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공부? 거 중간치만 해. 대신 책을 읽어!"

바람이 부는 까페에서 작가 황석영과의 대화

등록 2008.08.21 15:36수정 2008.08.2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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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쉰다. 나무로 만든 탁자도, 옆으로 비켜선 채 옥상으로 이어진 계단도,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눈빛도 모두 살아있었다. 홍대의 아름다운 거리 귀퉁이에 위치한 북카페 '창밖을 봐, 바람이 불고 있어. 하루는 북쪽에서 하루는 서쪽에서'에서 지난 20일, 독자와 작가 황석영과의 만남이 있었다. 그리고 대화가 시작되자 거짓말처럼 바람이 불어왔다.

 

작가는 보통 '작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뒤엔 오묘한 아우라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 황석영이 카페에 들어섰을 때 그 아우라가 마음으로 전해왔다. 그리곤 맑은 가을, 코끝을 스쳐지나가는 산들바람이 되어 카페를 가득 메웠다.

 

"생활하는 그대로 보여지는 게 좋으니까, 너무 긴장시키지 마세요"
 
a 작가 황석영 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 반대편에 보이는 사진과 모습이 꼭 같다.

작가 황석영 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 반대편에 보이는 사진과 모습이 꼭 같다. ⓒ 이유하

▲ 작가 황석영 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 반대편에 보이는 사진과 모습이 꼭 같다. ⓒ 이유하

서로 웃기도 하고, 편하게 화장실도 다녀오는 자유로운 시간을 만들고 싶다는 게 그의 첫 마디였다. 어딜 봐도 '좋은 사람'인 동그란 웃음과 동그란 얼굴, 그리고 동그란 안경. 모나게 살아오지 않았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여유가 느껴졌다.

 

강연이 시작됐다. 황석영은 잘 알려진 대로 <바리데기>, <장길산>, <삼포 가는 길>, <삼국지> 등을 써낸 우리나라 대표작가다. 소설을 종이책으로 발간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번엔 블로그에 5개월 동안 <개밥바라기 별>을 연재했고, 지금까지 총 방문객 수만 180만 명이 넘는 '파워 블로거'가 됐다.

 

<개밥바라기 별>을 쓰면서, 실시간 업데이트 되는 독자들의 반응이 신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본문 쓰는 데는 3시간이 걸렸지만 댓글 다는 덴 5시간이 걸리는 '덧글 폐인'이 되었단다. 블로그는 큰 세계의 무수하게 많은 세포들에 불과하지만, 그 속을 파고들면 우주적인 욕망이 숨어있다는 말이 좋았다. 오늘 아침 뭘 먹었는지, 지금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 등의 삶의 자잘한 결이 숨어 있다. 덧글 속에서도 일상을 보는 눈, 그게 황석영의 소설을 관통하는 힘 인가보다.

 

개인과 일상을 주제로 했으되, 그 속에 세계를 버무릴 것, 개인과 일상을 전면에 내세울 것. 이 두 개가 황석영 소설의 커다란 맥락이다. 감옥 독방에서 보냈던 5년 동안 그저 먹고, 자고, 싸면서 일상이 마음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 말이 부드럽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내 마음을 위로해 줬다. 지금 내가 겪는 무수한 '뻘짓'들이 시간낭비는 아니었구나. 강연을 듣는 사람들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괘도를 이탈한 소년상이다

 

<개밥바라기 별>은 잘 알려진 대로 성장소설이다. 자전적 성장소설이지만 "나이기도 하면서 내가 아니다"며, 문학가인 황석영과 형상화된 유준이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거라고 책을 소개했다. 많은 학부모들이 자신의 책을 읽고, 행여나 아이들이 이탈할까 봐 걱정하기도 한다지만, 절대로 틀에만 갇혀 있는 삶을 살지 말라고 한다. 학교 공부는 적당히 하고, 대신에 책을 많이 읽고, 많이 경험하는 게 중요하단 거다.

 

"자유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리고 너 자신의 가치를 세워라. 그건 독서에서 세워지는 거다. 모든 가치는 책 속에 있다."

 

또한 무협지를 보면 무술을 배우기 위해 먼저 장작을 패고, 빨래도 하고, 밥도 짓는 모습이 나온다. 그렇듯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 경험의 중요성도 덧붙였다.

 

"시간을 좀 더 주시면 더 좋은 작품을 쓰겠습니다"

 

살면서 무수히 좌절하고 싶은 순간마다 글을 떠올렸다고 한다. 더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바라보고, 그 세상을 담고, 담은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기 위해 살아온 삶. 많은 글을 썼지만, 아직도 '목마르다'는 황석영님의 말을 들으면서 감동을 받았다. 다음 소설에선 '강남 형성사'를 꼭두각시 노름에 담아볼 계획이라는데, 과연 어떤 느낌일까?

 

a  창밖을 봐, 바람이 불고 있어 하루는 북쪽에서 하루는 서쪽에서. 아름다운 북카페의 외경.

창밖을 봐, 바람이 불고 있어 하루는 북쪽에서 하루는 서쪽에서. 아름다운 북카페의 외경. ⓒ 이유하

창밖을 봐, 바람이 불고 있어 하루는 북쪽에서 하루는 서쪽에서. 아름다운 북카페의 외경. ⓒ 이유하

3시간을 넘긴 강연은 정치부터 세계, 그리고 출판계의 현실, 개밥바라기 별, 그리고 과거사까지 폭 넓고 깊었다.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들을 무릎위에 앉혀놓고 옛날 이야기를 해주듯, 나긋나긋하게 이어진 강연! 자꾸만 딴길로 빠지는 미묘함이 감칠맛을 더했다.

 

나는 열심히 취재노트에 받아쓰면서 '공부'하다가 어느 순간에 펜을 놓았다.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기에도 부족한 시간, 왠지 모르게 아득바득 필기하고 있는 모습이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펜을 놓으니 귀가 열렸다. 세상은 한움큼 더 따뜻해졌다.

 

강연을 마치고 계단을 돌아 내려오면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나이가 많아지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져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사람, 늘 이야기하길 좋아하고 웃음이 많은 사람,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글쓰기를 놓치지 않는 사람말이다.

 

밖으로 나오니 홍대의 열띤 밤은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천천히 인파 속에 뒤섞이면서 생각했다.

 

"그래, 인생 뭐 있어? 하고 싶은 대로 해보는 거야. 왜? 근사하잖아."

2008.08.21 15:36ⓒ 2008 OhmyNews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창비, 2007


#황석영 #개밥바라기 별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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