다. 그런데, 요사이는 '예술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시장에 맡길 게 있고, 그렇지 않을 게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일본처럼 본격문학 사라질 것이란 위기감마저 든다."

"댓글투의 문장 재미있다"

 <생방송 저자와의 대화 - 블로거 황석영의 소설 쓰는 이야기>에 참여한 한 독자가 황석영씨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생방송 저자와의 대화 - 블로거 황석영의 소설 쓰는 이야기>에 참여한 한 독자가 황석영씨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권우성

- 블로그 연재를 결심한 동기가 있는가. 댓글 쓰기 체험이 향후 작품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은지.
"4년 후면 내가 문학의 길에 들어선지 50년이다. '인터넷에 소설을 쓰면 모범이 돼야지'하는 생각 정도가 있었지, 대단한 결심 같은 걸 한 건 아니다. 블로그 연재에 관해서는 출판사측 제의가 먼저 있었다. 독자들의 댓글을 읽어보고 내가 댓글을 쓰다보니까 짧은 문장 속에 삶의 결이 담겨있는 게 보였다. 그런 맥락에서 다음 작품으로 구상 중인 <강남형성사>는 대하소설 형식이 아닌 미적 함축을 담아내는 형식으로 써볼까 한다. 인형극 꼭두각시 놀음의 형식을 빌려 쓰는 것도 좋지 않을까. 댓글투의 문장도 재밌을 것 같고."

- 젊은 독자와의 소통이 가능할 수 있었던 당신의 코드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젊은 세대들이 변했을 것이라 지레짐작하는 건 문제다. 영화 <오래된 정원>도 그런 판단착오에서 실패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요새 애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둥의 이야기가 떠돌지만 그게 선입견일 수도 있다. 고민의 형식이 달라졌을 뿐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그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당신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보폭 넓게, 자신만만하게 살아왔는데 인생에 후회는 없는지.
"내 별명 중 하나가 '황롤러코스트'다. 부침이 심한 사람 곁에 있으면 주위 사람들이 피해를 받는다. 내게 가장 큰 힘이 됐던 어머니를 살뜰히 모시지 못한 것과 가정을 두 번 깨뜨린 것이 미안하고 후회스럽다. 내가 어려울 때마다 힘을 줬던 건 문학이다. 소설을 쓰는 것으로 힘겨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베트남전쟁 때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의 참호 속에서 '내게 시간을 달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도록'이란 기도를 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 '이제 그만 촛불을 끄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 걸로 안다. 정부 주도의 '건국60주년 사업추진위원회' 민간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는데.
"이른바 진보 쪽 운동 원로들이 '촛불집회는 시민들이 승리했다'고 이미 선언했다. 이제 촛불의 힘이 정책적 고민을 거쳐 다음 단계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차원에서 나온 말이다. 건국60주년 사업추진위원회 참여는 이명박 정부와의 대화 채널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수락한 것이다. 좌-우는 물론 중도적 성향 인물까지 위원으로 있는 것으로 안다. 이에 관해 수락 전 진보진영 예술가들과의 공감도 있었다. 이렇게 형성된 대화 채널을 통해 정부가 대운하를 포기한 후 대륙으로 눈을 돌리고, 국방정책을 전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나는 향후 얼마간은 이명박정부에 대해 중도적 자세를 취하고 지켜볼 생각이다."

- 문학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문학은 누가 가르쳐주거나 가르침을 받거나 하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한다."

 소설가 황석영씨가 최근 자전적 성장소설 <개밥바라기별>(문학동네)을 출간한 가운데 <생방송 저자와의 대화 - 블로거 황석영의 소설 쓰는 이야기>가 20일 밤 서울 홍대부근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 주최로 열렸다.
소설가 황석영씨가 최근 자전적 성장소설 <개밥바라기별>(문학동네)을 출간한 가운데 <생방송 저자와의 대화 - 블로거 황석영의 소설 쓰는 이야기>가 20일 밤 서울 홍대부근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 주최로 열렸다.권우성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창비, 2007


#황석영 #개밥바라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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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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