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직기자겨울밤의 숙직기자. 조광식(동아일보 체육부) 기자, 광화문 동아일보 구(舊)사옥은 기사 쓰고, 전화 받고, 자장면 시켜 먹는 책상에 그대로 이불을 깔고 야근을 해야 하는 곳…. 정신없이 이렇게 자다가 쥐에게 입술을 물려 한 기자가 병원에 입원했던 에피소드를 생산하기도 했던 장소였다. (1977년 1월 4일)
전민조
사진작가 전민조. 그를 '사진기자 전민조'로 오래 기억해온 이들에게 조금 낮선 이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진과 전민조의 관계'를 아는 이들에게는 결코 어색한 이름이 아니다. 항상 겸허함으로 세상을 대하는 그의 마음만큼 맑은 울림이 일렁이는 그 사진들에는 깨어있는 사람의 의식(意識)이 진하다. 작가냐 기자냐 구분이 필요 없는 경지를 일러준다.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섬 마을 동심(童心)의 순박함이 있는가 하면, '대결의식'으로 날카로운 정치인의 본능까지를 단박에 잡아챈 '원 샷'이 장인(匠人)의 지경을 실감하게 하는 다양한 정서의 스펙트럼이 그 사진들엔 있다.
여러 사람들은 그의 사진이 경건함을 보듬고 있다고 말한다. 이 경건함은 그 사진을 '생산'한 이의 올곧은 자세와 한결 같음에서 비롯된 것일 터다. 게다가 악착같은 집념과 어느 순간에도 주저하지 않는 배짱, 그 극성스러움이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시나브로 이뤄왔겠다.
사진기자와 후배 취재기자로 그와 함께 일할 기회가 많았기에 필자는 이런 말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 왜냐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는 언론 일선을 물러난 후에 더 맹렬하게 작품 활동을 하면서, 오래 찍어온 언론 사진을 분류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창조적인 작업을 함께 벌여오고 있다.
개인전을 여러 번 열고, 사진집 ‘얼굴’(1985) ‘서울스케치’(1992) ‘그때 그 사진 한장’(2001) ‘아무도 오지 않는 섬’(2005) ‘서울’(2006) ‘한국인의 초상’(2007) 등의 사진집과 3권의 저서를 내보이는 열성은 참 감동적이다. 그 사이, 세상은 자연스럽게 전민조를 ‘사진작가’라고 부르게 됐다.
신문 잡지 등 언론매체에 실리는 사진은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담는다. 그러나 정작 그것을 생산한 기자의 모습은 거기에 없다. 가끔 이름 한 줄로 표시되기도 했지만 이는 독자들에게는 암호에 불과한 것이었다. 많은 수의 다양한 미디어가 존재하는 요즘과, 불과 10년 전의 언론의 모습에 차이가 없지 않음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필자는 기억한다. 취재 다닐 때나 사무실에서 일할 때, 취재가 아닌 우리의 모임 등에서 참 부지런한 '사진기자' 전민조는 기자의 여러 모습을 항시 촬영했다.
뭘 하느냐고 물으면, "그냥 찍는거야"하며 조용하게 웃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웃음은 매우 맑았다. 떠들썩하게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는 타입은 아니었으되, 그가 '왕따'를 한 번도 당하지 않은 이유의 절반 정도는 아마 그 웃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진작가 전민조는 누구? |
일본에서 출생,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인천에서 청소년기를 거쳐 서라벌예술대학을 졸업했다. 여원사 한국일보 동아일보 사진기자를 거쳤고,
동아일보 사진부장을 지낸 다음 사진작가로서의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그는 "기자를 찍은 기자인 나는 줄곧 카메라 파인더 뒤쪽에 서 있어야 한다"며 끝내 사진 촬영에 응하지 않았다.
|
그러나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기자가 기록하는 세상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기자의 모습'도 스스로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그는 오래 전부터 확신하고, 작업을 벌여왔던 것이다.
무대 뒤 분장실 풍경과도 같이 독자들에게 '기자들의 진면목'은 다소 생경할 터이지만, 필시 새로운 경험이리라. 전민조의 선지자적 슬기와 노력 덕분에 현대사의 여러 대목에 부각된 기자의 모습은 언론 역사 뿐 아니라 현대사의 관점에서도 의당 주목의 대상이다.
이번에 나온 <전민조 포토 에세이-기자가 바라본 기자>라는 이름의 사진집은 이렇게 여러 가지의 뜻을 갖는다. 사진집 낸 것을 계기로 그는 같은 제목의 전시회(8월 20일~9월 2일)를 서울 인사동 아트비트 갤러리(02-722-8749)에서 연다.
이 화랑의 큐레이터 박혜미씨는 "신문 지면이 아닌 전시장에서 보는 전민조의 사진은 포토저널리즘이 관객에게 조형적 영감(靈感)을 던지는 매체로서의 탁월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새삼 입증한다"고 설명했다. 또 작가가 가진 시각(視覺)의 압도적인 진지함에 주목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