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베이징 올림픽 띄우기, 속셈은 따로

경기 중계에 가려진 각종 정책 발표, 폐막전 모두 해치울 심산?

등록 2008.08.21 16:22수정 2008.08.2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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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국 응원단들이 20일 베이징 우커송 야구장에서 열린 2008베이징올림픽 야구 예선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태극기를 들어보이며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

한국 응원단들이 20일 베이징 우커송 야구장에서 열린 2008베이징올림픽 야구 예선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태극기를 들어보이며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한국 응원단들이 20일 베이징 우커송 야구장에서 열린 2008베이징올림픽 야구 예선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태극기를 들어보이며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베이징 올림픽이 개막된 것은 지난 8월 8일이었다. 그러니까 최근 보름 정도 대한민국은 올림픽 열기에 휩싸여 있다. 한국인의 대부분은 그 뜨거웠던 촛불 열기가 언제 있었냐는 듯이, 지금은 말짱하게 잊어버린 채 이웃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 스포츠 제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축구장에 물 채워라. 박태환이 수영하게."

 

올림픽이 진행되면서 세간에 유행된 말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야비한 언어가 또 어디 있을까? 이 말에는 예선 탈락한 축구팀에 대한 저주와 함께 금메달리스트 박태환에 대한 환호가 동시에 들어 있다.

 

언제부터 한국인이 이다지도 실패한 자에 강하고 성공한 자에 약했던가? 이것이야말로 이른바 이명박 대통령 류의 '성공 콤플렉스'가 아닌가? 또한 언제부터 한국인이 이렇게도 약육강식주의자가 되고 말았는가? 무엇보다 우리는 불과 몇 해 전 월드컵 때 4강에 든 축구 대표팀에게 간· 쓸개 다 내주며 환호한 국민 아니었던가?

 

‘냄비근성’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인에게 이 말은 몹시 자기비하적이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유달리 즉흥적이거나 조변석개하는 기질을 가졌을 리 없다. 만약 한국인에게 정말 냄비근성 같은 게  있다면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것에까지 분단과 독재의 역사를 결부시킬 만한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분단과 독재를 체험한 오늘의 한국인은 다소 기회주의적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리고 한국인의 기회주의를 유인하는 요소로 돈과 함께 스포츠를 꼽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20년 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한국인의 스포츠 의식

 

88올림픽 때인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내가 아이와 함께 즐겨 보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호랑이선생님'이라는 것이 있었다(조경환이라는 탤런트가 주역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 한국에는 3개의 텔레비전 채널이 있었다.

 

마침 호랑이선생님은 KBS 제2 채널에서 하던 프로그램이라서 나는 올림픽 중계와 무관하게 아이와 함께 프로그램을 보겠거니 하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하지만 제2 채널에서는 유도 경기 생중계를 하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유도 경기 장면과 함께 광적인 응원 소리와 거친 기합 소리가 나고 있었다.

 

"거봐요. 아빠, 유도 중계를 하잖아요."

 

어린아이는 이미 나보다 세상을 잘 알고 있었나 보았다. 잠시 멍했던 나는 채널을 MBC와 KBS 제1 채널로 돌려 보았다. 놀라운 것은 두 채널에서도 제2 채널과 똑같은 유도경기를 똑같은 방식으로 중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오늘의 텔레비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조중동은 아예 올림픽 기사로 도배질을 하다시피 하고 있다. 조중동보다는 덜 하지만 한겨레나 경향 그리고 오마이뉴스 등과 같은 이른바 진보 매체들도 스포츠 국가주의에 한껏 동조하고 있다.

 

어제까지 촛불을 들고 비분강개하던 사람들이 너 나 없이 텔레비전 화면 앞에 앉아 있다. 단적으로 말해 대관절 박태환의 금메달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지? 이러면서도 경쟁을 내세우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무슨 근거로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인지? 스포츠 국가주의는 한국의 진보가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되니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안 오른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런 국민들을 꿰뚫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돈에 약하고 스포츠에 광기를 보이는 우리 국민들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가 왜 모르겠는가? 경제를 살려주겠다고 하니까 자기에게 몰표를 준 국민들이다. 또 하나의 극적인 예를 들자면 서울 시민들은 아파트 값 오를 것 같으니까 진보정당 운동을 한 노회찬 대신에 영화배우 남궁원의 아들을 더 많이 찍은 사람들이다.

 

정권 특명, 올림픽 전에 모두 해치워라

 

a  21일 오후 여의도 KBS 본관 2층에서 이기욱, 이지영, 남윤인순 이사가 사장 후보 서류심사를 위한 이사회가 열리는 6층으로 가기 위해 승강기앞에 서 있다.

21일 오후 여의도 KBS 본관 2층에서 이기욱, 이지영, 남윤인순 이사가 사장 후보 서류심사를 위한 이사회가 열리는 6층으로 가기 위해 승강기앞에 서 있다. ⓒ 권우성

21일 오후 여의도 KBS 본관 2층에서 이기욱, 이지영, 남윤인순 이사가 사장 후보 서류심사를 위한 이사회가 열리는 6층으로 가기 위해 승강기앞에 서 있다. ⓒ 권우성

우리는 왜 KBS 이사들이 온갖 추태를 다 연출하면서도 신임 사장 인선 작업을 서둘러 강행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올림픽은 24일 폐막된다. KBS  이사회는 오는 25일 신임 사장을 결정하여 대통령에게 제청하기로 했다고 한다.  

 

짧게 잡더라도 올림픽 이후 열흘 이상은 올림픽 열기가 식지 않을 터이다. 정부가 선수 전원의 도로 퍼레이드를 기획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든 올림픽 열기를 연장시켜 보려는 의도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는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대운하의 야망을 일단 접은 후 경기 살리기에 초조해진 청와대는 경기 부양을 부동산 투기에 의존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대책을 내 놓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부동산 대책이 무엇인지를 예전만큼 세심히 읽으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올림픽 경기 중계가 있기 때문이다.

 

22일에는 추석 민생대책이, 23일에는 쌀 가공산업 종합대책, 25일에는 2차 공기업 선진화 방안과 함께 2단계 대학 자율화 방안 발표가 예정되어 있다. 다음 날인 26일에는 세제정책, 27일에는 '나토코리아 2008', 28일에는 국가 에너지 종합계획, 29일에는 융합형 콘텐츠 육성 계획이 발표된다.

 

우리는 청와대가 왜 이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서둘러 하는지를 알고 싶다. 이것은 이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20일 이 대통령은 청와대 내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MB 리더십이 주눅 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촛불 같은 것에 주눅 들지 말고 정책을 자신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때마침 서울시 교육위원회는 국제중학교를 신설한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사실 이것은 사교육비 문제 이전에 중학의무교육의 근간을 허물어뜨리는 엄청난 일이다. 이런 일이 청와대와의 교감 없이 발표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비슷한 시점에 이명박 대통령은 난 데 없이 초중고 1% 영재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연결시켜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촛불 소나기 그쳤으니, 눈은 맞아도 된다?

 

"6개월이라고 하는 것이 긴 시간도 짧은 시간도 아니지만 일손을 놓고 있었던 기간이 아니고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면서 워밍업을 한 기간이었다. 어떤 정책이든 반대 없는 정책이 있겠느냐? 눈이 올 때는 맞아야 하나 바르고 국가를 위한 것이라면 당당하게 펴나가야 한다."

 

지난 18일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말이다. 예전에 이 대통령은 "소나기가 올 때는 피해야 한다"는 말을 즐겨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제는 "눈이 많이 올 때는 맞아야 한다"는 말로 바뀌었다.

 

조금 공교롭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이 대통령은 촛불을 소나기로 여겼던지 피해간 것이 사실이었다. 두 차례나 머리를 숙이고 국민에게 사과까지 한 것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이제 촛불을 내리는 '눈'에 비유하고 있다. 소나기가 아니라 눈이니 맞아 주겠다는 뜻이 아닌가 싶다. 이로 보아 이 대통령은 촛불을 피하지 않고 맞닥뜨리기로 작심한 것 같다. 지난 15일 촛불 시민에 대한 강경 진압과 무차별 연행이 이를 증명한다.

 

이 대통령이 이렇게 쉽게 변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베이징 올림픽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국가 스포츠에 대한 한국 국민의 후진적인 인식 때문이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이런 한국인의 경향을 십분 이용했다.

 

이와 같이 스포츠에 대한 지나친 열기는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앗아가 버린다. 스포츠에 대한 열기가 지금처럼 지속되는 한 한국은 영원히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이며 최근 전작 장편 <오백 년 동안의 표류>를 출간했습니다.

2008.08.21 16:22ⓒ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이며 최근 전작 장편 <오백 년 동안의 표류>를 출간했습니다.
#올림픽 #이명박 #촛불 #스포츠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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